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세상사는 이야기

창[窓]

무봉 김도성 2018. 1. 26. 07:30

김도성 시인님의 어린시절 기적같은 체험담을 글로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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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성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진 수술실 중앙 수술대에 어린 소년이 누워 있고.

수술대를 촉수 높은 수십 개의 백열전구 초점이 집중했다.

흰옷을 입은 간호사는 마스크로 입을 막고 있었다.

10월 어느 날 늦은 오후 장항선을 달리는 기적소리만이 주변에 소음을 던지고 멀리 사라져 갔다.

높은 병원 벽에 달린 작은 창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소년의 다리를 벌레가 갉아 먹는 것처럼 썩어가는 우측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이다.

마취를 위해 팔다리를 묶었다. 목수들이 가구를 만드는 연장 끌, 망치 톱이 보였다.

가끔 검정 장화를 신은 의사가 큼직한 주사기를 들고 뚜벅뚜벅 주변을 맴돌았다.

자정을 넘어 새벽 오 십리를 가마에 실려 떠날 올 때 눈물 훔치던 어머니와 가족들이 떠올랐다.

동구 밖 골목길을 달리던 친구들이 부르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가마 밖으로 내민 손끝에 걸려든 메밀꽃이 소금밭처럼 떠오른다.

외다리 목발로 가야하나... 차라리 기적소리 따라 달리는 철길에 눕고 싶다.

수술실 밖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래도 지금은 혼자 걸을 수 있는데 그대로 두면 생명이 위험해 절단해야 한다니 알 수가 없었다.

병신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아마 친구들도 멀어 질 거야. ‘창이 내게 말했다.

뭘 꾸물대는 거야 빨리 도망쳐.’ ‘차라리 여기를 탈출하자.’

시간이 촉박했다.

잠시 후 마취가 시작되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간호사님 저기요 아버지를 불러 주세요.”

왜 그러니? 나에게 말해.”

안돼요. 아버지를 불러 주세요.”

…….”

간호사를 쏘아보며 단호하게 소리를 치듯 말하자 말없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생각을 바꾸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알았다.”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

아버지! 아들이 찾습니다.”

.”

아버지는 숨차게 놀란 얼굴로 수술실로 들어왔다.

아들아 왜 그러느냐?”

아들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아버지 걱정 많이 했지

그럼

그런데 아들아! ?”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

! 그래 나도 사랑한다. 아들아.”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우리 아들 착하네.”

소년은 아버지를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수술실을 떠나야 산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나 부탁이 있어.”

응 그래 말해.”

나 화장실 다녀와서 수술 받을게.”

아버지는 간호사를 불렀다.

우리 아들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대요.”

그래 다녀와라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어.”

간호사가 수술대에 묶었던 끈을 풀었다.

 

수술대를 내려와 복도로 나왔다. 복도 끝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소변기 계단에 올라 창밖을 보았다.

오후 5시는 넘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고 밖을 보니 해가 서쪽에 기울었다.

참았던 소변을 보았다. 소변을 보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뒤에서 말했다.

! 도망가! 도망가라고. 다리가 잘릴 형편인데 뭘 망 서려, 어서 어섯 도망가란 말이야.’

화장실 뒤 쪽문이 보였다.

화장실 쪽문을 나와 무조건 처음 보는 철길을 따라 죽어라 달리고 달렸다.

해가 지는 서쪽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철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뒤돌아보니 병원이 보이지 않았다.

거의 오리 이상은 달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졌다. 철길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대책 없이 도망치고 울었다.

장항선 철길의 어린 소년은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엉엉 울었다.

얼마를 울었을?

아들아. 어디 있느냐.”

…….”

소년은 말없이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이제 걱정마라. 집으로 가자.”

가까이 온 아버지가 말했다. 함께 온 가마꾼들이 달려왔다.

아버지. 나 수술 안 할 거야.”

소년은 아버지 가슴에 안겨 지친 목소리로 울먹였다.

오냐 사랑하는 아들아 못 배운 아비 잘못이다.”

 

가을 하늘에 창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어 웃었다.

철길 따라 하얀 메밀꽃도 집으로 가는 길을 밝혔다.

                    2017. 12. 17.
(추신) 김도성 시인님은 그후 발을 자르지 않으셨고,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