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각작품

광교산 종루봉 정자 현판 마해정 현판식

무봉 김도성 2017. 12. 13. 16:47











광교산 종루봉 정자에 ‘망해정’ 현판 걸던 날
2017-12-07 09:45:30최종 업데이트 : 2017-12-07 11:39:27 작성자 : 시민기자   이대규
작업을 마친 뒤 망해정

작업을 마친 뒤 망해정

광교산 종루봉엔 팔각정자가 있다. 신라 말기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유랑하던 때 이곳에 올라 ‘종대봉’이라 한 것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종루(樓)와 종대(臺)는 서로 어감은 다르지만 종을 매달아놓은 곳을 말하므로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광교산 종루봉에는 신라 말기에도 종을 매달았던 곳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현재의 종루봉 팔각정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잘 모른다. 전에는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추가 허공에 뜰 정도로 바닥이 파이고, 흙이 씻겨나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튼튼하게 보수가 잘 되어 있어 좋다. 기초공사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2층 마룻바닥 역시 신소재로 잘 고쳐놓았다.

이곳 정자 마루에 올라서면 정면으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이런 나옹선사의 시를 볼 수 있다. 등산의 즐겁고 상쾌한 기분을 상승시켜준다. 정자마루에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멀리 산하를 바라보면 마치 나옹선사라도 된 기분이 든다.
눈 길에 메고 지고, 종루봉을 향해

눈 길에 메고 지고, 종루봉을 향해

토끼재를 오르고 있다.

토끼재를 오르고 있다.

이 시를 서각 한 사람은 무봉 선생이다. 2003년 학교를 정년퇴직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할 일이 없을까 찾다가, 2004년 광교산과 그 주변 정자 여러 곳에 서각 작품 몇 점을 만들어 걸었다고 한다. 이런 무봉 선생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수원문인협회회원인 것을 알고 얘기를 나눴다. ‘광교산 종루봉에는 아름답고 훌륭한 팔각정자가 있다. 그러나 이름이 없으니 메이커 없는 싸구려 상품과 다르지 않다’며, 정자 이름을 하나 새겨 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봉 선생은 첫째 정자이름이 필요하고, 둘째는 수원시청 관계부서와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얼른 생각해낸 것이 ‘종루정’이었지만 루(樓)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亭)과도 같은 말이 반복된다. 그때 문득 최치원 선생이 떠오른 것이다. 이곳 종루봉에 올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시를 짓고, 서해바다를 바라봤다는 대목이다. 그렇다, 망해정(望海亭)이다. 그렇게 이름을 달고 있으면 등산객들은 이곳에 와서 그 의미도 새기며, 훌륭한 대학자를 떠올리지 않을까.
무봉 선생도 ‘망해정’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수원시청 담당부서 팀장과 전화통화를 해보니 매우 반기는 기색이다. 역사학자들과도 협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무봉 선생과 연락을 취하게 한 뒤 지난여름부터 시작된 일이다. 글씨는 각 대학에서 서예 강의를 하고, 국전 심사위원인 도정 권상호 선생이 썼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뤄오다가 이제야 추운 겨울에 걸게 되었다.

공사를 맡은 업자로부터 상광교 종점에서 6일 오전 10시에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망해정 현판을 달러가니 참석하라는 것이다. 무봉 선생은 사정이 있어 불참한 가운데 종점에서 업자 일행과 합류했다. 작업차량이라 사방댐 위까지 들어갈 줄 알았는데 눈이 살짝 덮여있어 경사진 길을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고 한다. 도랑 앞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렸다. 망해정 현판과 그 설명문을 부착할 기둥과 공구 등을 나눠 메고 들고, 토끼재 계단을 오르기란 쉽지 않았다.
작업 중

작업 중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현판을 등에 지고 가는 모습을 보니 옛날 상단의 보부상이 떠올랐다. 힘들기로는 시멘트 주추가 달린 철 지주를 어깨에 메고 뒤따라오는 나이 지긋한 분을 빼놓을 수 없다. 일당을 받고 온 모양이다. 업자는 뒤떨어진 그가 마음에 걸린 듯 기다려주기도 하고, 연신 천천히 쉬었다 오라고 한다. 일용근로자들은 이렇게 산에 와서 작업할 때면 너무 힘든 탓에 물건은 그 자리에 놓고 몰래 도망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종루봉에 오르니 12시가 되었다. 종루봉과 망해정에 대한 설명문을 기둥에 달아 세우기 위해 터파기를 해야 했다. 망해정 현판은 원래 계단 올라가는 처마 안에 달기로 했다. 그러나 현판의 세로가 너무 높아 계단을 오르면 머리가 닿는다. 또 어렵게 높이다보니 글씨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상황이라 나는 현장감독이라도 된 듯 그럴 것 없이 계단 옆 칸에 달면 좋겠다고 했다. 등산객들의 눈에 잘 보이면 되는 것 아니냐? 그리고 설명문 입간판도 외진 곳에 떨어져 세우는 것 보다 현판 아래,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업자도 그게 좋겠다며 내 말에 순순히 동의해주었다. 업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바뀌게 되는 현장 상황을 수시로 사진을 찍어 시청 팀장에게 알리며 허락을 받는 모양이다.
등산객 한 명이 종루봉과 망해정에 대한 설명 문을 보고 있다.

등산객 한 명이 종루봉과 망해정에 대한 설명 문을 보고 있다.

작업을 하는 중간에도 등산객들은 정자위에 올라 컵라면을 먹기도 하고, 일행들끼리 떠들썩하니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청산은 나를 보고...' 시를 읽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망해정이라 쓴 예서체 글자를 잘 몰라 묻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설명문을 읽으며 ‘최치원?’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종루봉에는 이렇듯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어 등산객들의 관심도 더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됐다. 

작업을 끝내고 나니 오후1시50분이다. 업자는 다시 와서 현판 뒤의 밴드 묶은 부분을 미관상 안 좋다며, 커버로 씌워야겠다고 말한다. 시청 일을 많이 하고 있다며, 공공장소의 시설은 시민들 모두가 주인이기 때문에 여간 꼼꼼하게 챙기지 않으면 못한다고 한다.
해냈다는 기쁨에서였을까, 눈발이 하얀 종루봉 길을 엉금엉금 내려오는데 그때서야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한다. 
 

수원시, 광교산 종루봉, 망해정, 무봉, 이대규

2017.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