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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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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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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남북 정상회담으로 국내외 적으로 흥분된 뉴스가 쏟아진다.
남북의 정상이 약속한 성명 발표대로 정전협정을 영원한 평화 협정으로
남북이 영원한 평화와 안정된 번영으로 자리를 매김을 하면 좋겠다.
오늘 남북이 평화의 무드를 조성되어 가는 과정을 역사적 배경으로 살펴보자.
주변의 강대국 속에 외세침략으로 전쟁을 겪은 한반도는 슬픔도 많은 국민이다.
일제 36년의 식민 생활 속에 나라와 주권을 잃은 우리 선조들의 고통은 생명마져 버리며 독립을 외쳤다.
일본이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의 일본 히로시마 원폭을 받고 항복함으로
1945년 8월 15일 자유대한민국이 독립했다.
이는 미국의 힘의 논리로 우리가 해방이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을 우방국가로 믿고 현재까지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왔음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식민지로 부터 자유를 얻은 대한민국은 강대국의 신탁으로 북한은 쏘련이 남한은 미국의 신탁 통치를 했다.
남북한 동시 선거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 하려 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남한만의 총선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지만 북한의 괴로도당 김성이 1950년 6.25 전쟁을 일으켜 부산만 남겨두고 점령을 당했다.
일본에 주둔해 있던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 군은 지리산에 숨었다.
북으로 두만강 까지 미군이 점령했으나 다시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1.4후퇴를 했다.
이런 양대 강국의 개입된 전투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1953년 7월 23일 당시의 전선을 중심으로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정전협정 55년만에 평화협정으로 합의를 이루었다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또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여러가지 압력과 경제적 제재의 힘의 논리로 이루었다졌다고 본다.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핵폭탄을 포기 한다는 것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남과 북이 평화체제를 유지하려 하나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그대로 두고 보지 않는 것이 국제정세다.
남북 정상이 평화 협정을 했다해서 100% 믿고 흥분된 분위기로 들떠서는 안된다.
그동안 여러번 남북의 정상이 만났지만 적대적행위가 끈임없이 이어진 전례를 잊어서는 안된다.
남북이 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도 아시의 경제 군사의 강대국 반열에 오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강대국이 그렇게 되도록 보고있지 않을 것이 역사적으로 보아 온 국제 정세다.
오늘 아침은 비가 내려 아침 테니스를 나가지 못했다.
아침을 챙겨 아내와 겸상을 했다.
오늘 10시 문학인의 집에서 수원문학 여름호 편집위원회가 있다.
9시 30분경 편집회의에 참석차 집을 나섰다.
가랑비가 내렸다.
12시까지 편집회의를 마치고 점심 식사후 집으로 왔다.
2018/05/02(화) 나는 누구인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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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를 먼저 하는 까닭은 읽는 이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노년을 맞이한 평범한 인간이다.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일 뿐이다. 나는 낭림산맥 기슭에 위치한 매우 험한 산골인 맹산에서 태어났다. 1928년 10월 2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때에는 나의 아버님은 평남 맹산군 원남면의 면장이셨고, 나의 어머니는 25살의 젊은 나이였지만, 내 위로 이미 일곱 살과 네 살 위 누님과 형님이 있었다. 사촌들 까지도 다 한집에 모여 살았던 우리 마을에는 유난히 맑은 시내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빨가벗은 갓난아기로 형에게 안겨서 찍힌 사진 한 장이 있었는데, 6.25 사변 통에 그 사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족히 화제가 될 만한 한 장의 사진이었는데! 나의 누나는 자기가 나를 업어서 키웠다고 줄곧 자랑했지만, 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남보다 한 해 일찍 보통학교를 졸업한 나의 누나와 형, 그리고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시골집을 떠나 평양이라는 큰 도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다섯 살쯤 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였다. 김동길 Kimdonggill.com |
봄은 눈부신 부활이다/청원 이명희
바람 불어도 꽃들이 있어 저절로 행복해지는 봄
오종종 모여 있는 것들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봄날의 꽃들은 겸손하게 피어 사람들과 조우한다
양지쪽 둥지를 틀고 앉은 풀꽃들
환한 웃음 터트리고 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영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듯
길고 긴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희망으로 일어선 순수한 영혼들
앞 다투어 대지를 환희의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가까운 숲이 먼저 연둣빛으로 치장을 하면
침묵의 고행을 마친 산도 덩달아 온갖 꽃을 피운다
사람들도 마음에 꽃물 들이며 분홍빛으로 설레인다
겪어온 온갖 풍상 사랑과 믿음의
격동으로 밝아져 기쁨의 숨을 쉬는
봄날은 눈부신 부활의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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