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6. 9. 10. 사진일기(아내 외출)

무봉 김도성 2016. 9.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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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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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b08ff7BiwuOBEnjfnmijm

배탈은 좀금 덜했으나 치통은 여전했다.

아무래도 일요일 발치를 해야 할 것 같다.

몇년전 위니를 발치하고 그대로 방치한 고나계로 아래니가 솟아 뿌리가 흔들려 발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아래위치아를 임플란트로 새로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두경기계속하여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니 10시가 되었다.

서각작품 포스터 칼라로 그림과 글자를 칠했다.

오늘 아내가 토요일이라 외출한다기에 병원으로 갔다.

10시 30분경 아내를 태워 병원을 나오면서 홈풀러스에 들러 추석에 먹을 음식과 필요한 생필품을 샀다.

그리고 아내가 티김이 먹고 싶다해 사주고 아예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가 양념가장을 만들어 달라기에 전골 냄비에 멸치 다시마 디포리 대파 양파 오가피 대추 청양고추 표구버섯 에 물을 넉넉히 붓고 진간장 반병을 넣어 다렸다.

모든 요리나 국에 이 야념간장을 넣어 요리하라고 했다.

간장 맛을 보니 만나니 간장으로 고기를 구어 찍어 먹어도 먹을 만했다.

 오후 3시경 아내 목욕을 해주고 잠시 쉬었다가 아내 저녁상을 차렸다.

한우등심을 굽고 황태구이 상추쌈 종갓집 배추김치로 아내 저녁상을 차렸다.

전녁식사후 6시경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병원을 나와 곧바로 테니스 코트에 갔다.

젊은 회원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서각작품 마무리 라카칠으한후 8시경 집으로 왔다.

새벽 5시부터 꼬박 서서 하루를 보냈다.



아침 6시경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화홍테니스 조기회원들



아침 테니스를 즐기는 광경



수원 화성 동북포루



글자와 그림에 포스칼라 넣기



서각작품 만드는 과정



야간 라이트 경기하는 장면



화홍테니스 회원들



수원화성



친선경기 기념


-장면과 조병옥- (3055)

 

요새 젊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장면과 조병옥 - 그러나 자유당의 장기집권에 항거하던 50년대에는 가장 두드러진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 일제 때 미국 유학을 한 사람들인데 장면은 본디 황해도 중화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일제 때에는 혜황동에 있는 동성상업학교의 교장 일을 보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품행도 단정하여 정치판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4‧19의 격랑 속에 탄생한 내각책임제의 민주당 정권하에서 소위 민주당 신파로 국무총리의 자리에 올라 그 혼란에 그 자리를 몇 달밖에 지키지 못하고 5‧16군사혁명으로 얼마동안 갈멜수녀원에 은신하고 있다가 그 군사정권에 투항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조병옥은 성품이나 기질이 장면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충청도 공주 태생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장면의 온화한 얼굴에 비해 조병옥의 얼굴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관상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얼굴을 ‘위맹지상’(偉猛之相)이라고 한다는데 한번 보면 한 평생 잊을 수 없는 특이한 얼굴이었습니다.

암살당한 장덕수의 집이 제기동에 있었는데 장덕수 기일에는 그의 부인 - 여러 해 경기여고의 교장이었던 박은혜가, 그 집에서 해마다 추모예배를 가졌습니다. 그 날 그 자리에는 조병옥이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에 앉아있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합니다.

해방되고 조병옥의 딸 하나가 이화여대에 다녔습니다. 그 때는 교통이 아주 불편하던 시절인데 연대‧이대 학생들이 다들 걸어서 북아현동 고개를 넘었습니다. 한번은 앞으로 가던 여대생 중에 날씬하고 옷도 잘 입은 학생을 보고 다들 한번 놀라고 감탄했는데 두 번째 놀란 것은 뒤따라가던 남학생 하나가, “재가 조병옥 딸이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그 여대생이 뒤를 돌아다 봐 세 번째 놀랐는데 그 날씬한 여대생의 얼굴이 조병옥을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제 때에도 일본인들에게 굽히지 않고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일제 말기에는 연희전문의 강사 자리에서도 쫓겨나 정말 생계가 막연했답니다. 그렇던 어느 날 조병옥은 잘 사는 친구 한 사람을 찾아가 다짜고짜로, “너는 내가 죽으면 문상 오겠지?”라고 하더랍니다. “물론 가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조병옥이 그 친구에게 “너 그 때 빈손으로 오겠냐 아니면 봉투라도 하나 들고 오겠냐?” “아무렴 빈손으로 가겠냐? 봉투 하나는 들고 가지!” “얘, 나 요새 매우 힘들다. 그 봉투 지금 다오!” 조병옥은 그렇게 말하고 조위금이 든 봉투를 살아서 받아 쓴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요새 세상에는 이런 인물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재미없는 나라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너와 나의 인연


이토록 넓은 세상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당신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또한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남녀의 인연이란

그래서 눈부시게 두렵고

아름다운 기적이다.

- 최인호의《인연》중에서 -







          9월의 노래


                   무봉


        처음처럼 소중한 것도

        없어 서일까

        9월 첫날

        유난히 인사 글이 많다


        첫 아들, 딸

        첫돌

        첫사랑


        더위로 지쳤던

        여름 지나

        첫가을 9월엔


        사랑이

        다가 올 것 같아

        파란 하늘을 자주 본다.


            2016.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