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홍재문학상 수상소감 및 응모원고 알부

무봉 김도성 2018. 9. 26. 23:53

홍재 문학상 수상 소감과 10편 원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힘이 여기에

 

김도성

 

 시 창작 공부시간이었다. 잠시 여담 시간에 박병두 회장이 홍재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며 동료 수강생들이 박수를 쳤다. 100점 시험지를 받은 아이처럼 흥분으로 설렜다.

 

2003년 교직을 정년 후 지금까지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106.25를 만나던 해 넘어져 무릎에 멍이 든 다리가 골절되었다며 돌팔이 침쟁이가 미루나무 부목을 대고 무명 끈으로 한 달간 동여매 놓았다.

전쟁 중, 문을 닫았던 보건소를 찾아가 X-Ray 검진을 해보니 피가 통하지 않아 우측 다리가 곪아 터지기 직전이다. 골절도 되지 않았다. 염증이 심해 뼈가 썩어가는 골수염으로 깊어졌다. 두 차례 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했지만 치료가 되지 않았다. 6.25 수복 후 홍성 역 부근 도립병원 수술대에 다리를 절단하기 위해 올려졌다. 팔다리 묶이고 마취를 기다렸다. 다리 절단용 톱이 보였다. 잠시 후 우측 무릎 아래 다리가 잘릴 시간이다.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 또래 친구들 얼굴이 그려졌다. 목발 짚은 소년의 모습도 떠올랐다. 하얀 벽으로 페인트 된 수술실 안 흰 가운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검정 장화를 신고 주변을 맴돌았다. 죽으면 죽었지 목발로 살아간다는 것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나 오줌 마려.”

! 그래, 사랑하는 아들아.”

옆에 있던 간호사가 복도 끝 화장실을 안내했다. 늦가을 10월 말이었다. 발판에 서서 소변을 보며 창밖을 보았다. 지는 해로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 뭐해 어서 도망쳐.’

뒤를 보아도 아무도 없다. 화장실 뒤 쪽문이 보였다. 쪽문을 나와 처음 보는 철길을 따라 해지는 서쪽으로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어두워졌다. 아버지와 나를 가마에 태워 온 동네 일꾼들이 찾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을 메밀꽃이 밝혔다.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하는 지혜를 얻었다. 어린 나이지만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정강이에 상처가 있어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서울대학 병원에서 수술 후 완치가 되었다. 초등학교 밖에 공부를 하지 못한 농부의 아버지 어머니 무식한 돌팔이 침쟁이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 후 가난한 농촌에서 진학을 못하는 후배들에게 몇 동지의 뜻을 모아 천막학교를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교직을 시작한 동기였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하려 배움에 굶주렸던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그 다리로 36년의 교직생활, 46 동안 지금도 매일 테니스를 하고 있다.

2003년 교직을 정년 후 나의 살아온 경험을 들려주고 싶어 시작한 것이 글을 쓰게 되었다.

2007년 월간 한비문학에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1500편의 습작시를 50여 곳의 문학카페에 올리고 있다.

 

4년 전 뇌경색으로 반신이 불편한 아내를 간병과 집안 살림을 견디게 한 힘을 가 도왔다. 시를 쓰는 마음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삶은 사랑이다. 그래 홍재 문학상 수상의 감회가 남다르다. 아직 많이 부족한 , 채찍으로 알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

심사위원 여러분과 수원문인협회 박병두 회장님에게 감사드린다.

 

 

 

 

 

   

작가이력

 

김 도 성(金都星) 아 호 : 무 봉(霧峰), 서산태생, 중등교장으로 퇴직

한비문학에서 시 등단, 국보문학에서 소설 등단, 수원문인협회 선임이사, 계간문예이사, 한국문인협회회원, 담쟁이문학회자문위원, 국보문학작가회장, 팔도문학회원, 녹조근정훈장 포장, 한국문인협회이사장표창, 한국문학신문소설 대상, 한국문화예술진흥협회 시공모상수상, 자랑스러운 수원 문학인상 수상,

홍재문학상 수상, 첫 시집 아내를 품은 바다”. 한반도 미술협회 초대작가(서각부문)

 

 

 

 

  

 

홍재문학상 응모/김도성

 

 

 

 

 

삶의 무늬

한 사내가 유년의 풍경으로 이어지는 터널로 긴 여행을 떠난다 먼지 풀풀 나는 황토 길에 새끼손톱만큼의 꿈, 수없이 서성이며 세월은 날카로운 경계에 세워진다

계절을 스쳐 지날 때 아픔이 도드라져 시퍼런 환부마다 6.25 총성이 들리고 돌부리에 걸려 다친 정강이 흉터가 붕대를 매듯 꼭꼭 여민 사춘기를 풀어주지 않는다

천수만 파도소리 너머에는 별무리가 지고 사춘기에 물든 붉은 꽃잎이 햇살에 흩어지며 짓물러진 흉터 아련하게 뼛속에 새긴 햇살 촘촘히 박힌 상처를 더듬어 가고

거미줄에 걸린 끈끈한 흔적으로 굴절되는 그날의 상처에 핏물이 번져 전설 같은 비밀로 세월이 눌어붙었다 슬픔을 슬픔으로 묶고 사는 것이 더욱 슬픔이듯 세월 갈피 어디쯤 한 움큼 해풍에 뚝뚝 떨어져 부끄러움으로 흐려지는 삶에도 발그레한 미소로 터 잡고 훈장같이 빛나고 있음을 그 야속한 흔적의 언어가 은결 위에 생의 빛으로 번진다

 

 

 

 

 

   

 

파종(播種)

 

쇠비름의 머리채를 잡고

호미로 땅을 찍으며 실랑이한다

쇠비름은 땅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치, 힘겨루기라도 하듯

호미자루에 침을 발라

다시 찍고 당기기를 누 수회

머리채가 잘려도 땅을 놓지 않는다

 

잘린 쇠비름의 줄기에서

맑은 피가 흘렀다

승부를 가려야 하던, 타협을 하던

쇠뿔은 단숨에 뽑으라 하였던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서야 쇠비름은

축구공만 한 흙덩이를 달고 나왔다

 

파인 호미 등 너머 흙속에

씨앗 몇 알 떨어트리고

땅을 놓아주었다

외 바람 달려와 빈 가슴 휑하니 뚫고 간다

 

 

     

 

유년(幼年) 여행

 

 

 

코끝의 얼음장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나는 지금 충청도 어느 시점의 과거를 여행한다

덜컹거리며 달려온 차바퀴의 찌든 매연과

산등성이의 낯익은 비포장도로를 따스한 목도리로 둘둘 감는다

홍등의 열꽃이 호흡을 멈출 때

우마차의 소 잔등을 힘껏 후려치며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양 볼에 솜털 바람이 매섭다

묘 등처럼 가지런한 초가지붕위로 뿌연 연기가 하루의 시름을 토해낸다

바지랑대만한 옥수수 대공들의 부대낌은

모락모락 서리발로 가마솥 쇠죽으로 끓고 있고

억새 바람과 씨름하던 주름진 아버지 이마에

맺혀진 불씨들은 흙먼지 가루로 삭아

튼 손 사이 매서운 눈바람 하늘을 쓸어낸다

아궁이의 검은 재들 재갈거리며

혼 불되어 찬 공기 호흡을 짓누르면

피곤은 밤새 이부자리를 파고든다

등 언저리가 따숩다

 

속눈썹 사이로 안개 같은 기억이 쏟아진다.

 

 

 

 

귀가

 

현기증에 시달리던 아파트 공사현장

온종일 철근 깔며 피땀 흘린 긴 하루

발걸음 천근만근 되어

걷기조차 힘겹다

먼지가 푹석 이는 재래시장 모퉁이

푸성귀 팔아 쥔 몇 푼의 지전으로

해 질 녘 피곤에 지친

그림자도 눕는다

고단함도 슬픔도 다독여줄 보금자리

담장 너머 라일락 꽃대가 손짓하는

거기엔 지친 몸 뉘일

따스한 집이 있다

 

      

 

황조롱이의 하루

 

 

 

 

쉽게 내주지 않는 먹잇감을 포효하며

낯선 길을 달려간다

외로운 투쟁 멍든 몸부림 뒤로

갈퀴의 발톱이 끌어올린 저 고통의 고깃덩이

 

환경미화원 김 씨는 오늘도 길을 나선다.

취객의 소주병이 쪼아댄 낯선 길목

움푹 파인 골목마다 쉽게 내주지 않는 삶의 찌끼들을

끌어올리는 노인의 손이 갈고리처럼 단단하다

채 마르지 않은 주검의 부패를 흡입하는 밤길

살갗을 파고드는 생의 몸부림을

그는 쉽게 놓치지 않는다.

밑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황조롱이의 힘찬 날갯짓

내동댕이쳐진 치열한 삶의 조각들을

단번에 물어내는 갈퀴손,

부패로 가득 차오른 새벽길을 주워 담는 고단한 몸속,

부리까지 밀려드는

허기진 하루

삶의 끈을 쉽게 놓지 않고

고도의 비행을 시작한다.

 

 

  

 

부표

 

 

 

오늘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하루의 길이 출렁이는 사내

 

길이란 사람의 양심에 묻는다

 

정도를 가야 하나 아니면 이탈을 해야 하나

세상은 간유리 밖으로 굽은 길만 보인다.

 

 

 

      

 

5분 전 12

 

 

두 바늘 사이의 각이 30

절대로 기다려 주지 않고 좁아진다

사랑하는 아들의 입영 열차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반세기 만에 만난 이산가족

잡았던 손을 놓아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가장을 지켜보는

절체절명의 순간

시침과 분침이 초침의 재촉으로

굽 닳은 세월이 출렁인다

 

두 개의 작두날이

여물을 썰듯 침묵을 자르고 있다.

 

 

  

 

하늘

 

 

은행나무와 남천 나무가

각기 다른 하늘 아래에서 살던

바람이 불던 어느 날

 

가을 빗속 은행잎 하나

병실 창에 붙어 나비처럼 펄럭인다

창백한 얼굴의 은행잎 언제 날아갈까

백로 앞의 물고기처럼 불안하다

 

잎이 지는 겨울 너머 새봄을 기다리듯

은행잎이 남천나무 눈 속으로 파고든다

앞으로 삶을 도와주는 희망으로

바라보는 눈이 젖는다

 

 

쓸 어진 물병에서 물이 쏟아지듯

막혔던 가슴에 여며두었던 말문이 열린다

동파된 수도 파이프 터진 물처럼 말을 퍼 댄다

화실의 석고상처럼 멍하니 앉아 듣는 남천나무

 

지금껏 같은 하늘 아래에 끼워 주지 않은 불만

몸의 절반이 찢긴 은행잎과 함께하는 하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남천 나무의 길

 

 

 

 

 

  

 

 

가시내

 

 

햇살 가득한 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

달팽이관이 돌아 눕는다

 

금방 낚아챈 버들치처럼

푸드덕 호들갑을 떤다

톡톡 쏘는 철부지 말투

장미가시처럼 따가운데

 

겨울벽난로 앞에 앉은 그녀

화끈한 열기에

고구마 빛으로 익은 얼굴

 

내 마음 한복판으로

유년이 나비처럼 날아든다

 

 

가시나 : “계집애" 의 경상도 사투리

 

 

 

 

 

 

  

 

자연인(自然人)

 

 

물끄러미 보름달 보며

허공을 재본다

 

여기서

계수나무까지

거리 재는 자 벌레처럼

 

그래야

한 뼘 거리인데

초야에 묻혀 헛꿈을

 

 

 

 

 

  

 

 

집터

 

 

탱자나무 풀숲에서 흰나비 나풀나풀

주추 밑 채송화가 반갑게 마중하고

어머니 기도소리는 돌무덤을 쌓는다

 

사각사각 밟히는 사금파리 낮은 음계

집터처럼 빈 가슴에 마른 갈잎 구르고

노을이 붉게 물든다. 활처럼 굽은 등에

 

 

 자전거 데이트

              

어느 해 가을날 총각인 나는 첫사랑 여인을 자전거에 태우고 코스모스 꽃길을 마냥 달렸다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허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파묻는데 물컹한 무엇이 잔등을 자극했다 넘어질 듯 일부러 비틀거리면 더 세게 끌어안으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코스모스도 따라 웃었다 훗날의 가을 길에 서면 오래전 그 물컹한 기억이 떠오른다. 눈 내리는 벌판을 걷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죽은 꽃대를 보며 얼마 전 떠난 그녀를 슬퍼한다.

 

 

 

황간 역에서

    
지금 내가
보고파 부르는
--마 소리

동그란
비눗방울 속
파란 하늘
구름타고

나 혼자
- 불어 본다.
어머니 찾아갈까





가을

 

 

아침에 창을 열면

햇살이 손짓 하고

 

저녁에 하늘 보면

달빛이 불러내고

 

묘지 앞

상석에 누워

따먹었던 별을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