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20. 1. 28. 사진 일기

무봉 김도성 2020. 1. 28. 06:47

   


 http://blog.daum.net/ybok1004/ 

전국 경기 수원시 장안구(현재접속지역) 읍·면 


오늘도 어제처럼 이른 아침을 챙겨 아내와 겨상후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가는길에 둥글이 보리과자 한 봇따리 들고 갔다.

한봉 두봉 나누어 주니 달콤한 얼굴로 즐겁게 먹는다.

언제나 아침에 테니스 코트에 나가면 두살 아래 한동수 교장이 커리피를 정성으로 타준다.

누가 시킨일도 아닌데 수십년 함께 테니스를 즐기다 보니 가족처럼 정이 들어 간다.

젊은 회원들과 어울려 한세트 경기후 서각작품 도색 마무리 했다.

작품에 박을 문고리를 사러 매교동 대장간에서 12개 2만 원 주고 샀다.

집에 오자마자 작품에 문고리 박고 30일 오후 3시 작품을 전하겠다고 조은 구슬님과 약속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낮잠을 잤다.

6시 일어나 저녁식사후 아내데리고 산책후 하루를 마감했다.

















2020/01/28(화) 4.15 총선을 생각한다 (638)

 

4.15 총선을 생각한다

독재사회에서도 선거는 실시한다. 권력이 "찬성이냐", "반대냐" 양자택일을 요구하면서 선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선거라는 형식을 거치기는 하지만 독재자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억지로 치루는 선거는 결코 선거가 아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평양에 인민 공화국을 세우면서 교회나 사회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평양에서 어머니를 따라 다녔던 장대현 교회도 다 헐렸고 김화식 목사도 옥중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 들었다. 철저한 무신론의 나라를 하나 세운 것이다.

 

김일성의 어머니는 성이 ''씨이고 이름이 '반석'인데 그것은 틀림없이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었을 것이지만 그 아들은 철저하게 종교를 배척하였다. 그때 시작된 1인 독재 체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반면 대한민국은 선거를 통해 수립되었고, 선거로 유지되는 이른바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원칙을 고수하느라고 애를 쓰면서 부산 피난 시절에도 자유당은 대통령 선거를 감행하였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대한민국의 권력은 선거를 통하여 구성되었던 건 사실이다.

 

415일에 치러질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매우 중대한 선거이다. 오늘의 문재인 정권이 부정 선거, 부정 개표만 하지 않으면 이번 선거에서 자유 민주주의가 대승을 거두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광화문에 운집하는 이 나라 중산층의 뜨거운 열기를 보면서 4.15 총선을 나는 그렇게 내다보고 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나의 고향 나의 아버지

 

김도성

 

명치끝에 숨은 고향을 잊을 수가 없다

손을 뻗으면 잡히는 고향

발자국 뛰면 갈 수 있는 고향인데

고향에는 모두가 낯선 사람이 힐끔 거린다

 

어려 살던 집터에는 낯선 덩치 큰 집이 들고

동구 밖 돌담길도 집 앞 개가죽 나무도 떠났다

묵직하게 하늘을 받친 연암산은 옛 그대로

수덕사 말사 천장암을 품고 있다

 

암자 마루에 걸터앉아 건너본 천수만 갈월암

눈 비벼 바라보지만 가물가물 짐작으로 본다

6학년 12일 수덕사 수학여행 쌀 두 됫박

짊어지고 넘던 30리 산길도 달라지고

 

아버지 연산의 고향 친구가 찾아오면

하룻밤 자고나서 해 뜨는 아침 뒷산에 올라

들녘 내려 보며 친구에게 허풍쟁이 아버지

한쪽 눈 가리게, 보이는 게 내 땅 일세.”

 

밤이면 그놈의 해수 때문에 콜록콜록

그칠 줄 모르는 기침 바튼 숨소리

등잔불 간들거리고 장지문의 아버지

그림자도 고슴도치처럼 굽는다

갈비를 먹을 때면 농사꾼 합죽이

우리 아버지 생각이 더 깊어진다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잇몸으로

턱을 유난히 움직여 고기를 씹던 아버지

 

객지 떠돌기 60년 자리 잡은 수원

가보정 명품 갈비 먹을 때면 생각나는 아버지

임플란트 해 드리고 갈비를 대접하고 싶다

 

앞으로 수년이 지나면 고향이란 단어

국어사전 속에서 뜻을 찾을 날

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더더욱 슬프다

 

2020.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