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6. 9. 1. 사진 일기(아내 서울대병원 초음파 검사)

무봉 김도성 2016. 9. 1. 05:33

   

                                                           홈피 바로 가기 

오늘 날씨 궁금하시지요.

아래 클릭해 보세요.

바로가기

전국        Daum 미디어다음 날씨

 선택지역

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7e9xRbwbUYsww44RbUpRY

 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b08ff7BiwuOBEnjfnmijm

오늘은 아내 유방 초음파 촬영이 있어 1년만에 한 번 서울대학 병원에 가야 했다.

유방암 초기 절제 수술한지가 6년이 되었는데 별일 없기를 기도한다.

아침 7시 아내를 차에 대워 서울 대학 병원에 갔다.

갈때는 이른 시간이라 8시 30분에 서울대학병원에 도착했다.

4가지 검사를 마치고 나니 11시가 되었다.

수원으로 오는데 한남대교에서부터 차량이 정체되어 1시간 30분이 걸렸다.

졸음을 참느라 신경이 많쓰였다.

검사결과가 9월 8일에 담당의사를 만나 보아야 알 수가 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점심으로 아내와 칼국수를 먹었다.

그 많은 양을 아내가 맛있게 잘 도 먹었다.

병원 음식이라는게 싱겁고 밋밋해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집에 와서 피곤하여 쪽잠을 잤다.

낮에 아내가 병실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오후 5시경 삶은 도마토 복숭아 불루베리 사과와 오이피클김치 멸치볶음

깻잎장아찌 계란후라이 3개를 준비해 아내에게 주고 왔다. 


저녁에 낚시하는 이웃집 아저씨가 50센티 잉어 1마리와 붕어 10여마리를 가져 왔다.

금방 손질 할 수가 없어 비닐 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얼렸다.

매운탕 국을 끓여 냉동실에 얼려 두고 밥먹을 때 꺼내 데워 먹는다.




서울대학교 병원 본관 건물


서울대학교 옛날 시계탑 건물



오후 2시경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2016/09/01(목) -‘너’와 ‘나’ 사이- (3046)

 

오래 전에 중앙대학의 문승익 교수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정치학자로서의 논리를 개진한 것이지만 그 주제는 우리들의 사회생활 전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너 나 할 것 없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너’와 ‘나’라는 존재가 별개의 것이지만 공통점이 하도 많아서 하나로 묶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 ‘나’만 살 수도 없고 ‘너’만 살 수도 없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라는 개념을 옳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나’를 위해 산다는데 그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계시고 형도 동생도 있고 밖으로 나가면 동무니 친구니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 이외의 사람들은 다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런 불미스러운 말은 왜 생긴 것입니까?

성서에는 형 가인이 “하나님은 동생 아벨을 사랑하시지만 나는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잘못 판단하고 아벨을 때려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 사이에서 이런 비극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부득이 ‘장자상속법’(primogeniture)을 만드셨을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너’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행복은 없습니다. 매 맞아 죽을 위험 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는 길, 즉 ‘우리가 사는 길’을 찾지 않고는 인류는 점점 행복에서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우리로 하여금 행복을 잃게 하는 문명 자체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기 어렵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도 따지고 보면 변형된 자기중심의 독재입니다. ‘너’의 독재는 용납 못하지만 ‘나’의 독재만은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는 ‘나’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야만 하는 때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그는 ‘너’를 위해 ‘나’를 버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절규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라디아 2:20)

그래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모두 ‘아멘’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젊은 오빠


나는 인생 후반부

행복한 삶의 요체를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는 걷기요 둘째는 공부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 계획, 야망, 꿈은 구름 잡는 소리다. 이 세상

가장 미련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하여 건강을

해치는 자라 했다. ‘재보만고건실무용(財寶

滿庫健失無用)’, ‘재물과 보물이 창고에

가득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얘기다.

- 이응석의《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중에서 -







 




               걸림돌


                        무봉


            항상 평탄한 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길에도

            걸림돌이 있어

            좌절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난 다른 사람들의

            걸림돌이

             

            2016.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