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6. 8. 25. 사진 일기(이발하는 날, 이준찬 내외 한동수 교장 점심식사 대접)

무봉 김도성 2016. 8. 2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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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을 먹고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날씨가 더웠다.

한 세트 경기후 집으로 왔다.

이준찬회원 내외와 한동수 회원에게 점심식사를 약속했다.


상해에서 온 큰 손자 아침을 먹도록 챙겨 주었다.

그리고 밥때 되면 꼭 식사하라며 용돈으로 10만원 봉투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집에서 쉬었다가 12시 약속 식당에 갔다.

이준찬 회원 모친이 병원에 문병을 가지도 못했고 고생하기에 식사를 대접했다.

오후 1시경 아내 목욕해 주러 병원에 갔다.

병원 가는 길에 과일도 챙겨 갔다.

아내 목욕 시켜 드리고 병원을 나와 가사도우미 아주머니 문병을 갔다 왔다.

한국병원 앞에서 수원문협 김수기 교감을 만났다.

아마 수원 미술전시관 가는 길이라 했다.

저녁에 문협 식구들 모인다고 나오라 했다.

가능한 술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장염으로 입원 했다고 한다.

위로금 봉투에 넣어 전했다.

많이 좋아 진것 같았다.

이발소에 들러 이발을 했다.


저녁에 아내 같은 교회 집사 남편이 붕어 낚시했다며 붕어를 주었다.


아침 6시경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테니스를 즐기는 회원들



화홍테니스 회원들



수원화성 동북포루



이준찬원장 내외 한동수 교장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다.



회냉면이 먹음직스럽다.



집앞에 이수냉면 식당



만두도 먹고 포장도 했다.





2016/08/25(목) -하나님과 나 사이- (3039)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더라면”으로 시작되는 유행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노래는 사랑하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서러움을 읊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바다’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평양에 있는 장대현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교회는 매우 오래 전에 세워진 교회라 그 건축 자체가 ‘기역 자(ㄱ)’인데 서쪽으로는 남자들이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자리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여자들이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자리가 있었습니다. ‘기역 자’가 만나는 곳에 목사님의 강도상이 있었고 풍금과 성가대가 자리 잡고 있어서 오늘 생각해도 매우 합리적이었습니다.

한 때 김관식 목사님이 시무하시다가 해방 전후에는 김화식 목사님이 시무하셨는데 ‘가고파’를 지은 유명한 작곡가 김동진 씨의 아버님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해방이 되고 김일성이 들어와 횡포를 일삼는 것을 보시고 설교 중에 “공산당은 반드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체포·구금되어 6‧25 사변 통에 감옥에서 순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어려서 어머님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물론 교회의 남쪽 문으로 들어가 아주머니, 할머니들 틈에 끼어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거니 생각하니 인생이 한 마당 봄날의 꿈이 아닌가 스스로를 향해 묻게 됩니다. 나는 그 교회에서 세운 유치원에서 1년 배우고 이듬해인 1935년 상수심상소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습니다.

일제하에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난하였고 특히 일본이 1937년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시작하고 1941년에는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폭격하여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한 뒤에는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우리들의 기본권이 없는 것 뿐 아니라 먹을 것도 없어서 배고픈 세월에 시달리면서 우리도 나름대로 전쟁을 겪었습니다.

돌연히, 도둑처럼, 찾아온 민족의 해방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런 날이 올 수 있다니!” - 혼란했지만 매우 감격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알게 되었습니다. 평양에 소련군이 들어오고 김일성이 집권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하나님,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라고 하며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8선을 넘어 월남할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간절했고, 6‧25 사변을 겪으면서 나는 주님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경찰경비정을 얻어 타고 부산 영도를 떠나 9‧28로 수복된 서울을 찾아 인천항으로 가던 그 밤 풍랑을 만나 다 죽게 되었던 그 경험, 폭우 속에 “저를 살려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그 마음! 그리고 이제 할 수 없이 늙어버린 오늘, 나에게는 오직 하나님과 대한민국이 있을 뿐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거리가 이젠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하는 질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하다"는 대답은 인생의 질곡이나

어두운 터널을 경험한 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길 때 가능하다.

- 배철현의《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중에서 -









    꽃피는 산골


                 무봉 김 용 복


무더위로 삶아진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을 때

구름 밑으로 따라 온 바람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미리 칼을 뒤적였다


오늘 생각지도 않은

전직 동료들을 만났는데

난 죄인처럼 낯을 들 수가

없어 한 분 한 분 손을 잡으며

벙어리처럼 더듬었다


왜일까 사는 게 다 그런 걸까

어찌 사는지 안부가 궁금했지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한 것이

죄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나 보다


노년을 살고 있는 이제

새로운 인연은 원치 않으나

내 발 끝에 차인 돌에

생채기나 없었는지

조용히 용서를 빌고 싶다


또 한 조각의 바람이

네 생각이 옳다는 듯

솔방을 하나 툭

내 어깨 위에 놓는다.



   2016. 8. 24.

꽃피는 산골 식당에서

삼일상고 퇴임 동료들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