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8. 7. 1. 사진 일기(우천으로 집에서 보내다.)

무봉 김도성 2018. 7. 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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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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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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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부터 굵은 비가 계속 아침까지 하루 종일 내렸다.

아내와 함께 이른 아침을 먹고 잠시 쉬었다 10시경 아내운동을 해주려 차를 몰고 홈플러스에 갔다.

아내가 지팡이를 짚고 나는 우산 바치고 아파트를 산책하는데는 여러가지 불편이 따랐다.

그래서 아내가 원하는 홈풀러스 매ㅐ장에서 걷기 운동하기로 했다.

나는 주로 조원 시장이나 마트에서 시장을 보지 홈풀러스에는 가지 않는다.

물건도 그리 좋은 편도 못되고 오히려 마트나 재래시장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는 4년전 겨울에 아내가 홈풀러스에 가다가 빙판에 넘어져 무릎 부상으로 

뇌졸중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정도 걷기 운동후 집으로 왔다. 

비는 억수로 계속 내렸다.

점심식사도 거르고 오후 4시까지 낮잠을 잤다.

비는 계속 내렸다.

저녁식사후 아내와 함께 빗속을 걸어 아파트를 산책했다.

좀 귀찮아 짜증을 부린 것이 미안하다.

그래도 아내가 좀 안정되게 걷고 혈당 조절도 정상으로 돌아와 감사한다.

대학생 손자가 서울  대치동 학원에 7시부터 수강이 있어 5시출발 했다가 10시경 집에 왔다.
























2018/7/1(일) 안양의 가을 (62)

 

내가 안양 교도소에 도착 했을 때만해도 무더위가 얼마는 남아 있었다. 나는 서울 구치소에서 보다는 좀 넓은 독방에 배정되어 무더위 속에서 며칠을 보내고 있었는데, 감방 창문 밖에는 어느덧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였다. 쓸쓸한 가을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가을이 접어들어 햇살이 그리운 계절이 되었다. 감방의 마루가 나무 판때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방 한구석에 조금 패여 있는 홈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끝내고 보니 엎지른 약간의 물이 그 패인 홈에 고여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파리 한 마리가 날라 와서 그 고인 물에 빠지게 되었다. 이놈이 자세를 바로 잡아 다시 날아가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온갖 고생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물끄러미 그 파리 한 마리의 신세를 관찰하면서, “네가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날아갈 수 있으면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가능할 것이고, 네가 만일 거기에서 못 벗어나서 날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한참 동안 그 파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가련한 파리가 하도 오래 동안 바둥거리고 있어서 처음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 파리가 빨딱 몸을 뒤집어 날개의 물을 떨치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민주주의가 승리할 터이니 두고 봐라!” 내 가슴속에 그런 뜨거운 신념이 용솟음쳐 올라왔다. .

김동길
Kimdonggill.com



 


     축구선수 호날두의 실화

 

?최고의 몸값 Keuriseutianu Honaldu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나는 어릴 적부터 가난이 너무나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나를 잡아먹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나는 너무 두려웠다.

 

형은 마약중독자였다.

형은 약에 취해 삶에 의욕도 없었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난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 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나에게 보인 것은

저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에 껴주지는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난 태어나 처음으로 기쁨을 넘어선 희열을 느꼈다.

 

"어머니, 저도 축구를 하고 싶어요. 축구팀에 보내주세요"

 

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고

나와 함께 이곳저곳 팀을 알아봐 주셨다.

 

겨우 저렴한 가격으로 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모두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다.

 

낡은 축구화를 수선하며 축구를 하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난 어릴적부터 정상인보다 두배는 빠르게 심장이 뛰는

질병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앞으로 운동선수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면

정상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다.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 할 수 없었다.

 

나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나의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하였고,

 

마침내, 일 년 후..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재활을 마친 나는 더욱 더 훈련에 강도를 높였다.

비록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하면 어떤가?

나는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난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데뷔하였다.

 

수많은 관중, 서포터즈, 스포츠기자들, 그리고 유명 축구팀

스카우터들..

 

내가 바라고 바랬던 축구장..

난 이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

그렇게 나의 데뷔전이 끝났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은 다른 리그 축구팀 감독이라고 하면서 나를

이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그것은 전율이었다.

 

그곳은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람은

최고의 축구감독이라 평가받는 퍼거슨 감독이었다.

 

통화를 끝낸 후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나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흐느끼며 어머니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되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고 계셨다.

 

구멍난 축구화에 외톨이, 심장병을 가진, 가난에 허덕이던

소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가 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현재 최고 몸값의 축구선수가 되었다.

호날두는 최고 몸값의 축구선수인 만큼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한 해 기부하는 금액은 한국인 5천만이 한 해 기부하는

금액보다 많다.

 

공익을 위하는 광고는 단 한푼도 받지 않고 출연을 하며,

소말리아에 300억 기부와 자신의 팬의 수술비 전액을

지원해 주었으며,

아동질병 퇴치과 아동 구호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는 운동선수들에게 아주 흔한

문신 하나 없다.

 

문신을 하면 당분간 헌혈을 할 수 없어서 문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