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5. 사진 일기(광복절 태극기 달기, 아내와 강평자 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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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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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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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내려 테니스를 나가지 못했다.
매일 운동으로 몸안의 노폐물을 땀으로 배출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 상쾌했다.
낮에도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다.
아침 식사후 아내와 함께 극장을 가려 했으나 공휴일로 좌석이 매진되어
맨 앞좌석 밖에 없어 다음에 가기로하고 포기했다.
10시경 아내의 교회 친구가 허리수술로 입원해 있어 빈세트 병원에 문병 다녀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가계에 들러 이것저것 생필품과 손자에게 먹일 고기를 사 왔다.
이른 아침 광복 72주년 8.15를 맞아 태극기를 게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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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광복 72주년을 맞아 이른 아침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하며
- 7년전 조선알보에 투고 했던 기사를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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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6.25 조선일보 기사
2010. 4. 23. 조선일보 6면
▲ 김도성(70·경기도 수원시 거주)
- 내 고향은 충남 서산시 고북면. 유엔군이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되찾은 직후
- 우리 마을에도 국군이 북한군 잔당을 소탕하러 진격해 왔다.
- 하지만 국군 탱크는 면 소재지 남쪽 언덕에 머무른 채 공포(空砲)만 쏘아대고 있었다.
- 마을에 인공기가 걸려 있는 탓에 아직 북한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 섣불리 내려오지 못한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9월 30일이었던 것 같다.
- 새벽녘에 "팡" 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 깜짝 놀라 밖에 나가보니 6척 장신(長身)의
- 스님 한 분이 오른손에 사제(私製) 권총을 들고 늠름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인근 고찰(古刹)인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의 주지였다.
- 스님은 면사무소에 걸린 북한 면당위원회 간판을 주먹으로
- 일격(一擊)해서 떼어낸 후 우물에 처박아버렸다.
- 무협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의 무공을 보는 듯했다.
- 이어 스님은 바로 옆 주재소(경찰지서) 국기게양대에 걸린 인공기를 내려
- 발기발기 찢어버린 뒤 허리춤에서 태극기를 꺼내 최대한 높게 게양했다.
- '신호'가 올라가자 그제야 국군 탱크는 마을로 내려왔다.
국군을 본 마을 사람들은 통곡을 했다.
- "하루만 먼저 오지 그랬소. 그러면 우리 아들이, 우리 남편이 죽지 않았을 텐데…."
바로 전날 밤 북한군은 임시 감옥으로 사용하던 소방대 창고에
- 불을 질러 가둬두었던 공무원과 지주(地主)들을 죽였다.
- 태극기가 하루만 더 일찍 올라갔더라도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스님에게 왜 그런 활약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 다만 소방대 창고에서 죽어가는 사람 목숨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다들 생각했다.
- 커서 교사가 된 나는 학생들에게 스님과 태극기 이야기를 수십년간 해왔다.
- 60년이 지났지만 스님의 통쾌한 몸동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침 7시경 비가 내리는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만해 축전 2017. 8. 12. 경기대 문창 수강 생들이 이지엽 교수님 모시고
◆2017/08/15(화) -이스라엘의 113세 노인이- (3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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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nd 태생의 이 노인은 작년에 만 113세가 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1903년에 출생한 것 같습니다. 그는 유태인이어서 Hitler의 졸도들에게 붙잡혀 수용소에 끌려갔으나 살아남아서 Israel에 이주하여 살다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데 이 노인이 세계보건기구가 공인하는 지구상의 최고령자였다고 합니다. 원시림이나 또는 미개발지역에 살면서 ‘최고 연령자’로 자부하는 노인들이 여럿 있는데 이분들의 호적은 확실치가 않습니다. 따라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강제수용소에 끌려갈 때 참조한 호적에 생년월일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 백세’가 소망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100세가 넘어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된 유명한 화가가 있습니다. 100세가 되어도 변함없이 딸의 살림을 보살펴주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00세가 되어도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할아버지·할머니는 몇 분 되지 않고 대개는 병상에 누워있고 출입도 못합니다. 독일과 일본이 연합군에 패배·항복하고 독일 땅과 한국 땅에 자유의 아침이 밝아오던 1945년에 나는 열여덟이었고 세계 최고 장수자였던 그 유태인 할아버지는 마흔셋이었습니다. 해방되던 그 날 홍안의 소년이었던 나는 오늘 90이 되었고, 히틀러에게 처형될 뻔한 이 유태인은 72년을 더 살고 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이 90이 되어 그 분의 뒤를 쫓고 있으니 인생이란 정말 모르는 겁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100세를 넘어 120세를 바라보는 어리석은 노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허락된 오늘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세요. 마음껏 사랑하세요. “내일이면 늦으리”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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