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오늘의 좋은시

[스크랩] [손택수]나무의 수사학3

무봉 김도성 2016. 4. 26.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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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수사학3 벚나무의 괴로움을 알겠다 꽃 피는 벚나무의 괴로움을 나는 부끄러움 때문이라 생각한다 퇴근길 지하철 계단 위로 벚꽃이 날린다 출입구 쪽에서 흩날리던 꽃잎 몇이 바람을 타고 계단에 날아와 앉는다 이 지하철역 가까운 곳에서는 얼마 전 철거민들이 불타 죽은 일이 있었지 계단 계단 누운 벚꽃을 밟고 오르며 나는 인어를 생각한다 떨어지지 않는 철거민 생각 대신 벚꽃 아래 사진을 찍던 여자들 종아리 맨살에 화르르 달라붙던 꽃비늘과 그이들 가슴에 익어갈 버찌 버찌에 물든 입술처럼 푸르를 바다 생각에 젖는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도리질 도리질 언젠가부터 나는 꽃을 마음 놓고 사랑하지 못 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춘투를 읽고, 꽃향기 따라 닝닝거리는 트럭 점포 앞에서는 유랑과 실업을 읽었다 벚꽃을 나는 이제 그냥 벚꽃으로만 보고 싶을 뿐인데, 어깨를 스치는 꽃비늘에 사라져버린 인어와 바닥을 씻고 가는 물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도 같은데 여기는 불과 재의 시간을 지나온 먼지 한 점이 아직 눈을 감지 못하는 땅 숨결을 타고 들어온 먼지들이 쿨룩쿨룩 잠든 내 몸속을 하얗게 떠돌아다니는 땅 꽃잎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구두 밑에서 으깨진다 절반쯤 으깨진 몸을 바닥에 붙이고 날아오를 듯 말 듯 들썩인다 푹 꺼진 계단 계단 제 몸에 찍힌 발자국을 들었다 놓는 꽃잎, 詩/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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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오늘의 좋은시
        글쓴이 : 이문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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