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주 - 너는 남편(15)/위정님의 글
"천당과 지옥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다"
이제 부터는 조금 야시시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겠습니다 여자한테도 이골이 났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인데 뭐~ 그리 부끄러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람둥이를 일컫는 말로 오입쟁이라는 말을
씁니다 오입쟁이가 되려면 수련의 과정을 겪어야만 되지요 무엇 때문에 오입이라고 하는가 하면
오입쟁이는 처녀,과부,스님,기생,거지... 이렇게 다섯 종류의 여자를 거쳐야만 명실공히 五入쟁이라는
자격증을 땁니다 ㅋㅋ
다른 건 다~ 해봤는데 거지는 못해봤다구요?? 거지는 맨 정신으로는 안 된답니다 술에 쩔어서
거지여인의 때묻은 발가락을 빨아도 단 맛을 느껴야만 가능하다고 하더라구요 우~웩~??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구토를 하시면 어쩝니까요? 자유당 시절에 이강석이라는 카사노바를 아시지요?
일류 여대생만 무려 70명을 잡아 먹었습니다
뼈다귀는 어디 있냐구요? 식인종은 아니구요 여대생 70명을 따먹었다구요...ㅉ 결국은 구속이
됐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이상스러운 판결이 나왔습니다 무죄로 풀려 났거던요
판결문인즉~ "스스로가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성(性)은 국가에서도 지켜 줄 수가 없다"
그 판사도 뭣을 아는 놈이여... 피해자 조사를 했더니만 모든 여자들이 "구속은 원치 않는다" 요따우로
이야기를 했답니다
이강석이한테 비방을 배우러 가고 싶지요? 아마도 가미가제 특공대 정신으로 여자들을 극락으로
지옥으로 환희의 세계로 몰고 다녔던 모양입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처녀성을 잃고도 처벌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남자들의 성이란~ 쓰면 쓸 수록 강해지고 처박아 놓으면 샘이 말라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준은 있습니다 일정한 기준이 없다면 옹녀한테 걸려서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로 시끄럽지만 이들은 하루에 50명을 상대하고도 살아 남은 걸~ 보면 음이라는
여자의 본성이 무엇인지도 의심스럽고 남자들은 10회도 거룩한 일이지만 다음 날은 코피를 흘리며
인사불성이 될 겁니다 일본애들의 속설에 조선여자와 자고 전장에 나가면 총알이 피해간다는 이야기
때문에 수많은 조선의 여자들이 아픔의 세월을 보냈지요 자~ 하던 공부를 해보지요
구구단을 외우시면 됩니다 티비 프로에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있더라구요 이상한 구구단을 적어
볼께유.. 고학력에 나이도 있으니까~ 9단으로 가보지요 9*2=108 9*3=207 9*4=306 9*5=405
9*6=504 9*7=603 9*8=702 9*9=801 이해가 되시나요?? 답에 앞의 두자리는 날짜고 뒤는 횟수지요
90세에는 80일에 한 번을~ 일년에 네 번만 하라는 얘깁니다 20대에는 10일에 8번... 워매~~ *&$#&*
부러운거... 그러나 소녀경에는 70세 부터는 사정을 하지 말라고 하지요
즐기기만 하고 정력을 비축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가까운 시일에 다시 성욕이 일어난다는 얘깁니다
하기사 젊을 때는 하룻밤에도 밤꽃 냄새가 나도록 열심히 중생 봉사를 했지만 지나고 보면 정부지원도
없는 일을 날밤을 까가며 몸까지 축이 나도록 열성을 다했지요 젊음이라는 에너지 때문에...
여자가 남자의 성감을 자극하는데는 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명명하여 "탐욕의 거리"라고 하겠습니다
손 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권태거리라고 합니다 조것이 궁뎅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다니는데 붙잡아서 호미걸이로 한 판을 넘기고 싶은데 손에 잡히질 않는 거지요 이 거리가 애정을
유발하는 거리랍니다 여자들은 남자를 짐승이라고 하면서도 외롭고 쓸쓸한 밤에는 짐승의 발자욱
소리에 귀를 기우리며 기다리는 것이 여자라는 사육사들의 본심이지요
여성들이 올가를 느끼면 혈류의 흐름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돈다고 하지요 그래서 얼굴이 창백하던
노처녀가 시집을 가면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건~ 밤마다 나쁜짓(?)을 한다는 증거지요 여드름 때문에
고생하는 처녀들도 짐승들과 사귀면 여드름이 사라지지요 이때부터 도둑놈과 장물아비가 함께 살아
갑니다 짐승들은 성감을 느끼는 곳이 두 세군데지만 여자는 온 몸이 성감대 덩어립니다
심지어는 꼬랑내 나는 발가락까지도 불을 붙히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우리가 聖君으로 알고
있는 세종대왕은 부인이 소헌왕후 심씨 외에도 15명이나 더 있었지요 이렇게 많은 여자들을 거느리고도
한글을 만들었다니 이해 불가지만 42세엔 임질이 걸려서 고생했다는 기록을 보면 벌처럼 너무 헤집고
다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가 봅니다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