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그림자 얻기까지

무봉 김도성 2018. 8. 18. 13:56

 


 

 

 

 



황혼의 데이트

그림자 얻기까지

 

 

김도성

 

충청도 시골 중학교

총각 선생으로 있다가

스물다섯에 장가갔으니

대충 셈해 보아도

오십삼 년 살았구먼

 

 

잘 먹고 약 좋으니

지금 까지 살았지

아버지 어머니보다

오래 살고 있으니

하늘 아래 불효자여

 

강원도에 임자 없는

처녀 하나 있다고

목사님이 한 번 만나보라

충동질하는 바람에

 

 

신작로 하나 사이에 두고

첫눈에 반한 마을 처녀

죽자 살자 사랑했지만

네 눈에 명태 껍질 씌웠냐

반대하던 우리 엄니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마을에 소문이 돌고 돌아

사귀던 일 년 연상 미용사

빼어난 미모에 탐내는

사내들이 많았지

 

맡아 놓은 여자는

다른 사내 만나

연애질 한다는 소문에

애간장이 타들어 갈 적에

에라, 모르겠다

 

목사가 내 사진 한 장 들고

강원도에 다녀왔다며

임자 없는 여자 사진을

내게 주고 갔는데

 

강원도 산골처녀라

댕기머리인 줄 알았는데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만하면 빠질 게 없다

사진 속에 빠졌지

 

전신사진 키가 160

단발머리가 어깨에 걸치고

볼록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들려진 엉덩이에

하이힐에 올려진 두 다리

 

한 살 아래라니

노처녀 경계로 재고처리

다행히 임자가 없다니

이루지 못할 첫사랑도

정리하고 싶었지

   

며칠 후 신방 때

목사가 말하기를

홀어미에 두 딸 중 큰딸

보건소에 근무하는

독실한 모태 교인이라

 

개천절에 맞선보기로

장항선 서울 역에 내려

신설 동 로터리 태극 당

약속시간 10분 전에 도착

사진 속 여인을 기다렸지

 

11시 정각에 들어서는

베이지색 투피스 정장

굽이 높은 하이힐 똑똑

우린 단번에 알아보고

자리에 마주했지

 

본디 촌놈처럼 까맣고

60킬로 빠지는 깡마른

나 자신이 어깨가 처지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기가 죽어 인사했었지

 

순박하고 촌스런 내가

그런대로 믿음이 갔는지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아도

빙그레 웃는 입모습이

빨간 봉숭아 꽃잎 같았다

 

순간 내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자리를 고쳐 앉아

커피와 빵을 주문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세련미와 교양이 넘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상

큰 코에 고집이 뭉쳐 보였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고

오늘 만났던 태극 당에서

1주 후 한글날 11시에 만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학교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학부형 집에서 밥을 먹는

형편이라 하루라도 서둘러

혼인을 해야 했다

 

109일 만나

창경원 데이트 한 번이 끝이었지

충청도에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강원도에서 중앙선 기차 타고

하룻길로 자주 데이트할 수 없었지

 

1023일 청량리에서 약혼식

1113일 을지 예식장에서

만나 43일 만에 결혼식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지

 

이제 늘그막에 매일 저녁

총각 처녀 때 못한 데이트

가로등이 그려주는 그림자 보며

황혼의 슬픈 동행을 합니다.

 

 

2018.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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