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3. 사진 일기(아내 초음파 검사결과 보러 서울대병원에 나만 다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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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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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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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기분좋게 마신 술이 과음을 했다.
이제는 술을 절제해야 겠다.
몸의 컨디션 좋지 않다.
일주전 아내 유방 초음파 검사 결과 보러 서울대 병원에 가는 날이다.
메르스 환자가 입원중인 서울대병원에 가는 것이 걱정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오늘은 아내는 가지 않고 보호자인 나만 가기로하여 가족관계증명서와 위임장을 준비해 갔다.
이른 아침을 챙겨 억고 6시 30분경 서울가는 버스를탔다.
사당역앞에 버스 전용도로가 생기고 하차정류장 위치도 바뀌어 어리둥절했다.
9시 30분 진료예약 시간이데 8시 15분경 도착했다.
병원 진료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여 졸았다.
시간이 되어 담당 여의사의 말을 들으니 초음파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1년후에 다시 초음파 검사하기로 예약하고 집으로 왔다.
11시경에 도착한 나는 시장하여 이른 점심을 라면을 끓여 먹고 낮잠을 잤다.
4시경 일어나 아내와 함께 겸상으로 저녁을 먹었다.
대구에 사는 백마가 직접 농사지은 희카마를 한상자 택배로 보냈다.
저녁 찬으로 희카마를 깎아 생채를 담아 먹었다.
오늘은 오세영교수 시창작 강의가 있는 날이다.
7시부터 9시까지 강의를 듣고 지에 오자마자 아내를 데리고 아파트 산책 운동을 했다.
2018/09/13(목) 영국의 헨리 8세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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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Henry VIII세에게 여자가 많았다는 통설이 있다. 그에게 여자가 여덟 명이나 있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여섯 밖에 없었고, 왕비는 언제나 한 사람 뿐이었다. 헨리 8세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불행하였다. 왕위에 올랐던 형 Arthur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당시 영국 왕실의 관례를 따라 동생이 왕위를 계승하고 미망인이 된 형수와 결혼 할 수밖에 없었다. 헨리 8세는 스페인 출신의 그 형수인 왕비 캐서린을 좋아 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서 Mary Tudor 라는 딸이 태어났다. 잠시 왕위를 계승한 메리 1세는 6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에 로마 가톨릭 복고 정책으로 개신교와 성공회를 탄압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Bloody Mary”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피의 메리”라는 칵테일도 있는데, 그 술의 빛갈이 핏빛인 것이 사실이다. 아들이 없던 헨리 왕은 형수였던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Ann Bolyn 이라는 재색을 겸비한 여성과 결혼하려고 했으나 교황청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오래도록 교황청과 갈등을 겪었다. 헨리는 8세는 교황청과 단절하고, 6세기 이래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이었던 영국의 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시켜 왕 자신이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이 가졌던 토지를 모두 몰수하여 자기를 따르는 신진 세력들에게 분배해 줌으로서 왕의 자리를 더욱 곤고하게 하였다. 이 법에 따라 기독교 역사에서 성공회의 시초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헨리 왕이 죽고 ‘Bloody Mary’ 가 등장하여서 까딱 잘못했으면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김동길 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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