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6. 12. 17. 사진 일기(팔도문학출판기념회 참석/아산)

무봉 김도성 2016. 12.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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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을 챙겨 먹고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아직도 몸살감기가 낮지 않아 몸이 괴로웠다.

오늘 오후 2시 안산역에 팔도문학 정기총회와 출판기념회가 있어

11시경 집을 나섰다.

수원역에서 신창행 전철에 올라 12시 30분경에 아산역에 도착했다.


2016. 12. 17. 14:00 천안 하수종처리시설 본관 2층 영상홍보실에서 팔도문학회 정기총회 및 팔도문향7집 추판기념회를 내외빈과 팔문학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 그동안 수고하신 박인태 회장인과 양경자 사무국장에게 감패를 전달하고 신임회장에 김상영 작가와 사무국장에 차애련 시인을 선출했다.


오후 4시경 저녁 식사후 5시 해산하여 집에 오니 7시가 되었다.

오늘은 아내가 집에와서 막내 딸이 목욕 시켜 다시 병원에 갔다.








2016. 12. 17. 14:00 천안 하수종처리시설 본관 2층 영상홍보실에서 팔도문학회 정기총회 및 팔도문향7집 추판기념회를 내외빈과 팔문학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 그동안 수고하신 박인태 회장인과 양경자 사무국장에게 감패를 전달하고 신임회장에 김상영 작가와 사무국장에 차애련 시인을 선출했다.












(동영상 2부)

 

 

 

 http://tvpot.daum.net/v/v3462Ke03bH0bDA8LD6DK1b

 



2016/12/17(토) -주로 걱정만 하는 모임- (3153)

 

옛날에 ‘우국노인회(憂國老人會)’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노인들이 모여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들이 나라의 위기에 슬기와 용기를 주었다고 오늘 돌이켜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어느 지방 도시의 ‘국가안보모임’에 강연 요청을 받고 아침에 집을 떠나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이 시대의 ‘우국노인회’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사업하는 어느 한 독지가가 열심히 벌어서 여러 해 이끌어온 단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으로 시작한 모임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은 ‘안보를 걱정하는 모임’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나야말로 ‘우국노인’이기 때문에 나보다는 다 젊은 노인들에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었습니다. “오늘의 한국이 패망 직전의 월남과 같다”는 말이나, “오늘 한국의 지도층 40%는 빨갱이들이다”는 말도 사실무근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우실 때 ‘홍익인간(弘益人間)’을 표방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세계평화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평화를 위하여 반드시 지구상에 살아있어야 할 나라고, 질서정연한 평화적 시위를 연일 세계에 보여준 수준 높은 나라입니다.

북의 핵무기도 무섭지 않고,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악당들도 두렵지 않습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국기경례


    무봉 김용복


    [나와 6·25] 마을에 걸린 인공기를 발기발기 찢고 국군에 "들어오라" 신호보낸 주지스님

    나와 6.25 조선일보 기사

    2010. 4. 23. 조선일보 6면


    ▲ 내 고향은 충남 서산시 고북면. 유엔군이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되찾은 직후

    우리 마을에도 국군이 북한군 잔당을 소탕하러 진격해 왔다.

    하지만 국군 탱크는 면 소재지 남쪽 언덕에 머무른 채 공포(空砲)만 쏘아대고 있었다.

    마을에 인공기가 걸려 있는 탓에 아직 북한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섣불리 내려오지 못한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9월 30일이었던 것 같다. 새벽녘에 "팡" 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밖에 나가보니 6척 장신(長身)의 스님 한 분이 오른손에

    사제(私製) 권총을 들고 늠름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인근 고찰(古刹)인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의 주지였다.

    스님은 면사무소에 걸린 북한 면당위원회 간판을 주먹으로 일격(一擊)해서 떼어낸 후

    우물에 처박아버렸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의 무공을 보는 듯했다.

    이어 스님은 바로 옆 주재소(경찰지서) 국기게양대에 걸린 인공기를 내려 발기발기 찢어버린

    뒤 허리춤에서 태극기를 꺼내 최대한 높게 게양했다.


    '신호'가 올라가자 그제야 국군 탱크는 마을로 내려왔다.

    국군을 본 마을 사람들은 통곡을 했다. "하루만 먼저 오지 그랬소.

    그러면 우리 아들이, 우리 남편이 죽지 않았을 텐데…."

    바로 전날 밤 북한군은 임시 감옥으로 사용하던 소방대 창고에 불을 질러

    가둬두었던 공무원과 지주(地主)들을 죽였다.

    태극기가 하루만 더 일찍 올라갔더라도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스님에게 왜 그런 활약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소방대 창고에서 죽어가는 사람 목숨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다들 생각했다.


    커서 교사가 된 나는 학생들에게 스님과 태극기 이야기를 수십 년간 해왔다.

    60년이 지났지만 스님의 통쾌한 몸동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위 기사는 2010. 4. 23. 조선일보에 투고한 기사이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안보불안이 가중 되는 시기에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단결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