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소나기 김도성 보리밭이 바람에 출렁이는 오월 미루나무에 앉은 부엉이가 먹잇감을 노리는 밤 부르지도 않은 먹구름이 먹지 장처럼 하늘을 덮는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길, 모두가 잠든 밤 미루나무 가로수가 한 점으로 모이는 신작로에 발끝에 차이는 자갈 구르는 소리가 저벅 인다 맞잡은 손의 더워진 열기에 가슴은 다듬이질 동자를 삼켜버린 깜깜한 밤 윤곽으로 얼굴을 스케치하며 걷는다 풀 먹인 옷자락이 스치듯 거친 숨소리가 말을 대신하고 왼팔로 부서져라 겨드랑 밑에 포옹한다 시퍼런 번개가 순간을 밝히며 천지가 깨지듯이 흔드는 천둥에 샤워꼭지 아래 엉겨 붙어 미동도 안는다 바가지 물을 뒤집어쓴 전신에 살갗을 파고드는 한기로 비를 피해 찾아간 물레방앗간 불어난 도랑물에 물레방아는 힘차게 물레를 저어대고 급습에 놀란 쥐들이 숨어 본다 젖은 옷 말리고 한기를 이기려 짚을 모아 불 피우고 밖에 서성이며 호기심에 훔쳐본다 어깨에 걸친 붉은 브래지어 끈 동백보다 장미보다 더 정열의 붉은색 눈을 감아도 선명해진다 목어 소리 물속으로 흐르고 운 판소리 하늘을 날아오르면 천장암 법당 예불 소리에 헤어진다 2020.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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