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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해 들어 술자리가 있었으나 술을 절제하기로 결심했다.
술도 음식이라 생각하나 몸에 도움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아 금주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결심이 얼마 지켜 질지 모르나 금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경기대학교 시 창작교수인 권성훈교수님이 계간지 인연 봄호에 실을 원고 청탁의 이메일을 보내 왔다.
글 재주가 없는 나에게 원고 청탁은 조금 부담이 되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 한다는 전자제품 회사의 광고 문구가 생각이 났다.
나는 10살 때 뼈를 깍는 우측 다리 정강이 골수염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하마트면 다리를 절단해야하는 위기에서 수술대를 튀처나와 도망한 것이 절단 위기를 모면했다.
"소년이 선택한 삶" 이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작성해 보냈다.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계간지로 고료를 받는 나의 첫 원고가 될 것 같아 흥분이 된다.
아침 7시 평소처럼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나 조명아래 회원들이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우리 회원이었던 양혜진 여사가 오랜 만에 테니스하러 왔다.
그동안 일본으로 출가한 딸의 외손자 돌보느라 운동을 못해 체중이 늘었다고 했다.
몰라보게 체중도 늘었으나 테니스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 졌다.
오늘 아침 식사를 한동수 교장이 골목집 설렁탕 식당에 서 샀다.
오랜만에 찾아온 양혜진 여사를 환영한다는 의미로 자리를 마련하셨다.
그런 이야기 중에 양여사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로 너무나 억울해 고소를 해 지금도 조사중이라고 했다.
무슨 내용으로 소문이 퍼졌는지 모르나 인터넷 루머가 판치는 요즘 한사람에게 상처 주기란 쉽게 퍼진다.
지난주일 목사님의 성교 말씀이 생각이 났다.
사실이 아닌것은 말하지 말라.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말하되 덕이 되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
목사님의 권면에 아멘으로 은혜 했다.
그래서 사람은 다른 이에게 오해 살 일도 미움 받을 일도 삼가해야 함을 돌아 보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험구를 아니면 말구 식으로 무책임하게 던지는 것은 돌을 던지는 것과 다를바 없으니 삼가해야 한다.
오늘 점심 시간에 테니스 원로 박수흠 장로님의 미수(88세) 생일 잔치가 우리 집앞 홈풀러스에 있으니 함께 식사하자는 초청을 받았다. 오늘 월요일 월계수 회원들이 운동후 함께 점심을 머기로 했다고 했다.
적당한 생일 선물로 무엇을 드릴까 생각중에 소설과 시가 있는 동인지 한 권을 들고 나갔다.
홈풀러스 1층 샤브미 식당으로 1인다 11,900으로 야채 고기 새선을 무한 리필로 먹게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했다.
월계수 회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후 박장로님의 생신을 축하했다.
내가 미수 나이를 살려면 앞으로 14년을 살아야 했다.
글세 그 나이까지 산다는 것도 건강을 지킨다는 것도 자신이 없다.
여러번 장로님과 함께 식사를 해 보았으나 소식에 기름끼 있는 음식을 절제하는데도 강한 체력으로 전국대회 여러차례 우승을 한 실력자다.
점심 식사후 헤어져 돌아 왔다.
새벽 7시 조명아래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들
오늘 아침은 골목집 설렁탕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먹음직 스럽다.
20여년 전통의 골목집 설렁탕은 국물맛이 진국이다.
아침 10시 30분경 신호대기중 멀리보이는 교회를 사진에 담았다.
소년이 선택한 삶/계간 연인 봄호 원고
김용복
나는 빨간 신호로 차선을 지켜 차를 세웠다. 50대의 목발 짚은 남자가 건널목을 지나갔다. 잠바를 입은 용모가 단정하고 얼굴이 잘 생겼다. 오른다리 고관절 아래로 다리가 없다. 다리 없는 바지 끝을 꺾어 어리 춤에 꿰맸다. 새벽 테니스하고 지나는 09시 건널목에서 자주 보는 장애인이다. 신호대기하며 남의 일 같지 않아 내 우측다리를 만져 보았다. 60여 년 전 한 소년이 생각났다.
칠흑 같은 어둠이 유성으로 가르마 타는 밤 갑자기 포성이 울리고 섬광이 바다건너 하늘을 밝혔다. 잠시 후 하늘을 찢는 제트기 굉음이 북에서 남으로 가늘게 늘어지며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어린 소년의 눈에는 무서움이 흘러넘치고 어머니의 품을 파고들며 살려 달라 소리쳤다. 마치 유월절의 심판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아픔의 비명소리가 날줄과 씨줄에 공명되어 귀청을 울렸다.
여명이 핏빛으로 물들고 연암 산 햇살이 어둠을 거두는 아침 우리 집 앞 삼밭에서 울려오는 비명소리에 놀란 소년은 삼밭 사이를 바라보니 소년을 업고 놀아주던 머슴 삼용이 형이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죽음을 삼키고 있었다.
아! 어찌 우리 잊으리오.
6.25전쟁,
소년의 고향에서도 인민은 평등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인민군은 지주의 땅을 몰수해 소작인에게 고루 나누어 준다고 충동질해 지주와 소작인이 하루 밤 사이에 반상이 바뀌고 주종의 상충(相衝)으로 피를 토했다.
밤마다 지주를 잡아 인민재판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괭이와 낫과 죽창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은 많은 목숨을 잃게 했다. 이는 사상과 이념을 떠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원한을 팔뚝에 채워진 붉은 완장의 횡포가 한 마을 이웃을 살인으로 몰았다.
1950년 같은 해 9.28 서울 수복 이후 전쟁 중 군에 간 아들이 완전 무장 상태로 잠시 고향에 들러 부모 형제를 찾았으나 이미 같은 마을 소작인들에 의해 학살되었음을 알고 앙갚음의 살인으로 비극이 더 처참했다.
철없던 어린 10살의 소년은 화약연기 퍼지는 사형장의 시체들 속을 뒤져 탄피를 주었다. 장난감 총을 만들어 탄피에 화약을 넣어 거친 전쟁놀이에 빠졌다. 전쟁놀이에 필요한 탄피를 줍기 위해 뒷산 사형장면을 숨어서 보던 소년에게 경찰은 공포를 쏘아댔다. 겁에 질린 소년은 도망쳐 달리던 산비탈에서 넘어 졌다. 퍼렇게 멍든 무릎의 통증으로 걸을 수 없었다. 전쟁으로 닫아버린 시골병원, 돌팔이 침쟁이 노인의 우측정강이 골절이라는 오진으로 미루나무 부목을 무명천으로 한 달 동안 동여 맨 것이 노란 고무풍선처럼 말갛게 고름이 잡혔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병원을 찾았으나 뼈 속에 염증이 생겨 골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통증이 심했고 연약한 생명마저 수분을 뺏긴 식물처럼 시들어 갔다. 세 차례의 뼈를 깎는 수술도 허사였고 소년의 다리는 푸줏간의 고기처럼 난도질당했다.
소년은 땅에 엉덩이를 대고 두 손을 짚고 한 다리에 의지해 몸을 움직였다. 얼마 후 석고 붕대를 풀었다. 콩알 크기의 정강이뼈가 아물지 않았으나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데 지장이 없었다.
소년의 꿈은 어두운 항아리 속에 갇혔다. 아무리 걸어도 어둠에 싸인 둥근 벽들로 벽을 부수려 긁었으나 솥 끝에 맺히는 피멍. 실낱같은 희망도 희미하게 부서지고 손을 뻗어 잡으려도 허공을 젓는 연약한 생명의 절규와 죽음의 신들이 광란의 춤을 추었다. 꿈을 잃은 소년에게는 용기마저 바닥을 기어가고 어둠의 그림자가 구름처럼 오고갔다. 예정된 불길한 운명에 사로잡혀 헤어 날 수가 없었다.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슬프게 젖어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슬픈 날을 보내며 휴전이 되었다. 50리 밖 도립병원을 가기로 했다. 귀한 아들을 비포장도로 털털이 마차에 태울 수 없어 장정 네 사람이 들것에 태워 새벽길을 나섰다. 나사렛 예수를 찾아가는 앉은뱅이처럼 소년의 얼굴에 쏟아지는 샛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진 병원, 흰 가운 입은 의사와 간호 원 모두 차갑게 느껴졌다. 소년의 다리를 살피던 의사는 지금 당장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무릎 위까지 썩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한숨이 발등을 깼다.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며 소년을 설득했다. 수술대 위에 커다란 조명등이 켜졌다. 냉기가 돌고 적막한 수술실 천정이 높았다. 수술대에 누운 소년의 가슴은 쿵쿵대는 떨림 속에서 눈물이 흘렀다. 손과 발이 묶이고 이제 수술 전 마취가 시작된다. 소년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눈길을 피해 고개를 젖혔다. 고였던 눈물이 주르르 옷소매를 타고 흘렀다. 수술대 옆에는 절단용 톱이 소년을 삼킬 듯이 기다렸다.
소년은 한쪽 다리가 없는 자신을 생각했다. 이제 겨우 열 살 한 쪽 다리 없는 삶은 죽음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나 오줌 마려."
"그래 아들아! 복도 끝에 화장실이 있어."
소년은 소변을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쳤다.
"야! 도망가."
화장실 뒷문으로 뒤도 보지 않고 병원을 나와 처음 보는 철길을 따라 달리고 달렸다. 해는 서산에 지고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소년은 철길에 앉아 울었다. 아버지와 일꾼들이 찾아 왔다. 소년과 아버지는 한 동안 엉켜 울었다.
"아버지! 나 수술 안 할 네."
"그래! 아들아! 알았다."
일상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어 학교를 다녔다. 몇 년 후 사회가 안정이 되어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 후 완치가 되었다.
나는 나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 왔다.
한일타운 후문 사거리에서 바라본 교회 건물이 광교산 배경으로 아름답다.
홈플러스 1층에 있는 샤브미 식당 안내 명함
평일 점심은 1인분에 11,900원으로 무한 리필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오늘은 수원 어르신 테니스 동호인 원로 고문이신 박수흠 장로님 88세(미수) 생일로 월계수 회원들이 점심 식사를 했다.
오늘 점심은 당사자인 박수흠 장로님이 사셨다.
나는 특별 초대를 받아 맛있게 먹었다.
88세 노인이지만 전국테니스 대회에서 여러번 우승을 한 실력자다.
야채 고기 생선을 곁들여 양것 먹었다.
살아 있는 땅
"토니,
이곳은 살아 있는 땅입니다.
이곳의 모든 것이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우린 이 땅이 허용하는 속도와 방향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신의와 존경으로
이 땅을 대하고, 이 땅이 영혼을 스스로
표현하도록 하는 거죠.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전히 이 땅을
사랑해야 합니다."
- 윌리엄 폴 영의《갈림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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