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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1. 사진 일기(안시회 사당역에서 신년맞이 모임, 시와 길 벙개모임 불참)

무봉 김도성 2019. 1. 11.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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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7e9xRbwbUYsww44RbUpRY

 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b08ff7BiwuOBEnjfnmijm

어제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면서 나라의 경제와 안보가 걱정 되었다.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세상이 있을까?


아내가 내가 해주는 반찬이 맘에 들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외식하려 했으나 몸이 불편해

어제 저녁은 부대찌개 배달을 해 아내와 함께 먹었다.

부대찌개 1인분 8,000원에 배달료 1,000원 추가로 9,000원 지불했다.

12% 인상된 식사를 했다.

통닭 한마리 배달료가 2,000원이다.

이런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여파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의미(평등)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다보니 영세업자와 서민들만 힘들게 했다.

종업원 4명을 고용하던 음식점에서 최저 임인상으로 종업원 반으로 줄였다.

일자리 창출한다는 정책에서 차질을 가져 왔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고급식당이나 호텔에서 외식하지  부대찌개를 배달해 먹을 일이 없다.

1인분에 6,000원 하던 음식값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8,000원으로 25% 인상을 했다.

결국 6,000원에 먹던 음식을 9,000원에 먹게 되니 43% 인상 되어 이로 인한 각종 물가가 올랐다.

결국 살기 힘든 영세업자가 문을 닫아야하고 먹고사는 기본 생활이 어렵게되었다.

일자리도 늘어나는게 아니라 실업자만 양산하는 경제구조가 되었다.

영세 업자에게 카드 수수료를 인하한다고 하지만 장사가 되어야 말이다.

실험삼아하는 경제 정책의 실패로 서민들만 힘들게 되었다.


이른 아침 챙겨 아내가 먹도록 차려놓고 나는 생식 후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출 투표 용지를 우송했다.

그리고 11시경 안시회 모임 장소인 사당역에 갔다.

회원 8명 중 5명이 참석했다.

무릎이 아파 1명 사정으로 1명 치매로 1명 그래 3명이 결석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회원이 참석하겠다고 내게 전화를 여러번 했다.

오늘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기에 전화를 했더니 경찰관이 전화를 받았다.

길을 잃고 헤매어 가족이 데리러 온다고 했다.

아주 건강했던 교장 선생님인데 어쩌나 벌써 두번째다.

앞으로 모임에 나오기가 힘들 것 같다.

세상을 보는 창이 바뀐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지난 12월 모임에서 회원수가 적으니 해산하자 내가 제안했다.

초창기 모임결성 때 부터 막내인 내가 꼬박 20년 240회동안 총무를 보고 있다.

총무가 못한다면 할 수 없이 해체해야 하지만 너무 섭섭하니 두 달에 한 번 만나기로 협의 했다.

그런데 오늘 또 내게 말했다.

매달 만나자고 죽으면 그만인데 보고싶으데 어찌하느냐며 내게 사정을 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순종하겠다고 다짐해 다음달에 만나기로 했드니 너무나 좋아 했다.

그대신 그동안 회비 2만원을 1만원으로 내리고 부족금액은 예치금에서 지불키로 했다.

오늘도 5명이 회비 5만원 수입에 소고기와 술 밥이 118,000원 지출했다.

1만원 내고 2만원 이상 먹은 셈이다.

출석을 안하면 손해가 된다.

그래서 회비를 1만원으로 인하했다.


오후 3시 30분경 집에 왔다.

 




안시회 점심 식사  소 생고기 부위별 1킬로에 59.000 원








사당역 14번 출구





가로수 은행나무 은행이 슬프게 버려졌다. 세상이 많이 변해 간다. 앞으로 불임 은행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산수유 열매가 탐스럽다.




시와길 회원들 벙개










































계간문예 배문석 고문 문학상 시상식 축하합니다.






 

 

 

창(窓)

 

김도성

 

유년시절 어머니 얼굴이 제일 먼저 창을 열고 내게 들어왔다

그다음 짝사랑 6학년 여자 부반장이 또 창으로 들어왔다

그 아이는 어두운 밤에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몽당연필에 침 발라 공책에 글을 쓸 때

반 얼굴 가린 그 머리칼 안 까만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다

 

유년기를 지나 소년기 사춘기 총각시절 창을 열고 들어온 여자

그 첫사랑 여인이 모두를 쫓아내고 가슴을 꽉 채웠다.

비바람이 치고 눈보라 쳐도 밤낮없이 가슴은 출렁거렸다

꿈꾸는 밤에도 배추 밭의 흰나비처럼 날개 저으며 창을 노크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벌레가 같은 것이 온몸을 쑤시고 다녔다

아침부터 꿈꾸는 밤까지도 통째로 나를 가졌다

처음처럼 찾아오는 그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집은 점점 허물어지고 창문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닦아도 안에서 밖을 보는 물체들의 윤곽이 희미해졌다

어머니 영정 졸업앨범의 여자 부반장 첫사랑 여인 사진이 흐렸다

창 위에 새로 창을 달아 수리를 했다

새 창덕에 운전면허 적성검사에 합격했다

면허증은 받았으나 안전운전이 걱정이다

 

2019.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