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봉 김도성 2018. 9. 14. 15:28

 

 

 

 

하늘

 

김도성

 

은행나무와 남천 나무가

각기 다른 하늘 아래에서 살던

바람이 불던 어느 날

 

가을 빗속 은행잎 하나

병실 창에 붙어 나비처럼 펄럭인다

창백한 얼굴의 은행잎 언제 날아갈까

백로 앞의 물고기처럼 불안하다

 

잎이 지는 겨울 너머 새봄을 기다리듯

은행잎이 남천나무 눈 속으로 파고든다

앞으로 삶을 도와주는 희망으로

바라보는 눈이 젖는다

 

 

쓸 어진 물병에서 물이 쏟아지듯

막혔던 가슴에 여며두었던 말문이 열린다

동파된 수도 파이프 터진 물처럼 말을 퍼 댄다

화실의 석고상처럼 멍하니 앉아 듣는 남천나무

 

지금껏 같은 하늘 아래에 끼워 주지 않은 불만

몸의 절반이 찢긴 은행잎과 함께하는 하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남천 나무의 길

 

 

2018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