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조용히 감상하며 생각하는 시
무봉 김도성
2017. 7. 31. 08:25
비밀 / 솔체 김희정
너를 생각 하는데
내가 왜
만질 수도 없는 곳이 아프냐
어느새
네게 물이 들어
나붓, 나붓, 흔들리는
명주 수건 같은 마음을
내가 보여 줄 수가 있나
네가 보잔들 내 놓을 수가 있나
그냥 허허로운 빈속에 감추어 두고
자취가 없어도
찌르르하며
뭉텅 떨어지던건
말 못하는 내 가슴 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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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꽃을 피워놓고 / 청원 이명희
햇살을 스쳐가는 그 바람이 따뜻해서
연분홍 꽃 노랑꽃 무수히 피워놓고
그대를 생각 했습니다 봄날이 이울도록
슬프디 슬픈 하얀 적막함에
무수히 피워놓은 꽃 허망하게 질 때까지
약속도 없는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세월에 덮힌 그리움 덧쌓이는 날
간절함으로 메우는 가슴에 핀 헛꽃
공허하게 바라 보다 바라보다 눈물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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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내가 있어야 한다면 / 최호건
내가 많은 것을 줄 수 없는 사람이지만
네게 내가 필요하다면
무엇을 못할까요
네게 나의 존재가 자그마한 알갱이 같을지라도
네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영원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실체를 모두 들여다 볼 순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고 싶습니다
마음이 온전하지 않을지라도
진실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평온한 상태를 감싸 안음처럼
순응하는 자연처럼
여행하는 새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허황보다는
허리를 굽히는 사람 되어
허세보다는 배려를
풍족함보다는 적당함에
예를 갖추는 사람으로
새날이 옵니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당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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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데이트 / 무봉 김도성
저녁노을 하루해가
초등학교 운동장 귀퉁이
녹슨 그네에 걸렸다
텅 빈 운동장에
크고 작은 발자국들이
고물거리며 기어 다닌다
뱉어낸 말소리가
교실 처마와 느티나무 속에서
재잘거렸다
아내와 나는 해를 등에 지고
나란히 서보았다
운동장에 길쭉한 부부 그림자
아내가 기울어진 피사 탑처럼
내게 기댔다
아 슬프다
천둥과 번개가 아내의
머리를 치고 간 것이 3년
그림자가 눈물을 쏟는다
왼손은 며칠 전에 뽑아 놓은
무청처럼 늘어졌다
그나마 성한 오른손이
나의 왼손을 잡고 걷자고 한다
나는 지팡이가 된다
가끔 나의 얼굴을 올려 보며
반지 끼운 왼손가락을
좋다는 신호로 으스러지게
쥐었다 놓았다 했다
아프기 전 손잡고 산책하는
부부가 그렇게 부럽다고 했다
그때 산책하며 내 손 잡도록 했건만
누가 보면 얼른 손을 빼던
소심한 아내가 오늘은 원수를
갚으려는지 반지가 살 속으로
파고든다
그래도 나는 참았다
여보! 그리도 좋소
네, 이 손 죽을 때까지 놓지 마요
무엇인가 주먹 같은 것이
나의 심장 속을 내리쳤다
2017.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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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월정 강대실
한 귀에 정화조가 터주처럼 퍼질러 앉아
악취 솔솔 날리던 반지빠른 자투리땅
여기저기 널린 우려먹고 버린 뼈다귀
개 고양이 몰래 싼 똥에 파리 떼 들끓던
눈초리 날카로운 사금파리 유리조각
벌건 녹 뒤집어쓴 숟가락 몽당이 묻혔던
뒤축이 삐딱하게 닳은 백구두 한 짝
마구 버린 연탄재에 치여 숨 헐떡이던
삽날도 등골 오싹했던 이 더러운 데다 심어
한 고샅 사람들과 맛나게 나누는 푸성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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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 워낭
나 그대에게 편지를 보내네
덧니 난 우체국 여직원 볼까
하도롱 봉투 깊숙이 넣어
참외의 햇새순같은 그대에게
봄 햇살 가득 담아 보내네
나 이제 답신의 시간이 두렵네
내 남은 生을 한 뼘 밀어 내며
다시 온 이 봄이 아프듯!
우체부, 아지랑이를 배달하기 전
장독 위 햇살처럼 반짝이는
기다림, 두근두근 두근거려
나, 묵언黙言에 들고 싶네
말하지 않는다고
감춰지지 않는 환한 고백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듣고 싶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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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는 기다림 / 銀波 조유정
그리움이
사랑이라면
섬세한 손끝으로
오색실 꿰어
사랑 수를 놓으리
한땀 한땀 정성은
그대를 향한 갈망이요
채워지는 매듭마다
기다림의 행복이어라
해 지는 날 헤며
별꽃 가루 영롱할 때
그대가 너무 보고 싶어
애달픈 사랑 전해 보지만
기약 없는 해후
사랑 수 노을 지고.
해 뜨는 다음 날
그대 향기만 포옹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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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라 꽃 / 소파 박선미
가느란 긴 목줄기 섹시한 나비여인
우아한 네이파리 화려한 여린몸매
라르고 음악 타고 환상의 춤의요정
꽃 나비 고운날개 수줍은 붉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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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 차 윤 환
늑장만 부리던 빛의 입자가
깨금발로 당도한 장지문에
부신 빗금 하나 긋고 지나가면
시렁에 잠들었던 메주가 기지개 켠다
순전히 이건 누가
간섭할 일도 아닌 것이
고부간 대물림으로 이어온
비밀 같은 것
엄하시던 할머니, 오늘은
마음 비운 항아리에 금줄 하나 두른다
속내 들킨 메주가 드러눕자
정갈한 물에 저미는 흰 꽃소금
어머니 여린 손이 가늘게 떨린다
쪽박 빛 바래도록 밤낮을 손꼽아
서로 살 비비며 녹아내린 메주의 찰진 몸살
텃밭 푸성귀 한 뼘 더 자라고
싱겁던 내 입맛도 차츰 간이 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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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하는 마음 들킬까 봐
좋아하는 커피를 반으로 줄였습니다
반 잔만 마시는 동안에도 뜨거워
고백하고 싶어 조바심인데
한 잔을 마셨던 그동안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르실 겁니다
용기 내어 고백하지 그랬냐며
쉽게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고
이렇게라도 곁에 있을 수 있는데
부담스럽다며 등 돌린다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겁쟁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대 곁에 남아있고 싶은 미련
바보라며 손가락질 마세요
곁에만 있어도 숨이 막히는데
가끔 웃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내 편이 되어주는 그리움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떠날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짝사랑 / 우미 김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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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시인의 아내 / 채정화
투박한 질감의 무명앞치마
산골 시인의 아내가 풀꽃얼음 동동 띄워
특별한 오미자 차를 내온다
나락나물, 토끼풀 샐러드
민들레 겉절이, 토끼풀꽃 튀김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밥상
마당에 가득한 잡초가 식재료라니,
은은한 빛깔이 탐나 도자기 접시 하나 산 것이
과소비라고 나무라는 남편,
산골 아내가 뿔났다
기껏 화를 삭이는 비결이
오래된 풍금 건반을 두드리며 감미로운 허밍이라니,
자신의 신에게 일러바치는 중이라는데
세상에, 저렇게 고운 고자질도 있나
자연과 한참을 교감하던 산골 시인
가난한 아내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풀꽃 한 다발
남편을 위한 개똥쑥 茶 한 잔에 무장해제다
물오른 산수유 나무
햇살이 쓰다듬는 곳마다
아른아른 노오란 구름송이
발꿈치 들고 뒷걸음치듯
제 그림자 지우며 사라지고
산골 밤은 별들의 문안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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