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5. 사진 일기(아내의 생일 축하 경기 방송 청취하다. 67주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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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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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5. 김용복 이준찬/장대원 박승혜 테니스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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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족하진 않지만 기다리던 비가 어제 밤 늗록 내렸다.
야속할 정도로 기다리던 비가 조금 내려 안타깝고 야속했다.
그래서 아침테니스는 코트가 젖어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내 생일로 아침 8시 경기방송에서 아내의 편지가 채택되어 방송을 하는 날이다.
오늘 아침은 아내 생일로 미역국을 끓이고 아내가 좋아하는 조기찜 가지 시금치 무침 그리고 오이지 김치로 상을 차렸다.
어제 저녁 늦게 오랜만에 대학기숙사에서 지내던 손자가 왔다.
비린 것을 싫어하는 식성 때문에 손자에게는 미역국과 게란 후라이 반찬을 차렸다.
얼마있으면 ROTC 장교를 임관해 군생활을 해야하는데 식성이 까다라워 잘 적응할 것인지 걱정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 반송을 청취하기 위해 아내와 나는 라디오 청취를 했다.
경기방송 아침의 멜로디 담당 아나운서가 정시 첫 방송하며 아내 조명자 편지 내용을 소개 할 때 아내와 나는 흥분되었다.
아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역시 흥분이 되었고 감격했다.
편지내용을 차분하게 소개하고 신청곡 노사연의 만남도 들려주고 나의 시 까지 차분하게 소개했다.
상해에 살고 있는 큰 딸이 들을 수 있도록 녹음도 했다.
드디어 오늘 아내가 경기방송에 보낸 편지가 채택되어 방송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내 생일은 생애 최고의 날로 행복해 했습니다. 저역시 설렘으로 흥분한 날이었군요. 비가 많이 왔으면 했는데 너무 적게와서 걱정입니다. 혹 여가시간에 심심하시면 함께 듣으시라 녹음 파일을 올려 봅니다.
음성 녹음 004.m4a 15.35MB
오늘 12시 아내 생일에 평촌에 사는 둘째 딸 내외와 광교 신도시에 사는 막내 딸 식들이 광교 에부뉴 프랑 식당에 모여 점심 먹기로 했다.
마침 집에 다니러 온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는 큰 손자가 와 함께 광교 식당에 점심 식사하러 갔다.
점심 식사후 오후 2시 좀 지나 집으로 왔다.
아내가 좀 피곤했지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아침 8시경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생일 맞은 아내
점심 식사하러 가기전 사진에 담았다.
우리집 거실에 앉은 아내가 밝게 웃고 있다.
손자와 사위
아내와 딸들
사위 손자들
에부뉴프랑 야외 광장
서구 풍경을 보는 듯 자유롭다.
주말 아니들과 가족들이 함께 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막내 딸 집에서 케일 자르고
생일 축하 노래
아내에겐 오늘이 생애 최고의 날이다.
딸 사위 손자들과 가족 사진
◆2017/06/25(일) -미국 정치의 딜레마- (3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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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었던 미국 대선에 트럼프라는 부동산업자가 후보로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 함께 뛰던 경선자들은 물론 그를 후보로 지명을 해줘야 할 공화당의 당직자들은 모두 “트럼프는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막말과 험담으로 일관된 그의 선거 연설이 상식 있는 유권자들의 빈축을 산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 정치의 대대적 전환을 갈망하던 ‘희망을 잃었던 미국의 저소득층’은 엄청난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였고 그의 승리가 뜻밖에도 현실이 되어 그는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취임하고 ‘First Hundred Days’ 뿐 아니라 그 뒤에도 줄곧 백악관에 앉아서 누구도 상상 못했던 방자한 처신을 하였습니다. 절차를 무시하고 자격을 따지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사람을 쓰는 가운데 딸 비앙카의 남편 쿠쉬너에게 외교상의 중책을 맡겼습니다.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막상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대통령답게 언행에 조심할 것으로 기대했던 많은 유권자들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FBI의 코미 국장을 비롯해 억울하게 해고당한 사람들도 많고 특히 최근에 불거진 사건 -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 직접 개입한 사실로 트럼프는 푸틴이 당선시킨 미국 대통령이라는 소문도 파다합니다. 클린턴의 낙선을 적극 도모하고 트럼프의 당선을 적극 후원한 것이 러시아의 푸틴이라면 미국의 민주주의에도 망조가 들었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탄피를 줍던 소년
무봉 김도성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 스탈린의 사주와 중국 모택동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괴뢰집단이 이끄는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 국군은 부산지역만 사수하고 남한 전 지역을 괴뢰군에게 점령당했다. 그러나 미군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었다.
9월 30일 새벽에 소년이 살던 충청도 서산 **면 고향에 국군이 내려왔다. 남쪽과 북쪽이 높은 언덕길이고 길 아래 면사무소 소재지 마을이 있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도 소년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본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안개 자욱한 미명의 새벽 남쪽 언덕에 있는 국군 탱크가 내려오지 못하고 공포만 쏘아대고 있었다. 소년의 집은 면사무소 옆 국도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총소리에 나가 보았다.
그런데 육 척 장신의 건장한 연암 산 천장 암(고향 뒷산) 주지 스님이 오른손에 사제 권총을 들었다. 승복을 날리며 면사무소에 걸려있는 면당위원회 간판과 바로 옆 주재소 간판을 왼 주먹으로 일격 하였다. 떨어진 간판을 우물에 처박아 넣는 광경을 보고 어린 소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후 주지스님은 주재소(지금의 파출소) 사이렌 대에 올라가 국기 대에 걸린 인공기(북한 국기)를 내려 발기발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태극기를 꺼내 게양대에 달고 게양하기 시작했다. 이때 대기하고 있던 국군이 탱크를 몰고 면 소재지로 서서히 내려왔다. 그 인공기 때문에 적군이 있는 것으로 알고 국군의 탱크가 공포를 쏘았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국군을 붙들고 울면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하루만 먼저 왔어도 우리 아들이, 우리 남편이 죽지 않았을 터인데 하며 통곡을 했었다. 바로 전날 저녁에 소방대 창고와 양조장에 구금한 아군을 불을 질러 처형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상과 이념을 넘어 조상 대대로 품어 온 지주와 소작 인간의 원한으로 같은 마을 사람끼리 죽였던 것이다. 오래전 부모의 조상들 원한이 죄 없는 자식들에게 생사의 재앙으로 닥쳤다. 그 후 소년은 교직에 근무하며 학교에서 행사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 주지스님이 게양하던 태극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웃어른들 말씀에 난리가 나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복 후에 군에 갔던 아들들이 고향에 찾아와 자기 가족에게 행한 앙갚음으로 같은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남로당 당원이 설쳤던 ***씨 마을은 어린이와 아녀자만 남고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다.
과부가 된 어미는 어린아이를 키우며 너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건너 마을 아무개이니 너는 잊지 말라는 유언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세상이 전쟁으로 혼란이 오면 또다시 비극은 시작될 것이다. 소년이 살던 마을은 북한군이 점령한 기간에 학살당한 사람보다 9.28 수복 후에 같은 마을에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수복 후 군에 간 아들이 잠시 휴가로 고향에 와 보니 아버지가 처형당했고 가족과 형제들이 봉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시로 완전 무장한 군인은 구속된 아버지 원수 소위 빨갱이를 뒷산으로 끌고 가 재판도 없이 죽였다. 80 노모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산길을 따라갔다. 따라오지 말라고 카빈총으로 공포를 쏘며 위협했다. 소년의 기억으로는 군인이 할머니를 향해 조준 사격을 했다. 할머니는 비명도 없이 도랑으로 굴렀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목격을 했다. 눈을 뜨고 보지 못할 비극이었다. 아들도 뒷산 단오에 그네를 타는 큰 참나무 옆 방공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양조장의 술을 담그는 지하 창고가 유치장이었다. 애국청년단이라고 완장을 찬 청년들이 고문하는 장면을 담장 사이로 보았다. 팔목을 뒤로해 철사로 묶은 좌익을 시멘트 하수구에 가로 누였다. 입과 코에 물수건을 덮었다. 여러 개의 맷돌을 옆에 쌓아 놓았다. 배위에 맷돌을 하나 올려놓고 수건에 물을 부으며 물었다. 그래도 묻는 말에 대답이 없자 맷돌을 두 개 세 개 올리며 물을 부어 고문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여 질식해 죽으면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갔다. 어린 소년은 무섭기는 했으나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대하여 알 수가 없었다. 남로당 당원으로 밝혀지고 이적행위가 인정되면 총살형을 집행했다. 사형 집행에는 밤과 낮이 따로 없었다. 차고 넘치는 유치장 때문에 처형은 바로바로 이루어 졌다.
소년은 또래 친구들과 탄피를 모으는 일로 재미가 있었다. 사형은 뒷산 단오에 그네를 타던 큰 참나무 옆 방공호에서 이루어졌다. 소년은 친구들과 멀리 솔밭에 숨어 처형 장면을 구경했다.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다시 확인 사살하는 총소리가 울렸다. 바람을 타고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시 후 소년은 친구들과 사형장에 달려갔다. 아이들은 자주 보는 시체에 대한 무서움도 없었다. 머리, 가슴 팔다리에 총을 맞아 유혈이 낭자했다. 아이들은 탄피 하나 더 주우려고 구석구석 살폈다. 심지어 시체 사이에 피 묻은 탄피를 주울 때도 있었다. 카빈총탄피는 햇빛을 받아 유난히도 반짝이었다. 눈앞에 죽은 시체가 즐비한데 어린 소년은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전쟁은 어린아이들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총을 쏘는 전쟁놀이가 유일한 놀이였다. 탄피를 주워 아이스케이크를 바꾸어 먹었다. 나무를 총 모양으로 깎아 총을 만들어 토끼와 꿩 참새를 잡았다. 탄피의 뇌관을 뽑고 납 구슬과 화약을 섞어 탄피에 넣고 양초를 녹여 입구를 막는다. 탄피의 뇌관 부분에 성냥골을 넣어 양초로 봉하면 하나의 탄알이 된다. 우산대 파이프를 적당히 잘라 총신을 만든다. 총신에 탄환을 장전하고 뇌관에 충격으로 불이 붙도록 못을 잘라 뇌관에 못 끝을 맞추어 놓는다. 고무줄에 매인 노리쇠를 당겨 방아쇠에 걸쳐 놓는다. 목표물을 조준해 발사하면 엽총처럼 산탄으로 참새는 백발백중한다.
그때의 쾌감은 몸이 짜릿하다. 포수들은 이러한 쾌감 때문에 사냥을 즐길 것이다. 전쟁 3년 동안 소년의 머리에는 붉은 핏속의 시체들로 인해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금년 67주년 6.25를 맞이하여 일제 36년 강점기와 6.25 전쟁 1129일 동안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많은 호국영령들이 목숨을 바쳤다. 목숨을 건 만세 삼창에는 손에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를 들었고 적진을 점령하는 전쟁터에서 피아를 알리는 태극기는 목숨처럼 지켰다. 그런데 요즘 공식 비공식 행사에서 국기 경례나 애국가를 생략하는 사례는 국가관 확립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자유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우리는 이 자유와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국가안보에 재무장해야 한다.
2017.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