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9. 4. 13. 사진 일기(서각명패 작업, 테니스코트 배수로공사, 주변 벚꽃 촬영, 진선생, 한시인 저녁 식사)

무봉 김도성 2019. 4. 13. 05:49

   


 http://blog.daum.net/ybok1004/ 

전국 경기 수원시 장안구(현재접속지역) 읍·면

어제 밤 저녁 식사 후 아내와 함께 아파트 주변 벚꽃 길을 산책했다.

 "내년에 다시 벚꽃을 볼수 있을까?"

아내가 벤치에 앉아 독백을 한다.

 "여보! 내가 없으면 당신 혼자 살 수 있을까?"

나는아내에게  물었다.

"……"

한 동안 말이 없다.

" 난 당신 없이 혼자 못 살아요."

그 말이 이른 새벽부터 자꾸 마음에 걸린다.


나를 산처럼 바위처럼 믿고 하루 하루 살아가는 아내가 불쌍하다.

아침상에 계란 찜 하나와 먹던 김치 찌개 데우고 어제

두째딸이 가져온 오징어 무침과 콩장 밑반찬으로 상을 차려 주었다.

근 1개 월 장염으로 고생 하였기에 함부로  기름진 육류를 먹이기가 조심 스럽다.

점심에는 태능 식당 우거지 국을 포장해 가져오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나는 생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젊은 회원들과 어울려 한 셑 경기를 했는데 이제는 공이 빠르기에 숨이 찼다.

오늘 테니스 코트 배수로 공사를 한다는 공지를 듣고 2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맨홀 흙을 제거 했다.

회장 부부가 나와 오늘 수고하는 회원들에게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나는 그대로 있기가 미안하여 커피를 타서 수고하는 회원들에게 배달을 했다.

바다 낚시를 좋아하는 회장 동생분께서 간밤 낚시로 잡아온 도미 우럭으로 매운탕 지리를 끓였다.

그리고 밥과 삼겹살 수육을 야채와 푸침하게 차려 놓고 막걸리를 돌렸다.

덕분에 저누리 점심을 11경에 맛있게 먹으며 반주로 막걸리 한 잔 했다.



오늘 점심으로 아내에게 태능식당 우거지를 포장해 주기로 했는데 도미 매운탕을 보니 아내가 생각이 났다.

회장 부인이 나를 보자 마자 식사하고 가면서 아내에게 드리라며 도미국을 넉넉하게 포장해 주었다.

회원들은 아내가 몸이 불편하여 내가 식사를 하며 살아가는 형편을 알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아내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밥도 못 찾아 먹고 옷도 챙겨 입을 수 없다.

남에게 절대로 구차하게 아쉬운 말과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자존심이 강한여자 였는데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사람의 한 평생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生老病死  어이타 아내에게 찾아 왔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죄가 많은가 보다.

모 친목회 회원이 5월 중 일요일에 봄 나드리 가자고 하여 대답은 했으나 하루 종일

차를 타는 것도 그렇고 이동하는데 불편으로 다른 회원에게 누가 될 것 같아 아내와 나는 가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 함께 해외에 여행도 다니고 우리나라 전국 1박2일 함께 다녔던 추억만

가슴에 담기로 했다.

아내가 도미국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내 형편을 알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삶에 힘을 얻는다.




아침 7시 테니스 코트에 나가며 한일타운 아파트 벚꽃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면사포 쓴 신부처럼 아름답다.






한일 타운 아파트 중앙로



삼일공고 테니스 코트옆 무궁화 동산






1976년 내가 삼일상고에 부임해 오던해 심었던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나는 1976년부터 거의 매일 이곳에서 테니스로 하루를 열고 있다.




삼일상고와 공고



맨홀 흙을 제거하는 회원들





2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하여 자진 봉사를 했다.






수원화성으로 둘러진 성곽안 쾌적한 테니스 코트 주변 소나무처럼 우린 젊게 살고 있어 행복하다.



노소가 동락하는 형제우애같은 사랑이 넘친다.






동호인 손자손녀 자녀들도 겅강하게 자란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먹는다.




이대진 회장 내외와 집행부 임원들의 수고에 감사한다.


 





2019/04/13(토) 아들딸이 있어도 (348)

 

아들딸이 있어도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는 게 한 가지가 있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는다는 가렴주구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납세의 의무가 매우 심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대한 의무가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었다. 모든 남녀는 그 의무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만 했다.

 

그런데 딸만 낳아 가지고는 그 의무를 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이 있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은 남편이 외도를 해서라도 아들을 하나 마련해 오기를 기대 했다. 딸만 다섯 또는 여섯을 둔 사람들도 있었는데, 혹시나 하고 낳으면 또 딸, 또 한 번 노력해도 또 딸을 얻은 결과였다.  내가 잘 아는 이화여대의 박준희 교수는 딸 셋을 낳고 아들 갖기를 포기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딸 삼 형제가 모두 예쁘고, 머리가 좋아 어디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자랑스러운 딸들이었다.

 

그러나 박준희 교수의 홀로 되신 어머니는 저녁상을 물릴 때마다 이 집안은 이제 망했구나라고 날마다 되풀이 하며 탄식을 하니 효성이 지극한 그 아들이 마음이 괴로워서 아름답고 착한 부인에게 이일을 어쩌면 좋지라고 호소 아닌 호소를 했다고 한다. 그 부인이 대답하기를 또 한 번 노력을 해보아야지요라고 찬성의 뜻을 표하여 드디어 꿈이 일단락 이루어졌다. 드디어 그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 그러나 이일을 어쩌면 좋을까?” 낳고 보니 쌍둥이 딸, 그리하여 그 집에는 딸이 다섯이 되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아들딸을 구별하지 않을 뿐더러 도대체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도 않으니 지금 있는 아들딸들만 가지고 인류의 장래를 꾸려나가야 하나? 이래저래 호모사피엔스는 이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설마 그런 세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김동길

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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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꽃 /청원 이명희 꿈과 이상이 교직되는 계절 고요 속 바람 한 줄기 파생된 자전을 찾아 무거운 장막을 걷어 낸다 한 생을 가시로 박혀 삶을 찌르던 향기 풀리지 않은 혼돈으로 앞질러 달려만 갔던 애환 어둠속에서 빛나는 갈등의 등불을 켠 채 굴절되어 굽혀진 등을 펴고 한껏 밀어 올려 핀 한 송이 꽃 살아있다는 생명의 환희 그대와 함께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