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꿈
무봉 김용복
칠흑 같은 어둠이 가르마 타는 밤
포성이 울리고
섬광이 바다건너 하늘을 밝혔다.
잠시 후 하늘을 찢는 제트기 굉음이
북에서 남으로 가늘게 늘어지며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소년의 눈에는 무서움이 흘러넘치고
어머니의 품을 파고들며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마치 유월절의 심판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아픔의 비명소리가
날줄과 씨줄에 공명되어 귀청을 울렸다.
여명이 핏빛으로 물들고
연암 산 햇살이 어둠을 거두는 아침
삼밭에서 울려오는 비명소리의 심장에서
소년을 업고 놀아주던 머슴 삼용이 형이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죽음을 삼키고 있었다.
"아! 어찌 우리 잊으리오."
"6.25전쟁,"
10살 소년의 고향에서도
인민은 평등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지주와 소작인이 하루 밤 사이에
반상이 바뀌고 주종의 상충相衝으로 피를 토했다.
철없는 소년은 화약연기 퍼지는
사형장의 시체들 속을 뒤져 탄피를 주었다.
장난감 총을 만들어 탄피에 화약을 넣어
거친 전쟁놀이에 빠졌다.
어느 날 소년은 사형장의 공포에 놀라
도망쳐 달리던 비탈길에 넘어 졌다.
퍼렇게 멍든 무릎의 통증으로 걸을 수 없었다.
전쟁으로 닫아버린 시골병원
돌팔이 침쟁이 노인의 우측정강이 골절 오진으로
미루나무 부목을 무명천으로 동여매고 한 달
노란 고무풍선처럼 말갛게 고름이 잡혔다.
때늦게 찾은 병원, 뼈가 썩는 고질병이 되었다.
소년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통증이 심했고
연약한 생명마저 수분을 뺏긴 식물처럼 시들어 갔다.
세 차례의 뼈를 깎는 수술도 허사였고
소년의 다리는 푸줏간의 고기처럼 난도질당했다.
소년은 땅에 엉덩이 부치고
두 손을 땅을 짚고 한 다리에 의지해 몸을 움직였다.
얼마 후 석고 붕대를 풀었다.
콩알 크기의 정강이뼈가 아물지 않았다.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데 지장이 없었다.
소년의 꿈은 어두운 항아리 속에 갇혔다.
아무리 걸어도 어둠에 싸인 둥근 벽들로
벽을 부수려 긁었으나 솥 끝에 맺히는 피멍.
실낱같은 희망도 희미하게 부서지고
손을 뻗어 잡으려도 허공을 젓는 연약한 생명의 절규
죽음의 신들이 광란의 춤을 추었다.
꿈을 잃은 소년에게는
용기마저 바닥을 기어가고
어둠의 그림자가 구름처럼 오고갔다.
예정된 불길한 운명에 사로잡혀 헤어 날 수가 없었다.
소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슬프게 젖어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슬픈 날을 보내며 휴전이 되었다.
50리 밖 도립병원을 가기로 했다.
귀한 아들 비포장도로 털털이 마차 태울 수 없어
장정 네 사람의 들것에 태워 새벽길을 나섰다.
나사렛 예수를 찾아가는 앉은뱅이처럼
소년의 얼굴에 쏟아지는 샛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진 병원
흰 가운 입은 의사와 간호 원 모두 차갑게 느껴진다.
소년의 다리를 살피던 의사는
지금 당장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무릎 위까지 썩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한숨이 발등을 깼다.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며 소년을 설득했다.
수술대 위에 커다란 조명등이 켜졌다.
냉기가 돌고 적막한 수술실 천정이 높았다.
수술대에 누운 소년의 가슴은 쿵쿵대는 떨림 속에 눈물이 흘렀다.
손과 발이 묶이고 이제 수술 전 마취가 시작된다.
소년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눈길을 피해 고개를 젖혔다.
고였던 눈물이 주르르 옷소매를 타고 흘렀다.
수술대 옆에는 절단용 톱이 소년을 삼킬 듯이 기다렸다.
소년은 한쪽 다리가 없는 자신을 생각했다.
이제 겨우 열 살 한 쪽 다리 없는 삶은 죽음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나 오줌 마려."
"그래 아들아! 복도 끝에 화장실이 있어."
소년은 소변을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가 "야! 도망가." 소리쳤다.
화장실 뒷문으로 뒤도 보지 않고 병원을 나와
처음 보는 철길을 따라 달리고 달렸다.
해는 서산에 지고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소년은 철길에 앉아 울었다.
아버지와 일꾼들이 찾아 왔다.
소년과 아버지는 한 동안 엉켜 울었다.
"아버지! 나 수술 안 할 네."
"그래! 아들아! 알았다."
한방의 침과 뜸으로 치료가 되었다.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믿음으로 살고 있다.
2012.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