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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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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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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연일 계속되었다.
어제 과음한것이 몸이 조금 무겁다.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무더운 날씨지만 두게임 연속 경기로 땀을 흘렸다.
운동후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신뢰치과 표어 서각작품을 복사를 했다.
잠시 라카에 앉아 강도순 선생 사모와 카나다 생활 이야기를 대화했다.
11시경 집으로 와서 점심식사후 오후에 낮잠으로 피로를 풀었다.
두째손자 대학입시관계로 큰 딸이 오늘 상해에서 한국에 온다고 했다.
저녁식사후 아내와 함께 아파트를 산책을 했다.
2018/07/25(수) 유신 헌법이 웬 말이냐?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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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진퇴양난의 어려운 인생길에 접어들었다. 호랑이의 꽁지를 붙잡고 달려가는 사람 같기도 하고, 절벽을 향하여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같기도 하여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에게 만일 윈스턴 처칠이나 또는 드골 같은 위인들의 철학이 살아있었더라면 그는 자기의 삶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미련 없이 후계자를 물색하여 그 자리를 물려 주고 다른 일을 하면서 여생을 즐겼더라면 오늘의 한국이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그릇된 철학이 박정희를 낭떠러지로 몰고 간 것이다. 민주 국가에서 ‘찬성할 자유는 있지만 반대할 자유는 없다’는 유신 헌법이 선포되었으니 그가 자기편의 골문 앞에서 자살골을 차 넣는 한심한 축구선수와 다름없는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궁정동에서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을 들으며 얼근하게 취해있던 민족중흥의 영웅 박정희는 심복이라고 할 수 있었던 김재규의 총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그가 사랑했던 조국을 하직하였다. 어쩌면 그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니었겠는가? 김동길 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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