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씨(種)의 서사

무봉 김도성 2019. 4. 15. 20:13

 

 

 

 

()의 서사 /김도성

 

민들레는 달빛에 반사되어 늦은 밤이 출렁거렸다

씨를 가진 것은 씨방을 위하여 목숨 걸기 일쑤다

코밑에 뽀송한 사춘기 솜털마저 솔깃해질 무렵,

들녘에 알곡 익는 소리가 뒤주 안에서 들려왔다

농사일에 지친 아버지의 한숨과 해수 끓는 소리가

생솔가지 타는 연기 하늘에 꼬물거리던 밤

단칸방 아랫목엔 네 형제가 굴비 엮이듯 잠들었다

그날따라, 근력의 아버지는

또 한 번 호미질로 야간 경작을 하셨을까

맞다, 다섯째 막내가 어미 밭에서 출토되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놈치고 실하게 생긴 바로 그 놈’,

 

언젠가 두 분은 다시는 살지 않을 것처럼 죽도록 싸웠다

빨래터에서 아버지 속옷은 그날,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오일장에 가시는 아버지 등에 핀 화해(和解) 연기를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허벌나게 기다렸다

광목 치마 다려 입고 동백기름 가르마 타고 기다렸다

노을 진 언덕 목덜미에 미루나무 그림자는 내리고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어 사립 문밖 들락거렸다

이윽고 헛기침 소리와 등장한 아버지의 지게

행주치마 입에 물고 들어간 밥상에는

은비녀와 동동구리무가 들려 나왔다

보리밭 출렁이고 미루나무 부엉이는 덩달아 울었다

등잔불이 가물가물 이부자리 들썩 들썩

문풍지 파르르 떨림은 그냥 떨림이 아니다

갓 뽑은 무청처럼 아버지의 그 밤은 몹시 푸르둥둥했다.

  2019.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