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8. 4. 9. 사진 일기(아내 연세내과 약처방, 양작가와 점심 식사)

무봉 김도성 2018. 4. 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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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7e9xRbwbUYsww44RbUpRY

 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b08ff7BiwuOBEnjfnmijm

원인이 무엇일까 아내가 3일째 잦은 설사를 했다.

아내에게 왜 토요일 병원에 가지않고 일요일만 되면 아프다하느냐 짜증을 냈다.

하루하루 지내는 일이 이제는 내게 버겁다.

이른 아침을 먼저 챙겨 먹고 아내밥상을 차려 놓았다.

7시 조금 넘어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어제밤 비가 내려 운동을 못하는 줄 알고 몇 사람 나오지 않았다.

젊은 회원들과 어울려 타이트한 경기로 땀을 흘렸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데리고 연세류 내과에 갔다.

3일치 약을 처방 받았다.

아내가 전에는 혼자 걸었는데 이제는 주변에 있는 것을 자꾸 잡으려고해 중심을 잡고 천천히 걸으라 했다.

듣기가 싫은지 내게 짜증을 냈다.

오전에 자동차가 더러워 세차하러 세차장에 갔다.

오랜만에 동전을 넣고 손세차를 해보았다.

동작느려서인지 5,000원 동전을 허비했다.

유리막 코팅을 해서 기계세차는 하지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양승본 소설가를 불러내 함께 식사를 했다.

오늘 이사가는 집이 책꽂이 새것을 버리고 갔다.

내방에 책이 넘쳐 책꽂이를 거실에 놓고 책을 정리했다.

아내가 못 맞당 해 하는 눈치다.

그런데 오후 부터 오른쪽 무릎이 아프다.

어제 장시간 운전하며 오른쪽 다리를 놓은 것이 잘못 된것일까

아니면 요즘 근력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일까

아프면 안되는데 걱정이다.

저녁 식사후 아내를 데리고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다.

그리고 일부책을 책장에 꽂아 정리를 했다.































2018/04/09(월) 아! 마틴 루터 킹! (3631)

 

미국의 역사가 건국 이래 아직도 250 년이 채 안되게 짧기 때문에 그런지 미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인물은 다섯 사람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아브라함 링컨,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인데 그중 세 명은 대통령, 한 명은 발명가 겸 외교관, 그리고 나머지 한사람은 목사인 동시에 인권 운동가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정식으로 대학 교육과 보스톤의 유수한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그 당시 흑인으로서는 차고 넘칠만한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그가 원했다면 백인들이 운영하는 대학에 교수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았겠지만, 그는 흑인들을 위하여 일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의 본거지인 알라바마주의 몽고메리로 가서 목사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흑인 인권을 위한 투쟁이 고개를 든 1950년, 60년대에 혼자서 안일한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호전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어서 인권 운동 일선에 서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인권 운동에 열렬한 백인들을 위시한 많은 주변 사람들이 ‘당신이야말로 준비가 잘 된 지도자이니 앞장서야 마땅하지 않은가’ 라며 그를 격려하는 바람에 떠밀려서 험난한 싸움을 하다가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저격을 당하여 이 세상을 떠난지 꼭 50년이 된 지금 또 다시 봄은 찾아 왔지만,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은 아직 완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흑인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은 적어도 미국 땅에서는 불행한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워싱턴 기념관 앞에서 30만 군중들을 향해 “I have a dream" 을 되풀이 하며 외치던 마틴 루터 킹의 그 꿈은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그 이상의 큰 열매는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사랑은 바람이었다

     

    김도성

     

    사랑은 불이요 내 발등의 빛이었다

    낮에는 태양이요 밤에는 별이었다

    어느 날 가슴으로 들어와 아픔을 남겼다

     

    눈으로 사랑을 느끼고 창을 열어 안을 보았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었고 평안의 쉼터였다

    항상 옆에 있어야 했고 가능한 가까이 있었다

    숨소리마저 사랑했고 그는 또 다른 나였다

     

    날마다 보아야 했고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광야에 떠도는 유령으로 밤을 낯처럼 밝혔다

    풀숲의 이슬을 털며 들개처럼 미처 다녔다

    공동묘지도 포근했고 묘지 상석은 온돌이었다

    상엿집은 둘만의 공간이요 물방앗간은 쉼터였다

     

    북두칠성이 안내했고 유성이 길을 보였다

    전기도 시계도 없는 오지의 마을에 살았다

    둘만이 만나야 하고 알아야 하는 사랑이었다

    미장원을 운영했고 나는 천막학교 총각선생이었다

     

    마을의 입소문 때문에 둘만의 사랑을 해야 했다

    미장원 창의 머리 손질하는 그림자를 보았다

    눈비가 내려도 추녀 밑에서 장승처럼 기다렸다

    자리 비운 사이 놓쳐 버릴까 화장실을 참았다

     

    자정이 가까워 불이 꺼지고 검은 그림자가 왔다

    겨드랑에 손을 끼고 그냥 붙어 신작로를 걸었다

    가로수 미루나무가 길 따라 소실점을 만드는 밤이다

     

    어젯밤처럼 발길 닫는 대로 그 길을 파고들었다

    먹구름이 달을 가리고 자갈 밟히는 소리가 부서졌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고 굵어져 소나기가 내렸다

    비를 피할 곳도 우산도 없어 말없이 밀착해 걸었다

     

    모든 것을 적셔내는 샤워꼭지 아래를 걸었다

    옷도 흠뻑 젖어들고 알몸까지 적시는 칠흑의 밤이다

    얼마 동안 말없이 걷고 걸어 물방앗간에 숨어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지붕의 양철 조각 소리가 요란했다

     

    벽에 기대어 애절하게 올려보는 눈을 내려 보았다

    불꽃이 튀고 불꽃을 삼키며 한동안 매듭으로 엉켰다

    한기를 느껴 지푸라기를 모아 불을 피웠다

    얼굴이 불꽃에 붉게 물들어 아름다웠다

     

    물먹은 휴지처럼 젖은 옷이 살갗을 들어냈다

    웃옷을 벗겨 말리도록 했다

    불 앞에 앉은 등을 안았다

    두 팔을 벌려 옷을 말렸다

    어깨에 턱을 걸치고 볼과 볼을 비볐다

    기약 없는 우리의 불장난은 밤을 밝혔다

     

    연암산 천장암 예불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218.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