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3. 9. 23. 사진 일기

무봉 김도성 2013. 9. 23. 04:43

   

                                                                        홈피 바로 가기 

오늘 날씨 궁금하시지요.

아래 클릭해 보세요.

바로가기

전국        Daum 미디어다음 날씨

 선택지역

 

이제 머지 않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겨울을 맞이하는 나무와 풀들은 화려했던 무성한  잎과 꽃들을 미련 없이 내려 놓을 것이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하나의 성장과정으로 죽음의 겨울잠을 자고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잎이나고 꽃을 피울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얇은 옷을 벗어버리고 더 두꺼운 옷으로 갈아 입고 움추린 몸으로 겨울의 혹한을 견디면서 새봄을 맞이하겠지.

그러 저러 한 날을 자고 새며 이어져 온 날들을 돌아보니 수고하고 괴로운 날들인것 같아 삶이 허무함을 새삼 느껴 본다.

인생을 칠십을 살다보니 바람에 날리는 백발이요 등에 앉은 메뚜기도 짐이되어 수고로운 짐들이라는 성구가 생각이 난다.

아내가 중국 여행중에 입에 맞지 않은 찬으로 입맛이 없을 때 먹으라고 고추장에 호두와 멸치를 볶아 한 도시락 챙겨 주었다.

함께 여행을 하는 문우동지와 함께 마실 팩소주도 20여객 가방을 채우니 무게가 꽤 나간다.

간식과 술 안주로 고추장 김 황태포 멸치 볶음 컵라면 5개를 준비했다.

중국여행중에 절대로 농산물 기타 선물을 사오지 말라는 아내의 특별한 부탁이다.

 

오늘도 아침 6시 코트에 제일 먼저 나가 코트를 정리하고 라인을 그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대접 받기보다 먼저 봉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신뢰와 사랑의 정을 더욱 두텁게 하고 싶었다.

온 몸에 땀에 젖도록 2셑 경기후 집으로 왔다.

 

 

 

 아침 6시경 테니스 코트에서 바라본 새벽달

 

         밤의 연가戀歌

             무봉 김용복

우리는 밤에만 만나 사랑했지.
유령이 춤추는 공동묘지에서
시신이 타고 나간 상여 집에서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

우리는 박쥐처럼 밤에 사랑했지.
4월 밤 연가 소리에 풋보리 춤추며
종달새는 옆 둥지에서 알을 품었고
우린 서로 엉켜 사랑을 품었다.

우리는 들쥐처럼 숨어 사랑했지.
소나기로 온몸을 적셨던 그날 밤
물방앗간에서 옷 말리던 그녀
가냘픈 어깨 위에 사랑이 피었다.  

우리는 반딧불 따라 사랑했지.
이목이 두려워 도둑처럼 담 넘고
방중에 만나 새벽에 헤어진 사랑
그래도 우리 사랑은 즐거웠다.

우리는 차가운 새벽까지 사랑했지.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헤아리며
묘지 상석의 온기로 몸을 녹이고
유령들의 축복 속에 사랑했다.

잠시 떠올린 사랑이 비에 젖는다.
창가에 부서져 내리는 밤비를 보며
별이 섞인 눈물 쏟던 그녀 초상을
마음의 화실에 걸어 놓고 감상한다.
        2012. 5. 28.

 

 

 아침 테니스 경기를 즐기는 회원들

 

       빗방울

                  무봉 김 용 복

고인 물에 빗방울이 원을 그렸다.
빗방울 하나에 원하나 그리고
빗방울을 중심으로 원은 커져갔다.
또 작은 원은 큰 원으로
커진 원은 부서지고
빗방울은 원을 만들고
나의 시선은 원 안에 멈췄다.

나의 유년 시절
어머니의 젖꼭지가 생각났다.
톡 튀는 빗방울이 젖꼭지로 보였다.
빗방울이 만든 원 안에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어머니의 젖을 빨고
어머니는 나를 보고 웃는다.

바람이 홱! 지나며
고인 빗물을 흔들어
원을 지워 버렸다.

계속해서 비는 내렸다.
빗방울이 나의 동심을 자극했다.
혼자 집 보는 날 오후
천둥 번개 치며 소나기가 내렸다.
초가 추녀를 타고 내린 빗줄기가
안마당에 흘렀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비를 구경했다.
고인 물에 낙숫물이 원을 만든다.
천둥번개에 놀란 가슴에도
울렁울렁 원을 만든다.
기다리는 마음 안에
엄마 아빠를 그려 놓는다.

빗방울에 홀렸나보다.
고향의 신작로가 보인다.
가로수가 한 점으로 모이는
여름밤의 신작로에
줄기차게 소나기가 내렸다.

아무도 없는 자갈길 신작로를
그녀와 한 몸이 되어 걸었다.
마치 샤워꼭지아래 엉겨 붙은
석고상처럼
올려보는 불꽃같은 그녀의 눈
내려 보는 짐승남의 애정에
온 몸을 녹여버린 사랑이
오늘 내리는 빗물이 되어
가슴을 채우고 넘친다.

     2012. 8. 30.

 

 

 수원화성의 동북포루

 

          흔적(痕迹)

             무봉 김용복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꽃가지가 바람 따라 고개 숙이고
구름이 지나간 자리는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또 다른 구름이
허공을 메운다.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사랑은
흔적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장미꽃 붉어진 5월의 *哀歌는
혹시나 하는 그리움으로
가슴에 주름을 만든다.

함께했던 산사 앞 명경 수에
얼굴을 담아보니
예, 보던 얼굴은 간데없어
하늘을 올려보니
해 그림자가 얼굴을 스친다.

독경소리 찾아
흐트러진 마음을
향불에 빗질해 보지만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가슴에서 思慕의 情이 요동친다.

바람이 불고 지나간 자리에
하얀 머리칼을 남기고
검은 머리 그녀를 찾으나
찾을 수 없어
또 하나의 흔적을 포개 놓는다.

      2012. 5. 27.
*애가 [哀歌] : 슬픈 노래나 詩歌

 

 

 오전 12시경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이것이 인생이다!! ...

 

  


 

               전남 고흥군 금산면 도양읍

                        (소 록 도)

 

고흥군 금산면에 속하였으나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양읍에 편입되었다.
1974년 도양읍 소록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국립나병원(1916년 2월 설립)이 있다.

 

국립나병원은 1913년에 발족한 조선나병근절대책연구회를 모태로 일제가

1916년 2월 당시 금산면 소록도를 매수, 건물 47동을 건축하고 소록도

자혜원이라 하고 1917년 부터 환자를 수용했다.


6.25때 이곳을 지키다 순직한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는 순록탑,

그리고 육영수 여사의 공덕비, 한하운 시인의 시비 등이 있다.

이곳은 작은 록도라하여 소록도라 하였다.


주요 생산물로는 마늘(풋마늘)을 생산하고, 돼지 등을 길러 소득을 올리고 있다.

중앙공원은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는 곳이다.

 

 

 

소록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K신부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신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아닌 듯 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신부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저에게는 모두 열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 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

한 발 두 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해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올라와 함께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 주면 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셋째,   넷째......,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다 내다버린 아이,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를 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 버린 한포기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그분을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신부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신부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ㅡ옮긴글 ㅡ

 

 

 

 

 

 

'도사'가 되라

 

 

 

흔히

"마음을 닦는다"고 하면

종교적인 수행을 연상할 수도 있겠으나,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열심히 혼을 다해 일하는 것,

그것만으로 족하다. 라틴어에 '일의 완성보다

일을 하는 사람의 완성'이라는 말이 있다.

소위 철학은 열심히 흘린 땀에서부터

생겨나며, 마음은 날마다의

노동을 통해 연마된다.

 

 

 

- 이나모리 가즈오의《카르마 경영》중에서 -

 


 

 

 

//
    비상을 꿈꾸며 북경의 아침, 밤새 거치대에서 잠자는 내 자전거를 찾았다 바퀴살에 잘려나간 시간들은 녹슨 채 뼈대마다 덕지덕지 붙어있고 이가 흰 바퀴살 사이로 힘든 속내가 얼비친다 백미러 없이 질주했던 날들의 흔적이 닳아진 바퀴자국에 선명하다 바퀴 속에 부풀려 있던 욕망, 다 빠져 나가고 안장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천리마의 비상을 꿈꾸며 내가 깨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새벽어둠이 땅속으로 숨어들자 아침햇살이 링거첢 자전거 팔에 꽂힌다 아직 녹슬지 않은 바퀴살이 아침햇살을 뿌리며 거리에 아침을 나른다 詩/최영준

          http://cafe.daum.net/sogoodpo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