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데이트
김도성
저녁노을 하루해가 초등학교 운동장 귀퉁이 녹슨 그네에 걸렸다
텅 빈 운동장에 크고 작은 발자국들이 고물거리며 기어 다닌다 뱉어낸 말소리가 교실 처마와 느티나무 속에서 재잘거렸다
아내와 나는 해를 등에 지고 나란히 서보았다 운동장에 길쭉한 부부 그림자 아내가 기울어진 피사탑처럼 내게 기댔다
천둥과 번개가 아내의 *머리를 치고 간 것이 3년 그림자도 눈물을 쏟는다
왼손은 며칠 전에 뽑아 놓은 무청처럼 늘어졌다 그나마 성한 오른손이 나의 왼손을 잡고 걷자고 한다 나는 지팡이가 된다
가끔 나의 얼굴을 올려 보며 반지 끼운 왼손가락을 좋다는 신호로 으스러지게 쥐었다 놓았다 했다
아프기 전 손잡고 산책하는 부부가 그렇게 부럽다고 했다
그때 산책하며 내 손 잡도록 했건만 누가 보면 얼른 손을 빼던 소심한 아내였다
오늘은 그때 못한 서운함을 채우려는지 반지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아프다 그래도 나는 참았다
“여보! 그리도 좋소.” “네, 이 손 죽을 때까지 놓지 마요.” 무엇인가 주먹 같은 것이 나의 심장 속을 내리쳤다.
* 아내가 뇌경색으로 3년간 병원에 있다가 얼마 전 퇴원해 집에 오게 되어 저녁마다 함께 걷기 운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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