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6. 11. 29. 사진 일기(경기대 문창 수강, 정다겸 시인 출판 기념회 참석)

무봉 김도성 2016. 11. 2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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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7e9xRbwbUYsww44RbUpRY

 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b08ff7BiwuOBEnjfnmijm

세월이 살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내일이면 11월 마지막 날 달력도 마지막 잎새로 남겠지.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새벽 조명아래 젊은 테니스 동호인들이 활기차게 새벽 공기를 갈랐다.

나도 50대 젊이들과 어울려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타이트한 경기를 했다.

시간이 8시 30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경기대 수강생들이 생각 나 사과 몇 개를 깨끗하게 씻어 4/1쪽으로 갈라 비닐봉지에 넣었다.

옷을 갈아 입고 부지런 책가방을 챙겨 경기대로 차를 몰았다.

시창작 수강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좀더 생각하는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1시경 수강을 마치고 대학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대학 종강도 다 다음주라 오늘 점심은 내가 샀다.

대화중에 다음 주 수강후 간월도 일몰 구경도 하고 유명한 굴밥을 점심으로 먹기로 했는데

실행이 될 지 궁금하다.


오늘 저녁에는 수원문협 정다겸 시인 출판기념회 있다.




2016수원문학상 시상식 및 수원문학 겨울호 출판기념회 알림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문효치 시인/한국시인협회 회장 최동호 교수님을 비롯한 심사을 맡아주신 홍재문학상 윤수천.백봉문학상 김훈동, 수원문학상(대상.작품상.젊은작가상.수원문학인상.신인상)심사위원을 맡아주신 정진규 시인,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천양희 시인.김윤배 시인.오세영 시인의 심사평과 함께 축사에 감사드립니다



아침 7시경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새벽 테니스를 즐기는 회원들



 삼일공고 테니스 코트



 수원 호성 동북포루



 한일타운 후문에서 신호 대기중 사진에 담은 교회 건물



 광교산 배경으로 교회가 아름답다



 십자게에 까치가 쉬고 있다./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경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수강들



수강 후 잠시 쉬는 시간의 정경들



 저렇게 즐거울까 소박한 웃음에 나도 반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한다는 것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아이들 처럼 웃을 수 행복한 날의 추억은  영원 하여라



 후일 이사진을 보는 100세 할머니들의 가슴은 어떨까??????????



김동찬 교수님 꼭 빠짐없 출석을 체크했다.



 부담없고 자유로운 교수님의 강의가 매력적이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동기를 유발했다.



가슴과 머리에 남도록 중요한 것들을 강조했다.



 소박한 웃음 그 자체가 시일 때가 있다.



 그는 시를 좋아해 시를 닮아 간다.



수강 장면



점심식사시간에 경기대 문창 수강생들



수강후 점심식사 시간에



경기대 문창 수강반 학생들 다우 12월 3일 수강후 간월도로 달려가 굴밥을 점심으로 먹고 아름다운 일몰 보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2016/11/29(화) -한국의 위인들(10) 조만식- (3135)

 

고당 조만식과 악수를 나눈 그런 영광스러운 기회는 내게 없었지만 나는 고당의 음성을 멀리서나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평남 평원군 영유읍에 있는 괴천공립국민학교에 교원으로 있을 때 해방이 되었습니다.

평양 기림리에 있던 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소련군이 평양 시내의 교통정리를 하고 평남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적위대(Red Army)도 모집이 되었지만 인민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고당 조만식이 임명되었고 부위원장에 저명한 사진사 공산당원 김유창이 임명되었습니다.

우리 아버님과 잘 아시던 국민학교 교장을 오래 하시던 어른이 평양시 학무국에 책임자가 되어 그 때만 해도 나를 내가 졸업한 상수국민학교(뒤에 인민학교)에 교사로 임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상수학교 교사는 소련군이 쓰게 되었으므로 일본인 중학교가 쓰던 교사로 옮겨갔는데 바로 길 건너 조만식이 위원장인 평안남도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마련되었는데 그 건물은 일제 때 일본인들의 소학교(국민학교) 건물이었습니다.

아침에 고당이 인민위원회의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조례 시간에 확성기를 대고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말씀 가운데, “앞으로 사람들이 겨드랑이에 무슨 장치를 해 놓고 개개인이 하늘을 날아서 왕래하는 날이 올 것이오”라고 한 그 말씀을 듣고 꼭 7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 그 날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런 가능성은 70년 뒤인 오늘,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는 미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당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오산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소월 김정식이 오산의 학생이던 때에는 고당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J. M. S.’가 그립다는 유명한 시도 한 수 남겼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독립운동을 지휘하였고 1년이나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한 것은 1922년의 일이었습니다. 요새 말로 하자면 ‘국산품 애용 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조선의 동포들아 이천만민아
두 발 벗고 두 팔 걷고 나아오너라
우리 것 우리 힘 우리 재조로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쓰자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쓰자(물산 장려가 2절)

고당은 오산학교 교장도 지냈고 평양에 있는 숭인상업학교의 교장 일도 보았고 ‘신간회’ 결성에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는 해방이 되자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수가 되었습니다. 김일성이 고당을 평남인민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오래 맡길 리가 없었고,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만식은 곧 숙청되어 ‘고려호텔’에 연금되어 6‧25를 맞았는데 유자들이 “월남하셔야지요”라고 권하면 “나라도 이 땅을 지켜야지”하며 월남하기를 거절하고 거기서 김일성 일당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들었지만 이 어른의 피살 날짜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당 조만식은 인도의 간디같이 ‘고상하고 용감하게’ 살았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나의기도/무봉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래서 불가능 한 것은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늙어가는 노인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삶을 애원하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는 아침에 할 수 있는 일만 있기를 기도한다. 2016.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