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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경기 수원시 장안구(현재접속지역) 읍·면
아침부터 비가 내려 테니스 못했다.
아침 식사후 잠시 습작에 몰두하다 10시 치과에 갔다.
오래전에 신경치료한 치아가 썩어 부러 졌다.
오늘 그 부러진 치아를 발치하는 날이다.
별 고생없이 발치하고 집으로 왔다.
3시간동안 지혈 솜을 물고 있다가 1시 지나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후 소염 진통제를 복용후 피곤하여 잠시 낮잠을 잤다.
저녁식사후 아내데리고 아파트 걷기 운동후 하루를 마감했다.
구두 속의 쪽지
무봉 김 도 성
해마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일이 두 가지가있다. 몇 년 전 스승 날, 아파트 한 단지에 살고 있는 맞벌이 큰 딸이 출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손자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들려 보내라고. 손자는 벌써 학교에 가고 없다며 아내 걱정이 태산이다. 선생님께 꽃을 드리지 못하는 어린 손자의 얼굴이 눈에 밟힌단다. 꽃을 준비 못한 딸아이가 나는 못 마땅했다. 당장 전화로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직장일이 바빠 준비 못했으리라 짐작 되어 참았다. 어린 손자의 가슴에 선생님에 대한 은혜 하는 마음을 심어 주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꽃집에서 카네이션 두 송이를 준비해 손자에게 주며 하나는 네가 선생님에게 공손이 인사드리고 꽃을 드려라. 그리고 나머지 한 송이는 너처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친구에게 주어라. 어린 손자지만 알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대견스런 손자가 귀여워 우리부부는 기분이 좋았다.
평생을 교직에 있다가 정연한 나는 8년 전 일이 생각이 났다. 남여 전교생 2천여 명 되는 실업계 고등학교 교장 재직 중이었다. 겨울 방학 전 학생들 마지막 고교졸업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할 일이 있어 학생들이 하교하고 전 직원이 퇴근 한 후 늦게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퇴근길 현관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 신었다. 그런데 구두 속에 곱게 접은 하얀 쪽지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회시간에 훈화를 하셨죠.” “그런 데 저는 억울합니다.” “오늘 상업영어 시험시간에 분반 학급 여3-2 A에서 주관식 문제를 커닝을 했답니다.” “저는 밤을 새워 공부해 B반에서 정직하게 시험을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조사하여 바르게 시정해 주세요.”
편지의 내용은 짧지만 부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학생의 요구가 강하게 가슴을 울렸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높은 성적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발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고 부정행위자를 그대로 방치 할 수가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쪽지를 여러 차례 읽으며 나는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출근하여 교감선생님께 직접 조사해보라 했다. 교직 경험이 없는 기간 제 여교사가 늦게 등교한 학생을 훈계하는 중에 23명 중 21명이 주관식 한 두 문제를 앞뒤로 보았다고 시인하는 자술서를 썼다. 성적관리 규정에 의거 해당과목 0점 처리, 부정행위자 21명을 징계토록 했다. 교감과 주임교사가 그대로 덮어두자 했다. 그러나 모든 결정의 결과는 교장이 책임을 면 할 수 없다. 부정행위자 21명 보다 부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한 학생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그대로 덮어 두면 정직한 한생의 나에 대한 불신의 상처가 두려웠다. 나는 고민과 번민 속에 원칙으로 처리 하는 것이 진리라 생각 했다.
학생들이 도교육청 홈피에 살려 달라고 글을 올렸다.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학생 민원이 없도록 처리하라고 전화가 빗발 쳤다. 나는 학생과 학교 교육은 학교장인 제가 한다고 일축했다.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의 내신이 유리하도록 평가 난이도를 낮추는 사례가 빈번했다. 21명 유기정학 대상이나 교장 재량권 행사로 하루근신에 유리 청소를 하게했다. 유기정학을 받으면 취업 확정된 학생이 규정상 취업이 취소되었다. 만약 유기정학으로 처리 할 경우 학생들에게 가혹한 벌이라 생각했다.
교육청 출입기자가 중앙 일간지에 “우리 교육은 살아 있다.”는 기사를 썼다. 신문 기사를 보고 KBS TV 방송국에서 이른 아침 출근 전에 카메라를 메고 학교에 들이 닥쳤다. 우리나라 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방송에 협조해 달라고 하루 종일 교장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학교명과 학생들 교복은 보이지 않도록 하체만 촬영하기로 합의 하여 할 수 없이 촬영에 협조했다. 결국 학교명은 나오지 않았으나 인터뷰 하는 나의 얼굴이 밤 9시 뉴스에 3분 정도보도 되었다. 어느 교장이라도 그리 처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후회는 없다.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지금도 그 학생들을 사랑한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살아 있는 한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이 지금도, 또 죽을 때 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졸업고사에서 옆에 사람 것 한 두문제보고 시험을 본 경험이 한두 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감독교사에게 들켜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정직한 한 학생과 여러 명의 부정한 학생 모두가 내게는 소중했다. 처벌 받은 학생들이 성적표를 보며 최소한 정직하게 살려는 노력으로 행복하기를 빈다. 사회나 직장생활에서 두 번 다시 부정에 타협하는 일이 없기를 빌어 본다.
2010. 5. 7.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
구두 속의 쪽지
무봉 김 도 성
해마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일이 두 가지가있다.
몇 년 전 스승 날,
아파트 한 단지에 살고 있는 맞벌이 큰 딸이 출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손자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들려 보내라고.
손자는 벌써 학교에 가고 없다며 아내 걱정이 태산이다.
선생님께 꽃을 드리지 못하는 어린 손자의 얼굴이 눈에 밟힌단다.
꽃을 준비 못한 딸아이가 나는 못 마땅했다.
당장 전화로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직장일이 바빠 준비 못했으리라
짐작 되어 참았다.
어린 손자의 가슴에 선생님에 대한 은혜 하는 마음을 심어 주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꽃집에서 카네이션 두 송이를 준비해 손자에게 주며
하나는 네가 선생님에게 공손이 인사드리고 꽃을 드려라.
그리고 나머지 한 송이는 너처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친구에게 주어라.
어린 손자지만 알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대견스런 손자가 귀여워 우리부부는 기분이 좋았다.
평생을 교직에 있다가 정연한 나는 8년 전 일이 생각이 났다.
남여 전교생 2천여 명 되는 실업계 고등학교 교장 재직 중이었다.
겨울 방학 전 학생들 마지막 고교졸업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할 일이 있어 학생들이 하교하고 전 직원이 퇴근 한 후
늦게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퇴근길 현관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 신었다.
그런데 구두 속에 곱게 접은 하얀 쪽지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회시간에 훈화를 하셨죠.”
“그런 데 저는 억울합니다.”
“오늘 상업영어 시험시간에 분반 학급 여3-2 A에서
주관식 문제를 커닝을 했답니다.”
“저는 밤을 새워 공부해 B반에서 정직하게 시험을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조사하여 바르게 시정해 주세요.”
편지의 내용은 짧지만 부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학생의 요구가 강하게 가슴을 울렸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높은 성적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발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고 부정행위자를 그대로 방치 할 수가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쪽지를 여러 차례 읽으며 나는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출근하여 교감선생님께 직접 조사해보라 했다.
교직 경험이 없는 기간 제 여교사가 늦게 등교한 학생을 훈계하는 중에
23명 중 21명이 주관식 한 두 문제를 앞뒤로 보았다고 시인하는 자술서를 썼다.
성적관리 규정에 의거 해당과목 0점 처리, 부정행위자 21명을 징계토록 했다.
교감과 주임교사가 그대로 덮어두자 했다.
그러나 모든 결정의 결과는 교장이 책임을 면 할 수 없다.
부정행위자 21명 보다 부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한 학생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그대로 덮어 두면 정직한 한생의 나에 대한 불신의 상처가 두려웠다.
나는 고민과 번민 속에 원칙으로 처리 하는 것이 진리라 생각 했다.
학생들이 도교육청 홈피에 살려 달라고 글을 올렸다.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학생 민원이 없도록 처리하라고 전화가 빗발 쳤다.
나는 학생과 학교 교육은 학교장인 제가 한다고 일축했다.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의 내신이 유리하도록
평가 난이도를 낮추는 사례가 빈번했다.
21명 유기정학 대상이나 교장 재량권 행사로 하루근신에 유리 청소를 하게했다.
유기정학을 받으면 취업 확정된 학생이 규정상 취업이 취소되었다.
만약 유기정학으로 처리 할 경우 학생들에게 가혹한 벌이라 생각했다.
교육청 출입기자가 중앙 일간지에 “우리 교육은 살아 있다.”는 기사를 썼다.
신문 기사를 보고 KBS TV 방송국에서
이른 아침 출근 전에 카메라를 메고 학교에 들이 닥쳤다.
우리나라 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방송에 협조해 달라고
하루 종일 교장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학교명과 학생들 교복은 보이지 않도록 하체만 촬영하기로 합의 하여
할 수 없이 촬영에 협조했다.
결국 학교명은 나오지 않았으나 인터뷰 하는
나의 얼굴이 밤 9시 뉴스에 3분 정도보도 되었다.
어느 교장이라도 그리 처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후회는 없다.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지금도 그 학생들을 사랑한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살아 있는 한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이 지금도, 또 죽을 때 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졸업고사에서 옆에 사람 것 한 두문제보고 시험을 본 경험이 한두 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감독교사에게 들켜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정직한 한 학생과 여러 명의 부정한 학생 모두가 내게는 소중했다.
처벌 받은 학생들이 성적표를 보며
최소한 정직하게 살려는 노력으로 행복하기를 빈다.
사회나 직장생활에서 두 번 다시 부정에 타협하는 일이 없기를 빌어 본다.
2010. 5. 7.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2020/05/15(금) 수염은 왜 기르나 (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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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은 왜 기르나 50년 쯤 전에 많이 자란 콧수염을 그대로 두고 사회 활동을 하였을 때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수염은 왜 기르시나요?” 수도 없이 하는 그 질문에 “내가 수염을 기르는 게 아니라 깎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대답하여 묻는 사람, 대답한 사람 모두 한바탕 웃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1,2년 사이에 얼굴에 난 수염을 깎지 않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특히 서양인들은 세 사람 중에 하나 꼴은 ‘애발인’인 것 같다. 모르긴 하지만 지난 100년간 서양의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아침마다 면도하는 일이 의무 중에 하나였다고 할 수도 있다. 면도 기구가 원시적이던 때에는 ‘블러디 쉐이빙(bloody shaving)’, 우리말로 옮기자면 유혈이 낭자한 면도가 불가피 하였다. 면도날이 세도록 매일 가죽 띠처럼 된 것에 대고 갈아서 구식 면도칼은 매우 날카로웠다. 요새는 안전면도기(전기면도기)가 생겨서 면도 하는 일이 결코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하루만 깎지 않아도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면도를 하지 않으면 남들 앞에 나서기 어려워하는 사나이들도 있고 자라나는 수염을 그대로 두고 자기 멋대로 조형을 해가며 게으름의 여가를 즐기는 남성들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오래 그런 얼굴로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수염을 보는 여자들이 “멋있다”라고 하는 동안만 가능하지, 여성들이 만일에 “꼴 보기 싫다”라고 하면 남자는 그날부로 깎아야 한다. 그것이 남성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길 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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