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가을에 쓰는 편지

무봉 김도성 2016. 10. 9. 05:44




가을에 쓰는 편지


                무봉 김용복


하루해가 가을의 담장을 넘어

304호 병실 창틀에 짧은 꼬리를 감춘다

한 때는 고혹(蠱惑)으로 빛났을 노란

은행잎들의 눈 흘김 같은

노른자를 에워싼 흰자 같은 병실 침상에

박제당한 시간이

깔깔 박수를 치며 나의 가슴에

아픈 방명록을 쓴다


단풍잎처럼 수척한 아내의 얼굴에

연분홍 미소가 흐르면

내 가슴 한편에 아픔의 강물이

무겁게 여울져 흐른다


병원 침상의 식판에 마주 앉아

석탑처럼 기울어진 아내에게

밥반찬 넣어 주면

잘근 씹히는 햇살

희망을 따라온 소박한 가을 하늘이

병상 옆 빈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다


고왔던 팔뚝에 그려진 주사멍울들

아직 피지 못한 굳은 고사리 손

흔들며 따라온 아내

승강기 문 사이로 얼굴 사라지면

링거병 물구나무 선채로

뚝뚝 떨어지는 액체 같은 눈물로

소망의 햇살을 실어 나르는 가을 편지를 쓴다.


*노-트/ 중풍으로 입원 중인 아내를 간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