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 궁금하시지요.
아래 클릭해 보세요.
바로가기
선택지역
6시 30분경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몇 동호인들이 조명을 켜 놓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용인 양지에 사는 이대진 회원이 김치찌개 만두 그리고 전과 술을 준비해 왔다.
그 젊은 부부의 사랑을 음식에서 느껴져 왔습니다.
그리고 박승혜 총무님이 밥과 총각무우 라면을 가지고 왔다.
운동 후 김치찌개로 아침 밥을 해결했다.
집에 오니 9시 30분이 되었다.
오늘은 모처럼 20년 만에 교회를 나가기로 결심한 새해 첫 주일이다.
오전 3부 예배가 11시에 있기에 아내와 함께 10시 30분 집을 나섰다.
아주 오랜 만에 아내와 함께 가는 교회 출석이 가슴에 훈훈함을 느끼게 했다.
맑고 깨끗한 하늘과 밝은 태양으로 하루를 나에게 주신 성은에 감사했다.
교회 입구 교회 명을 보니 대한예수교 장로회 송원교회이다.
그동안 감리교회를 다니다가 장로교회는 처음이다.
그동안 아내가 다녔기에 따라 가보았다.
엘리베이터로 3층으로 올라 갔다.
교회 내부가 3,4 층으로 좌석수도 많고 꽤나 컸다.
짐작으로 보아 5,600석은 되어 보였다.
시간이 되니 좌석이 거의 메워 졌다.
설교 단상 중앙에 커다란 모니터가 있어 찬송가와 성경귀절을 읽을 수 있었다.
교회를 가는데 성경책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너무나 안이한 교회 생활이 형식적으로 되는 기분이었다.
오늘 설교는 윤상원 담임 목사로 "제자 되라. 제자 삼으라."는 주제로 마태복음 28장 19-20절 중심으로 말씀 하셨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신자의 생활이 간단하지 않음을 느꼈다.
성경을 중심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님의 말씀이 구구절절한 감동과 감화로 그동안의 삶에 대한 회개로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우선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내려 놓아야 했다.
나는 장사한 시체처럼 죽아야 하고 복음안에서 말씀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하고 또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 예수님의 제자처럼 생활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건성으로 주일날 예배만 드리는 생활로는 구원을 얻지 못함을 배웠다.
전도사님 교회출석을 환영하는 꽃송이를 주고 또 교회 등록카드를 작성하라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다음에 등록카드를 작성할 것이라 말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회 입구에서 담임목사님께 인사를 할 때 아내가 남편이라 소개했다.
아내가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가라는것을 나는 집에서 먹겠다고 하고 혼자 집으로 왔다.
가능한 주일을 지켜 교회를 다녀야 겠다고 결심을했다.
그런데 저녁 6시경 아내가 갑자기 밥 하기 싫다며 날 보고 알아서 해결하라 했다.
저녁을 칼국수 집에가서 먹자는 것을 거절했더니 삐졌나 보다.
오늘 은혜스러웠던 마음이 흥분으로 뒤틀렸다.
마음을 삭히느라 얘써 진정해 보았다.
벌써부터 20년만에 찾은 교회 생활에 대한 시험이 시작된 기분이다.
새벽 7시경 조명 아래 경기하는 회원들/조명을 받은 가로수 메타세콰이아
새벽 테니스를 즐기는 회원들
아침 9시 30분경 아파트 후문 거리
장안구청 주차장
송원 장로교회 주일 예배 장면
주일 낮 예배 광경
윤상원 목사님 설교
1시경 한일타운 아파트 중앙로 풍경
주일 낮 1시경 한일타운 아파트 거리 풍경
윤상원 목사님의 설교 노트
| 소년의 꿈 무봉 김용복 칠흑 같은 어둠이 가르마 타는 밤 포성이 울리고 섬광이 바다건너 하늘을 밝혔다. 잠시 후 하늘을 찢는 제트기 굉음이 북에서 남으로 가늘게 늘어지며 살아 졌다.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소년의 눈에는 무서움이 흘러넘치고 어머니의 품을 파고들며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마치 유월절의 심판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아픔의 비명소리가 날줄과 씨줄에 공명되어 귀청을 울렸다. 여명이 핏빛으로 물들고 연암 산 햇살이 어둠을 거두는 아침 삼밭에서 울려오는 비명소리의 심장에서 소년을 업고 놀아주던 머슴 삼용이 형이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죽음을 삼키고 있었다. 아! 어찌 우리 잊으리오. 6.25전쟁, 10살 소년의 고향에서도 인민은 평등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지주와 소작인이 하루 밤 사이에 반상이 바뀌고 주종의 상충相衝으로 피를 토했다. 철없는 소년은 화약연기 퍼지는 사형장의 시체들 속을 뒤져 탄피를 주었다. 장난감 총을 만들어 탄피에 화약을 넣어 거친 전쟁놀이에 빠졌다. 어느 날 소년은 사형장의 공포에 놀라 도망쳐 달리던 비탈길에 넘어 졌다. 퍼렇게 멍든 무릎의 통증으로 걸을 수 없었다. 전쟁으로 닫아버린 시골병원 돌팔이 침쟁이 노인의 우측정강이 골절 오진으로 미루나무 부목을 무명천으로 동여매고 한 달 노란 고무풍선처럼 말갛게 고름이 잡혔다. 때늦게 찾은 병원, 뼈가 썩는 고질병이 되었다. 소년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통증이 심했고 연약한 생명마저 수분을 뺏긴 식물처럼 시들어 갔다. 세 차례의 뼈를 깎는 수술도 허사였고 소년의 다리는 푸줏간의 고기처럼 난도질당했다. 소년은 땅에 엉덩이 부치고 두 손을 땅을 짚고 한 다리에 의지해 몸을 움직였다. 얼마 후 석고 붕대를 풀었다. 콩알 크기의 정강이뼈가 아물지 않았다.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데 지장이 없었다. 소년의 꿈은 어두운 항아리 속에 갇혔다. 아무리 걸어도 어둠에 싸인 둥근 벽들로 벽을 부수려 긁었으나 솥 끝에 맺히는 피멍. 실낱같은 희망도 희미하게 부서지고 손을 뻗어 잡으려도 허공을 젓는 연약한 생명의 절규 죽음의 신들이 광란의 춤을 추었다. 꿈을 잃은 소년에게는 용기마저 바닥을 기어가고 어둠의 그림자가 구름처럼 오고갔다. 예정된 불길한 운명에 사로잡혀 헤어 날 수가 없었다. 소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슬프게 젖어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슬픈 날을 보내며 휴전이 되었다. 50리 밖 도립병원을 가기로 했다. 귀한 아들 비포장도로 털털이 마차 태울 수 없어 장정 네 사람의 들것에 태워 새벽길을 나섰다. 나사렛 예수를 찾아가는 앉은뱅이처럼 소년의 얼굴에 쏟아지는 샛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진 병원 흰 가운 입은 의사와 간호 원 모두 차갑게 느껴진다. 소년의 다리를 살피던 의사는 지금 당장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무릎 위까지 썩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한숨이 발등을 깼다.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며 소년을 설득했다. 수술대 위에 커다란 조명등이 켜졌다. 냉기가 돌고 적막한 수술실 천정이 높았다. 수술대에 누운 소년의 가슴은 쿵쿵대는 떨림 속에 눈물이 흘렀다. 손과 발이 묶이고 이제 수술 전 마취가 시작된다. 소년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눈길을 피해 고개를 젖혔다. 고였던 눈물이 주르르 옷소매를 타고 흘렀다. 수술대 옆에는 절단용 톱이 소년을 삼킬 듯이 기다렸다. 소년은 한쪽 다리가 없는 자신을 생각했다. 이제 겨우 열 살 한 쪽 다리 없는 삶은 죽음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나 오줌 마려." "그래 아들아! 복도 끝에 화장실이 있어." 소년은 소변을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가 "야! 도망가." 소리쳤다. 화장실 뒷문으로 뒤도 보지 않고 병원을 나와 처음 보는 철길을 따라 달리고 달렸다. 해는 서산에 지고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소년은 철길에 앉아 울었다. 아버지와 일꾼들이 찾아 왔다. 소년과 아버지는 한 동안 엉켜 울었다. "아버지! 나 수술 안 할 네." "그래! 아들아! 알았다." 한방의 침과 뜸으로 치료가 되었다.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믿음으로 살고 있다. 2012. 5. 25. |
내가 택한 삶
무봉 김용복
빨간 신호로 차선을 지켜 차를 세웠다.40중반의 목발 짚은 남자가 건널목을 지난다.잠바를 입은 용모가 단정하고 얼굴이 잘 생겼다.오른다리 고관절 아래로 다리가 없다.다리 없는 바지 끝을 꺾어 어리 춤에 꿰맸다.새벽 테니스하고 지나는 09시 건널목에서 자주 본다.신호대기하며 남의 일 같지 않아 내 우측다리를 만져 보았다.
60여 년 전 내가 10살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고향 뒷산에 좌익(빨갱이)을 잡아 총살 처형하던 방공호가 있었다.철모르던 나는 개구쟁이 친구들과 자주 탄피를 주웠다.총살 장면을 소나무 숲에 숨어 볼 때면 우리를 향해 군인은 공포를 쏘았다.나는 친구들과 공포 소리가 무서워 도망치다 자주 넘어 졌다.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걸으려하니 우측 무릎이 아파 걸을 수 없다.
전쟁 통에 병원도 없어 아버지는 머슴을 보내 돌팔이 침쟁이를 모셔왔다.침쟁이 노인이 말하기를 다리가 골절 되었다고 했다.머슴을 시켜 미루나무 잘라 윷가락처럼 네 쪽을 깎아 다듬었다.종아리 부분에 미루나무 쪽을 前後左右에 대고 무명으로 묶었다.걷지를 못해 학교에도 못가고 한 달 간 집에서 지냈다.다리에 통증이 날로 심하고 통통하게 부어올랐다.나는 기구하고 슬픈 運命의 人生 기로에서 헤맸다.
9.28 수복 후 11월 읍 소재지 보건소를 찾아 갔다.나는 수술대에 눕고 의사가 다리에 감긴 무명 끈을 풀었다.노란 풍선처럼 터질듯이 노랗게 고름이 잡혔다.의사가 주사바늘로 찌르니 고름이 분수처럼 병원 천정에 솟구쳤다.고름을 제거하니 가죽과 뼈만 남았다.엑스레이 사진 상에는 골절 흔적이 없었다.넘어 질 때 무릎에 돌이 부딪쳐 멍이 들었을 뿐이었다.
전쟁과 무식함이 어린 나를 잘못된 運命의 길로 몰고 갔다.몇 달을 치료해도 새끼손톱 크기의 정강이뼈가 아물지 않았다. 이듬해 군청소재지 외과병원으로 찾아 갔다.진단에 의하면 뼈가 썩는 골수염으로 죽은 뼈 제거 수술을 해야 했다.수술대에 나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애처로운 눈빛 지금도 잊을 수 없다.아버지 39세에 늦은 나이에 나를 낳았으니 나는 11살 아버지는 50세였다.나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 말라했다.
당시만 해도 마취약이 귀해 다리수술부위만 마취하고 수술을 했다.수술대 옆에 끌, 망치 송곳 같은 연장들이 눈에 띠었다.의사가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지만 수술도구 만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머리맡에서 아버지는 나의 양손을 꼭 잡고 힘을 내라고 귀에 소곤거렸다.정강이에 끌을 대고 나무망치로 치고 뼈를 깎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손이 풀리며 내 얼굴에 뜨거운 아버지의 소리 없는 눈물이 떨어 졌다.
나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아무리 치료해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또 두 번째 뼈를 깎는 수술을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석고붕대를 하고 퇴원하여 집에서 외과 소독치료만 했다.집에서 학교가 가까워 출석은 했지만 공부도 못하고 결석도 많이 했다.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한의를 찾아 침과 뜸을 떠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우측 다리에 수술 흉터와 뜸 자국이 흉해 항상 긴바지를 입었다. 전쟁 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도립병원이 개원했다.두 번이나 뼈를 깎는 수술 후 다시 도립병원을 찾았다.그때는 차가 없어 장정 네 명을 품삯주고 50리길을 가마타고 갔다.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무릎까지 썩기 전에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목이 멘 소리로 절단하면 의족에 의해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어린 나는 순종하는 마음에 글썽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하얀 벽과 높은 창만 보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내가 수술대에 올라가 누우니 팔과 다리를 묶었다.수술도구 중에 절단하는데 쓰이는 톱이 보였다.간호사와 의사들이 바쁘게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잠시 후 전신마취에 들어가 수술 후 깨면 외다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두려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죽으면 죽었지 목발 짚고 살 수가 없었다.어린 나이지만 내 運命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만약에 상처가 심해 더 이상 살기가 힘이 들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決心했다.“아버지 나 때문에 너무 힘들지! 나 이제 괜찮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그래 우리 아들 장하지.” 아버지는 나의 손을 힘껏 잡았다.지난번 수술 할 때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어 아버지가 기절했다는 말을 들었다.
잠시 후면 다리 절단 수술을 위한 전신 마취에 들어 가야했다.나는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왜?” “나 오줌마려. 화장실 다녀올게.”“밖으로 나가 복도 끝에 화장실이 있으니 빨리 다녀와라.” 소변을 보며 생각했다.화장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쪽문이 보였다. 나는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얼마를 달렸을까 나는 처음 보는 철길에 앉아 울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아버지와 일꾼들이 찾아 왔다. 얼마 후 우연히 다리가 완쾌 되었다.
지난 10월 全國耳順테니스 대회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어 보며 하나님께 感謝했다.
2009. 12. 11.
|
|
'24. 사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4. 1. 7. 사진 일기(안시회 대공원 모임) (0) | 2014.01.07 |
|---|---|
| 2014. 1. 6. 사진 일기(박수흠 테니스 동호인 선배 88세 생일 잔치) (0) | 2014.01.06 |
| 2014. 1. 4. 사진 일기(교회 출석을 다짐 하면서) (0) | 2014.01.04 |
| 2014. 1. 3. 사진 일기(월계수 동호인과 테니스를 즐기다.) (0) | 2014.01.03 |
| 2014. 1. 2. 사진 일기 (0) | 2014.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