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8. 9. 28. 사진 일기(아내 아주대 비뇨기과 진료, 수원문학 가을호, 작고문인 평전 출판 기념 시상식)

무봉 김도성 2018. 9. 28.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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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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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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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가 방광염이 있어 약을 먹고 치료 결과를 확인차

아주대 비뇨기과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소변 검사가 있어 아침 7시 30분 소변 검사후 병원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아침 7시경 아주대학 병우너에 갔다.

채혈실에서 소변을 받아오라 용기를 주었다.

장애인 화장실에 아내를 데리고 들어 갔다.

아내가 소변을 보지 못한 다.

3번을 들락 날락했다.

집에서 올때 조금 참았으면 좋으련만 소변을 보고 왔다고 했다.

물을 두컵 정도 먹였다.

그래도 신경이 곤두 서서 소변을 보지 못해다.

아침 식사를 하고 소변을 보도록 했다.

9시15분 비뇨기과 예약 시간인데 적어도 1시간 전에 건사를 해야 그 결과로

의사 처방을 받는데 큰일이다.

식사후  3차례 소변을 보려했으나 실패했다.

11시경 담당 의사의 소견을 듣고 1주일 후 다시오라 예약을 했다.

짜증을 냈지만 아내도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저금 미안했다.

12시경 집으로 왔다.

아내가 집에 오자마자 못보던 소변을 보았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피곤하여 낮잠을 조금 잤다.

아내도 긴장에서 풀렸는지 김은 낮잠을 잤다.

오후 4시까지 무학인의 집에서 출판기념회 행사가 있어 3시경 아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양파 대파 무우를 넣고 육수를 냈다.

콩나물 반봉지가 있어 시원한 콩나물국과 소 꽃등심을 구어 저녁상을 차렸다.

오후 4시경 아내 저녁상을 차려 놓고 문집에 갔다.

오랜만에 많은 원로와 고문들이 참석했다.

출판기념회는 2시간에 걸처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고 뒤풀이로 문학의 집 마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9시경 집으로 와서 아내를 데리고 아파트를 산책했다.










사회 한명숙 시인






김순덕 시인




서 림 시인



만병주 시인



고대영 시인



진순분 시조 시인



한희숙 시인



이복순 시인



이성수 시인



정유광 시인




양승본 소설가









박노빈 수원문협 부호장



윤수천 고문



이창식 고문



이창식 고문



박병두 수원 문협 회장



수원시청 길영배 예술과장



최동호 교수



김훈동 고문









한국문협 안성지부장 이갑세 회장










 
































행사 안내봉사단



역대회장 고문들








고대영 시인 김학주 시인과 함께





낭송가 정다훈



행사후 문집 앞 마당에서 식사

   

   













2018/09/28(금) 효도가 인생의 기본인데 (151)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산업 사회는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농경 사회와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인구도 오늘처럼 많지가 않았던 농경 사회에서는 사회보다도 가정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그 시대에 가장 큰 가치는 가정에서 부모에게 있었다.

요즘은 통증 없이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전혀 모유를 먹이지 않고도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고 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아이는 소젖만 먹고 자라기 때문에 모두가 소새끼라는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먼 곳에 취직을 하고 밥벌이를 하는 어떤 아들의 부모는 아들의 소식을 전혀 모르는 채 1년, 2년, 혹은 3년을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각자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나면 부모를 멀리 하고도 살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리 산업 사회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의 형은 일본 군대에 끌려가 24세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나의 아버지는 70이 넘어서도 그때 그 아들을 숨겨두거나 도망시키지 못하고 일본 군대에 끌려가게 하였다고 가끔씩 심히 자책하셨다. 어느 가을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형 얘기가 식사 중에 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아버님은 상위에 있던 숭늉그릇을 들고 마시면서 “이게 왜 이렇게 뜨거우냐”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나의 아버님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숭늉이 뜨거운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아들 생각에 눈물이 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부모란 그런 존재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오늘, 갑자기 그 광경이 생각나서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숭늉도 마시지 않았는데.

김동길
Kimdonggill.com



 

 

 

나의 길 1

 

김도성

 

삶은 오르고 내리고

들판이 아니더라

 

오르다 떨어지고

내리다 굴러지고

 

이제는

몸과 마음에

상처만 남았다

 

 

 

 

 

 

 

나의 길 2

 

김도성

 

등에 지워진 짐만

짐이 아니더라

 

내 몸이 짐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마음도

약해졌는지

가슴이 쿵 무너진다

 

2018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