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
김수영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주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로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다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 1968. 1. 19 > 창비,사랑의 변주곡에서...
김수영의 시는 난해하다.모더니즘 계열 시인들의 시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만 읽는 방식이 있을 법도 한데,어려운 방정식을 풀듯 늘 고민하게 만든다.아내에게 둔감하듯 세상에 둔감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연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속고 곧 속고 만다"는 부분에서는 더욱 모르겠다.작자 스스로 삶을 속이지 말라는 고백인지...쿠테타세력과 그들의 지식인 협작꾼들에 대해 국민을 속이지 말라는 것인지...아니면 잠시나마 역사적 4,19를 승리로 이끌었던 민중들의 이중성과 패배주의를 질타한 것인지...
이 시를 읽는 것이 좀 부담스러울수 있는 친구들도 있겠다. 그럼에도 김수영의 시를 올린 이유는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읽다가 '작가의 말' 부분에서 용기를 얻어 소개한다.
"...진정한 시에는 가식이 없고,거짓 구원도 없다.무지갯빛 눈물도 없다....삶 속에 시가 있다."는 엘뤼아르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