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전도사가 된 느티나무

무봉 김도성 2016. 8. 26. 14:17

 


 전도사가 된 느티나무


                      무봉  김용복


 20대에 교회를 다녔다.
어머니는 해마다 무당을 불러 집안의 평안을 비는 굿을 했다.
내가 집안에 있는 날은 대 잡이가 신이 내리지 않는다며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밖으로 나가있다 오라 쫓아냈다.
나는 일부러 경을 읽는 무당 앞에 앉아 노려보면 경을 읽지 못했다.
내 생각에 아마 귀신은 예수님을 무서워한다고 믿었다.
믿음이 약한 나는 정말로 천국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던 중 모태 신자인 아내와 25세에 결혼하게 되었다.
31세 까지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학교를 옮기고 4년 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다시 수원 기독교 학교로 옮기고 아내와 함께 마지못해 나갔다.
그런데 또 안산 학교로 직장을 옮기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나는 엉터리 신자였다.
분명한 것은 내세관이 뚜렷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 날 때와 자기 전 식사 전 기도를 빼놓지 않고 살고 있다.
아내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교회에 나가고 있다.
마음은 믿음 안에서 살다가 떠나야 한다면서 실천을 못하고 있다.
93년부터 우연한 기회에 나무에 글과 그림을 새기는 서각을 배우게 되었다.
학교를 퇴근 후 서울 화곡동 곰 달래 길 서각학원에서 공부하고 11시 넘어 수원 집에 도착했다.
마을 어귀에 고사목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를 보면 저 나무를 어떻게 자르고 다듬으면 멋진 작품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무에 미쳐 살았다.
전국미술전에 출품도하고 서울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회도 했다.
보잘 것 없는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넣는 것이다.
유명 사찰에도 현판을 걸고 수원 광교산 정자 여러 곳에 작품을 걸었다.


 30여년 함께 테니스를 즐기던 후배 동호인이 수원을 떠나 양평 전원 마을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 현판을 걸겠다며 소망의 언덕이라는 원고를 주며 서각을 부탁했다.
무더운 여름 직경이 50센티 되는 느티나무에 3주에 걸쳐 작품을 만들었다.
오늘 양평에서 장로님 내외가 농사지은 오이와 복숭아를 들고 현판을 가지러 왔다.
다행이 현판이 마음에 든다며 좋아했다.
양평 전원주택 대문에 현판이 걸리면 보는 사람마다 “소망의 언덕”을 기억 할 것이다.

 죽어 땅에 묻혀 썩거나 불에 타 재가 될 느티나무가 작가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태어 난 것이다.
느티나무 자신도 숲의 동료들도 현판으로 새롭게 변신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현판을 자가용에 실어 주며 내가 장로님 내외에게 말했다.
느티나무전도사가 태어났습니다.
그랬더니 두 내외분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아멘” 했다.
그 때 나는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확신했다.
 
        2016.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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