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사랑은 바람이었다

무봉 김도성 2018. 4. 8. 16:37

 

 

 

 


     

    사랑은 바람이었다

     

    김도성

     

    사랑은 불이요 내 발등의 빛이었다

    낮에는 태양이요 밤에는 별이었다

    어느 날 가슴으로 들어와 아픔을 남겼다

     

    눈으로 사랑을 느끼고 창을 열어 안을 보았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었고 평안의 쉼터였다

    항상 옆에 있어야 했고 가능한 가까이 있었다

    숨소리마저 사랑했고 그는 또 다른 나였다

     

    날마다 보아야 했고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광야에 떠도는 유령으로 밤을 낯처럼 밝혔다

    풀숲의 이슬을 털며 들개처럼 미처 다녔다

    공동묘지도 포근했고 묘지 상석은 온돌이었다

    상엿집은 둘만의 공간이요 물방앗간은 쉼터였다

     

    북두칠성이 안내했고 유성이 길을 보였다

    전기도 시계도 없는 오지의 마을에 살았다

    둘만이 만나야 하고 알아야 하는 사랑이었다

    미장원을 운영했고 나는 천막학교 총각선생이었다

     

    마을의 입소문 때문에 둘만의 사랑을 해야 했다

    미장원 창의 머리 손질하는 그림자를 보았다

    눈비가 내려도 추녀 밑에서 장승처럼 기다렸다

    자리 비운 사이 놓쳐 버릴까 화장실을 참았다

     

    자정이 가까워 불이 꺼지고 검은 그림자가 왔다

    겨드랑에 손을 끼고 그냥 붙어 신작로를 걸었다

    가로수 미루나무가 길 따라 소실점을 만드는 밤이다

     

    어젯밤처럼 발길 닫는 대로 그 길을 파고들었다

    먹구름이 달을 가리고 자갈 밟히는 소리가 부서졌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고 굵어져 소나기가 내렸다

    비를 피할 곳도 우산도 없어 말없이 밀착해 걸었다

     

    모든 것을 적셔내는 샤워꼭지 아래를 걸었다

    옷도 흠뻑 젖어들고 알몸까지 적시는 칠흑의 밤이다

    얼마 동안 말없이 걷고 걸어 물방앗간에 숨어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지붕의 양철 조각 소리가 요란했다

     

    벽에 기대어 애절하게 올려보는 눈을 내려 보았다

    불꽃이 튀고 불꽃을 삼키며 한동안 매듭으로 엉켰다

    한기를 느껴 지푸라기를 모아 불을 피웠다

    얼굴이 불꽃에 붉게 물들어 아름다웠다

     

    물먹은 휴지처럼 젖은 옷이 살갗을 들어냈다

    웃옷을 벗겨 말리도록 했다

    불 앞에 앉은 등을 안았다

    두 팔을 벌려 옷을 말렸다

    어깨에 턱을 걸치고 볼과 볼을 비볐다

    기약 없는 우리의 불장난은 밤을 밝혔다

     

    연암산 천장암 예불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218.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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