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정원사

무봉 김도성 2016. 5. 25. 19:02

 

 

 

 

 

정원사(庭園師)

무봉

저녁 바람에 보리밭이 출렁일 때
미루나무가지에서 부엉이 울고
밤하늘의 별은 은하수의 별을 초승달로 퍼내
하늘에 뿌려 놓은 보석 같고요
건너 마을 뉘네? 집 멍멍이가
물음표(?)를 토해내듯 컹컹
어둠을 가위질하고
네눈박이도 하늘 보며 킁킁

아버지 방에 등잔불이 꺼지고
이브자리 들썩이는 바람에 먼지가
콧구멍을 간 지려
실눈으로 보니 이상한 광경에
숨죽여 잠을 청했지
그날의 호기심 가슴에 안고
흥분의 사춘기를 지나니

때가 왔다며 하느님의 사도가
치악산 근교 마을에서
예쁜 나무 한구를 정원에 심었지
잘 자라도록 흙을 깔고
기대도록 어깨 내어 주며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고
해가 뜨고 지기를 여러 해

폭풍우에 잎사귀 떨어지고
잔가지가 부러질 때
정원사는 기도하며
뽑히지 않도록 끌어안고
매달린 열매 지키느라
밤 새워 지키길 여러 날

영근 열매 철따라
임자 찾아 주고 나니
된서리에 시들시들
고통을 견딘 설움과 아픔
늦가을 호박 넝쿨처럼
조선 낮으로 베고
갈퀴로 긁어모아
모닥불에 태울 날만 기다린다

빙판에 쓰러진 나무
다시 일으키려다
큰 가지 하나 꺾여
고사리순처럼 흔들흔들
가지에 힘이 오르도록
간병 사랑 두해

풋 열매달고 입덧 하던 날
한밭식당 설렁탕 외식
일 인분만 시켜주고  
깍두기를 먹으며
붉은 국물 마셨다 말해
눈시울 붉힌 정원사

주말 정원에 외박 오면
바나나 껍질 벗기듯 옷을 벗겨
따뜻한 온수로 씻기면 고맙다며
다리도 만져보고
엉덩이도 토닥이고
손가락으로 배꼽도 찌르며
짐이 되어 미안하다며
애원의 눈으로 정원사를 본다

평생을 짐꾼으로 살겠다며
약속의 손가락을 건다.

201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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