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편지지 소스

대물림

무봉 김도성 2017. 6. 28. 16:39


대물림


 


 

차 윤 환

늑장만 부리던 빛의 입자가
깨금발로 당도한 장지문에
부신 빗금 하나 긋고 지나가면
시렁에 잠들었던 메주가 기지개 켠다

순전히 이건 누가
간섭할 일도 아닌 것이
고부간 대물림으로 이어온
비밀 같은 것
엄하시던 할머니, 오늘은
마음 비운 항아리에 금줄 하나 두른다

속내 들킨 메주가 드러눕자
정갈한 물에 저미는 흰 꽃소금
어머니 여린 손이 가늘게 떨린다

쪽박 빛 바래도록 밤낮을 손꼽아
서로 살 비비며 녹아내린 메주의 찰진 몸살
텃밭 푸성귀 한 뼘 더 자라고
싱겁던 내 입맛도 차츰 간이 배어간다

*`시사랑’ 동인으로 활동.

*1948~,경북상주

<해설>


- 이 시는 메주를 바라보는 관조적인 인식체계가 뛰어나다는데 아주 성실한 시적 재능을 가진 분으로 보여진다. `시렁에 잠들었던 메주가 기지개’ 켜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부신 빗금 하나 긋고 지나’간다고 했다. 즉, 그늘에서 지내온 메주에게 통풍도 중요하지만 바깥세상의 것인 햇볕이 드나듦으로 해서 비로서 메주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메주가 단단해지며 자신을 숙성시키는 일로 `순전히 이건 누가 간섭할 일도 아닌 것이’라는 노련한 표현이 눈에 띈다. 저절로 그러니까 순리대로 숙성되어간다는 것을 아주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게 `고부간 대물림으로 이어온’ 메주인 것이다. `비밀 같은 것’이란 꼭 비밀이 아니라 대물림 되는 우리네 습속 다름 아닌 것이다.

메주로 장을 담그는 과정인데 `할머니, 오늘은 / 마음 비운 항아리에 금줄 하나 두’르시고, `어머니 여린 손이 가늘게 떨리’듯이 그렇게 장 담그는 것이다. 이게 `대물림’의 과정이며 장 담그는 일인 것이다. 이 시가 그냥 장 담그는게 아니라 `엄하시던 할머니’와 `여린 손이 가늘게 떨리’는 어머니를 등장시켜 교차시키는 안목 또한 놀랍다

끝마무리에 있어서도 `싱겁던 내 입맛도 차츰 간이 배어간다’고 했다. 즉 메주 자체만을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은이 자신의 사상성을 이입시킴으로써 한층 시적 효과를 뭉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늑장만 부리던 빛의 입자’, `빛의 입자가 / 깨금발로 당도한’, `마음 비운 항아리’, `속내 들킨 메주’ , 메주의 찰진 몸살` , ’푸성귀 한 뼘 더 자라고` 이런 수사적 감각도 아주 잘 표현한 대목 들이다.

 

서지월

  입력시간 : 2006-06-14 15:3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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