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의 데이트
그림자 얻기까지 김도성 충청도 시골 중학교 총각 선생으로 있다가 스물다섯에 장가갔으니 대충 셈해 보아도 오십삼 년 살았구먼 잘 먹고 약 좋으니 지금 까지 살았지 아버지 어머니보다 오래 살고 있으니 하늘 아래 불효자여 강원도에 임자 없는 처녀 하나 있다고 목사님이 한 번 만나보라 충동질하는 바람에 신작로 하나 사이에 두고 첫눈에 반한 마을 처녀 죽자 살자 사랑했지만 네 눈에 명태 껍질 씌웠냐 반대하던 우리 엄니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마을에 소문이 돌고 돌아 사귀던 일 년 연상 미용사 빼어난 미모에 탐내는 사내들이 많았지 맡아 놓은 여자는 다른 사내 만나 연애질 한다는 소문에 애간장이 타들어 갈 적에 에라, 모르겠다 목사가 내 사진 한 장 들고 강원도에 다녀왔다며 임자 없는 여자 사진을 내게 주고 갔는데 강원도 산골처녀라 댕기머리인 줄 알았는데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만하면 빠질 게 없다 사진 속에 빠졌지 전신사진 키가 160에 단발머리가 어깨에 걸치고 볼록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들려진 엉덩이에 하이힐에 올려진 두 다리 한 살 아래라니 노처녀 경계로 재고처리 다행히 임자가 없다니 이루지 못할 첫사랑도 정리하고 싶었지 며칠 후 신방 때 목사가 말하기를 홀어미에 두 딸 중 큰딸 보건소에 근무하는 독실한 모태 교인이라 개천절에 맞선보기로 장항선 서울 역에 내려 신설 동 로터리 태극 당 약속시간 10분 전에 도착 사진 속 여인을 기다렸지 11시 정각에 들어서는 베이지색 투피스 정장 굽이 높은 하이힐 똑똑 우린 단번에 알아보고 자리에 마주했지 본디 촌놈처럼 까맣고 60킬로 빠지는 깡마른 나 자신이 어깨가 처지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기가 죽어 인사했었지 순박하고 촌스런 내가 그런대로 믿음이 갔는지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아도 빙그레 웃는 입모습이 빨간 봉숭아 꽃잎 같았다 순간 내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자리를 고쳐 앉아 커피와 빵을 주문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세련미와 교양이 넘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상 큰 코에 고집이 뭉쳐 보였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고 오늘 만났던 태극 당에서 1주 후 한글날 11시에 만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학교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학부형 집에서 밥을 먹는 형편이라 하루라도 서둘러 혼인을 해야 했다 10월 9일 만나 창경원 데이트 한 번이 끝이었지 충청도에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강원도에서 중앙선 기차 타고 하룻길로 자주 데이트할 수 없었지 10월 23일 청량리에서 약혼식 11월 13일 을지 예식장에서 만나 43일 만에 결혼식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지 이제 늘그막에 매일 저녁 총각 처녀 때 못한 데이트 가로등이 그려주는 그림자 보며 황혼의 슬픈 동행을 합니다. 2018.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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