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20. 5. 4. 사진 일기(오이지 담기, 총각김치 담기)

무봉 김도성 2020. 5. 4. 06:31

   


 http://blog.daum.net/ybok1004/ 

전국 경기 수원시 장안구(현재접속지역) 읍·면 

오늘도 평소처럼 아내와 함께 식사후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오늘은 한세트 경기밖에 하지 못해 운동량이 부족했다.

집에 청소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와 요양보호가 오는 날이라 테니 라카에 늦도록 있었다. 

11시경 집으로 가는 길에  파장동 나드리 칼국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후 마트킹에서 생식품을 샀다.

오이지 용 오이와 총각무우를 두단 샀다.

반찬으로 오징어 간고등어 식용류 대파 양파 사과 오렌지 쪽파 생강을 샀다.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이지와 총각무우를 다듬어 절여 놓고 갔다.

오후 양념을 준비하여 총각무우를 담갔다.

저녁식사후 아내 걷기운동을 시킨후 나 개인운동을 하고 9시넘어 잠에 들었다.



오후 7시경 아파트 후문거리 풍경





총각김치 담그기



오이지 담그기


2020/05/04(월) 구십이자술 14 (누님 생각 7)

 

누님 생각 7

     비록 항소를 포기하긴 했지만 나는 15년이건 20년이건 감방 생활을 할 자신이 있었다. 누님은 내가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부터 면회가 허락되는 시간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면회하러 오셨다. 영치금도 넉넉하게 넣어 주셔서 나는 쥐털이라 불리지 않고 범털이라 불리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성실하게 복역하는 모범수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1년 쯤 지나서 당국이 예기치 않았던 특별 사면을 하였다. 유신을 반대하던 우리들에게 가석방의 특혜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항소를 한 자들은 나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출소하지 못하고 교도소에서 하루를 더 지내야만 했다는 것이다. 항소했기 때문에 검찰이 처리해야 할 서류가 또 하나 있어서 내가 석방되는 날에 같이 내보낼 수가 없었다고 들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처지라 학교에 복직은 안 되었다. 공보부 장관도 지낸 오재경이 이런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내가 옥중에 있던 추운 겨울 날 내 누님을 찾아갈 일이 있어 이화여자대학 총장실에 들어갔더니 난방이 안 되어 여간 춥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왜 난방을 켜지 않았습니까?”라고 오 장관이 물었더니 동생은 차디찬 감방에서 겨울을 나는데 누나인 내가 따뜻한 방에서 집무할 수는 없지요.” 그것이 누님의 대답이었다고 한다. 후에 그 말을 듣고 나는 혼자서 울었다.



김동길




 

 

 

경험의 유산

 

김도성

 

6.25 전쟁 때 10살 인 나는 전쟁놀이 하다가

넘어져 돌 뿌리에 무릎을 찧어 멍들었다

백석지기 농사를 지어 살만했던 아버지는

머슴을 시켜 침쟁이 노인을 모셔 왔다

마을 돌팔이 침쟁이 노인이 골절이라며

우측 종아리에 미루나무 부목을 대고

무명 끈으로 칭칭 감았다

 

1개월 후 보건소에서 무명을 풀어보니

노랗게 고름이 잡혔다

고름을 제거하고 보니 살가죽이 올이 빠진

스타킹처럼 늘어졌다

X-Ray 사진에는 골절이 아니었다

염증을 치료했으나 콩알 크기의 정강이

뼈가 보이며 아물지 않았다

 

서산에 좀 더 큰 병원에 갔다

뼈의 골수가 염증으로 뼈가 썩었다고 했다

썩은 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대에 누워 묶인 자세로 전쟁 중 약이 없어

마취도 없이 끌과 망치로 쾅쾅 두드려 썩은 뼈를 긁어냈다

수술대 옆에서 내 손을 잡은 아버지의 손은 떨렸고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

나의 팔등을 적셨다

 

뼈를 깎는 수술을 두 번이나 했으나

골수염은 치료가 되지 않았다

다행이 상처가 무릎 아래 정강이 부분이라

걷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어 학교는 다녔다

정강이 상처를 알코올로 소독하고 거제를 붙이고 다녔다

 

이듬해 홍성 도립병원이 개원해 차가 없던 50리길을

8명의 일꾼들이 교대하며 가마에 태워

새벽 4시에 집을 출발했다

걱정되는 어머니와 누나 형 동생들이 대문 밖

멀리까지 따라 오며 고개를 넘을 때까지 배웅했다

가마에 누워 가마의 창으로 바라보는 깜깜한

하늘에는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별들이 빤짝였다

비포장도로를 걸어가는 가마꾼들의 발자국소리가

저벅이고 거친 숨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때로는 지름길을 찾아 들길과 산길을 갔다

가끔 산 꿩이 놀라 푸드덕 날아가고

동서로 하늘을 가르는 유성이 길게 흘렀다

가마 밖에 내놓은 손끝에 걸리는 나뭇잎과 풀잎들

두 번의 뼈를 깎는 수술을 경험한 두려움이

어린 나에게는 앞으로 닥칠 일이 더더욱 불안했다

따라오는 아버지가 나를 안심시키려 가끔 헛기침을 하시며

이제 좀 더 가면 해가 뜨고 밝아지면 곧 도착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새벽 여명에 가마 밖 메밀꽃이 염전의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진 광경이 눈에 들어 왔다

8명의 가마꾼이 4명씩 교대로 이동했고

힘이 들면 잠시 휴식하며 피우는 엽연초 담배 연기가

역겹도록 코끝을 스쳤다

오전 11시경 홍성역 부근 도립병원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하얀 콘크리트 건물이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6남매 중에서 유난히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사람들은 붕어빵이라고 놀려댔다

키도 다른 형제들보다 제일 크게 자랐고 아버지는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은 나를 제일 사랑했던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이 오늘 어떤 진단이 나올지 모르는 농사꾼 아버지는

속이 숯 검정이처럼 타고 있었다

 

나의 다리를 살펴보던 의사가 어린 나를 바라보며

고생 많이 했겠구나!”

라고 말했다

의사는 먼저 X-Ray를 촬영하자고 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의사 앞에 섰다

의사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골수염이 깊어 지금 저대로 두면 생명까지 위험합니다

아무래도 우측 다리를 절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아버지는 말을 잃었다

앞이 캄캄했다

절망이었다

새벽 4시에 그 먼 길을 가마를 타고

집을 떠나온 희망의 끝이 다리 절단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던 것이다

어찌할 수 없다는 상황에서 절망감을 감추며

아버지는 나를 설득했다

그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지 한 분이었다

 

나의 삶은 밀림의 사자들 앞에 던져진 것 같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치면서 울고 울어도 이 세상에서 그 누구 하나

나를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무릎과 발목 관절에는 이상이 없어 걷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다

단지 정강이에 새끼손톱 크기의 뼈만 보이는 상처가 아물지 않고

진물이 조금 흐를 뿐이다

아버지는 이대로 두면 다리가 썩어 생명이 위험하다.’

의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의사의 말에 따라 절단하기로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었다

 

나는 수술실 수술대에 누었다

말없이 간호사가 나의 손과 발을 묶었다

수술실의 높은 천정과 벽이 차갑게 느껴지는 백색이다

간호사와 의사들도 하얀색 옷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검정 장화를 신었다

수술대 옆에는 절단용 전기톱이 보였다

저 톱이 순식간에 아들 다리를 자를 것이다.’ 라는

생각에 아버지는 두려웠다

온 세상이 어둡게 느껴졌다

주저앉아 땅을 치고 울고 싶었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쳐서는 안 되었다

주저앉아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아들을 지켜주고 의지하게 해야 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수술대 천정에는 수십 개의 백열구가 수술실을 환하게 밝혔다

 

잠시 후면 마취를 할 것이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나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불안하다

머릿속에서 왼쪽 다리 없이 목발로 걷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 모습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을 하자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다

어떻게 살지?’ 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걱정되었다

돌팔이 침쟁이가 원망스러웠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병신이라고 얼마나 놀려 댈까?’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웠다

 

저 멀리 장항선 열차가 지나가는 기적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차라리 이대로 뛰쳐나가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죽어 버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책 없는 사실에 눈물은 계속 흘러 머리 밑을 적셨다

병실에는 간호사들 뿐 아버지는 병실 밖에서 기다리는 것 같았다

새벽에 집을 떠나 올 때 눈물지던 어머니 모습과

누나와 형 동생들이 생각났다

마을의 개구쟁이 친구들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 얼굴을 떠 올렸다

주변에 나의 손을 잡고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로움이 스며들면서 다시 슬퍼지고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가도 생각이 바뀌기도 했다

이건 아니야 내가 왜 죽어야 해?

그리고 지금 내가 걸을 수 있는데 왜 다리를 잘라야 해.’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우선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잠시 마취가 시작되면 도출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간호사님 저기요 아버지를 불러 주세요.”

왜 그러니? 나에게 말해.”

안돼요. 아버지를 불러 주세요.”

…….”

나는 간호사를 쏘아보며 단호하게 소리를 치듯 말하자

그녀는 말없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생각을 바꾸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알았다.”

그녀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

아버님! 아들이 찾습니다.”

.”

아버지는 숨차고 놀란 얼굴로 수술실로 들어왔다

아들아 왜 그러느냐?‘

나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버지.”

아버지 걱정 많이 했지

그럼

그런데 아들아! ?”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

! 그래 나도 사랑한다. 아들아.”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우리 아들 착하네.”

나는 아버지를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수술실을 떠나야 산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나 부탁이 있어.”

응 그래 말해.”

나 화장실 다녀와서 수술 받을게.”

아버지는 간호사를 불렀다

우리 아들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대요.”

그래 다녀와라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어.”

간호사가 수술대에 묶었던 끈을 풀었다

나는 수술대를 내려와 복도로 나왔다

 

나는 복도 끝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소변기 계단에 올라 창밖을 보았다

오후 5시는 넘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고 밖을 보니 해가 서쪽에 기울었다

참았던 소변을 보았다

나는 소변을 보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말했다

! 도망가! 도망가라고. 다리가 잘릴 형편인데 뭘 망 서려,

어서 어섯 도망가란 말이야.’

화장실 뒤 쪽문이 보였다

나는 화장실 쪽문을 나와 무조건

처음 보는 철길을 따라 죽어라 달리고 달렸다

해가 지는 서쪽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철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뒤돌아보니 병원이 보이지 않았다

거의 2킬로 이상은 달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졌다

철길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대책 없이 도망치고 울었다

장항선 철길의 어린 나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엉엉 울었다

얼마를 울었을까?

아들아. 어디 있느냐.”

…….”

나는 말없이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이제 걱정마라. 집으로 가자.”

가까이 온 아버지가 말했다

함께 온 가마꾼들이 달려왔다

아버지. 나 수술 안 할 거야.”

나는 아버지 가슴에 안겨 지친 목소리로 울먹였다

오냐 사랑하는 아들아 못 배운 아비 잘못이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어 웃었다

철길 따라 하얀 메밀꽃도 집으로 가는 길을 밝혔다

 

2020. 5. 3.

 

-/ 손자들에게 톡을 보내 주고 독후감을 보내라 했다

나는 농촌 계몽운동으로 지들의 뜻을 모아 천막학교를 세우고

중학교 진학을 못한 고향 후배들에게 공부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 교사의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