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에 눕다
시인 윤 형 돈
마왕의 코골이에 깨어난 새벽 세 시의 꿈
어둔 산자락 고요한 정적이
산겨릅과 때죽을 벗긴다
안개 잠 베고 누우니
별을 거느린 조각달 하나가 빈혈 허공에 떠 있다
청솔나무 길쯤한 허리와 병풍바위 누운 어머니
뻐꾹 울음 눈에 넣고 이른 산봉 오른다.
당 단풍 창끝으로 눈 비늘을 떼고 나서
주왕산 옛 길을 돌아보나니
보부상들 못다 치른 시름은 어디다 털고 갔을까
객주는 뉘고 객체는 누구인가
설은 잠 쪼는 딱따구리가 후두골을 타박 한다
간밤엔 이 고을 청송 군수가
사과 술 취객들에게 머나먼 고향을 부르고 갔다
간헐적인 뻐꾸기 울음이 조각달의 빈 잔을 채우는 데
눈썹 달무리는 쉽게 이울지도 앓고
여명의 타종 소리가 나그네 골수에 부서진다.
별은 엷은 어둠 속에 잦아들고
뻐꾸기 뻑 뻐꾹 쾌청음이 세숫물을 떠 놓고 갔다
사과나무 아래 서면 용서하라고
푸른 하늘이 오월 쟁반 이고 간다. (2017 5/20)
노트:
1박 2일 코스로 청송을 다녀온 지가 엊그제 같다. 수원예총 워크숍으로 갔지만 중광스님이 주연한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을 그리며 갔다. 주왕산 자락은 지질공원의 명칭에 부응했고 사과 맛은 용서의 낯빛으로 천하 명품이었다. 프랑스의 명배우 이브 몽땅을 닮은 청송군수가 환영해 주었고 송정 고택은 천국의 셋방을 마음껏 비웃었다. 김주영의 객주문학관에선 장터국밥 내음과 서낭당 여우소리가 괴괴할 만큼 원시의 생명이 넘쳐났다. 조선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이 청송의 그늘 밑에 앉아 처자 생각에 잠시 시름을 털어냈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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