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흘린 눈물
무봉 김도성
오후 5시경 아내가 홈플러스에 다녀오겠단다. 아내가 불고기 사 올까요? 예! 좋지요.
6시경 저녁 식사하라고 아내가 부른다. 현미 잡곡밥에 미역국, 오징어 볶음, 불고기, 간장조림 풋고추, 김치, 황태 무침, 밥은 세 수저 먹고 반찬으로 배를 채웠다. 소식을 하니 몸이 가볍고 소화가 잘 되어 배가 편하다.
아내와 마주한 식탁에서 남자의 계절 TV를 보았다. 가족 합창 단원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다. 금난새 합창단장과 단원 남자의 계절 출연진이 심사를 했다. 전국에서 참가한 사람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출연했다. 남자아이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성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멋진 인사를 했다. 잘 생긴 얼굴에 어른스러운 태도로 당황하거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소개했다. 장래 희망은 연예프로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동생인 여자 아이가 오빠보다 키가 컸다. 여자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많이 보았던 얼굴이다. 아내가 저 아이들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 연예인 여배우 최진실 자식이란다. 중간 중간 대기실의 할머니 얼굴이 나왔다. 외할머니는 눈에 고인 눈물을 닦느라 손수건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도 가슴이 울컥하며 말라붙었던 눈물이 뜨겁게 흘렀다. 아내도 하늘을 보듯 얼굴을 뒤로 제쳤다. 심사 위원들의 숙연한 모습에서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자막 사진으로 해맑게 웃는 최진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였다. 자식을 둔 부모로 손자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로 사연을 알고 있는 이들은 내일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멨을 게다. 살다 보면 제명을 살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세인들의 가슴에 우상처럼 남아 영화계의 젊은 미모의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건 만도 슬프다. 그런데 그 사인이 사고도 질병도 아닌 자살로 세상을 등진 불효는 용서할 수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부모의 가슴에 못으로 남겠지만 저 철없는 아이들을 두고 떠난 어미를 용서할 수가 없다.
물론 항아리 속 같은 어둠의 절망이, 천길만길 무저갱 같은 답답한 절규가 있다 해도 자살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아내와 나는 밥상을 앞에 놓고 왜? 죽어! 하면서 70넘은 두 늙은이가 말라붙은 눈물샘이 터졌다. 얼굴을 뒤로 제치고 주먹 등으로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쳤다. 나는 어린 손자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 거렸다.
사회자가 무슨 노래를 할래요. 물으니 내가 어릴 적 어머니가 안아 재우며 자장가로 불러 주시던 섬집아기 동요를 부르겠단다. 최진실 닮은 외할머니는 눈이 붉게 충혈 되도록 소리 없이 울고 울었다. 남에 일 같지 않아 나와 아내도 안타까운 마음에 소리 없이 울고 울었다. 남자 아이가 의젓하게 노래를 차분하게 불렀다.
저 아이 가슴에 모정이 얼마나 고였을까? 소라 고동을 귀에 대었을 때처럼 엄마의 자장가가 모정으로 남았을 게다. 딸아이는 간난아이였을 테니 모정이라는 정은 고이지 않았을 게다. 아! 슬프도다. 내 가슴이 아려오는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다. 남매가 뚜엣 으로 엄마에게 노래 선물을 하겠단다. 12월 24일이 엄마의 생일라 했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크리스마스에 관계된 노래였다.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앞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잘 커가겠다고 하면서 하늘에서 어머니 지켜 봐주세요.
- 딸 환희, 엄마 최진실, 아들 준희 -
타인 타살만 살인이 아니다. 자살도 죄악이요 살인이다. 평생을 살면서 자살 충동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과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겪은 사람이 많을 게다. 죽음과 같은 고통을 이겨 사는 것이 신에 대한 예의요 축복이다. 우리의 생명은 신이 주신 선물이기에 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살인죄가 된다. 목숨이 두개라면 하나쯤은 어쩔 수 없을 때 버릴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하나의 목숨이기에 소중하다.
태어날 때부터 사지가 없는 닉부이치치의 미소가 떠오른다. ------------------------------------------------------------------------------- 아내가 뇌경색(2014. 2.)으로 아프기 전에 올렸던(2012. 9. 9.) 글이다. 되돌아 보니 질경이처럼 살았다./2019. 1. 26. 질경이 영토
김도성
하늘에서 군화 밑창이 내려오고 탱크가 밀고 굴러가도 자리를 지켜 굳세게 영토를 지켰습니다
옆구리에 칼과 창(槍)이 들어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상처에서 피가 흘러도 뿌리는 더 깊이 뻗어 내리고 서로 엉겨 잡았습니다
머리채가 잡히고 갈고리로 땅을 헤쳐도 절대로 놓을 수 없는 땅 몸뚱이가 동강 나고 으깨져도 땅을 놓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축구공 크기의 흙덩이 달고 땅을 놓았을 때의 아픔 후손에게 물려줄 영토를 지키려 호미 등 너머에 질경이 씨 몇 알 떨어트렸습니다
2019. 1.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