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작시 원고

바람과 나무가 흥정하다

무봉 김도성 2016. 5. 20. 23:29

바람과 나무가 흥정하다

 

무봉

 

폭염주의보 내린 날 오후

바람의 혀끝이 살갗에 누운 솜털을

핥고 지나 조금은 시원하다

 

호숫가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앉아

두 해가 넘도록 병상에 잡혀있는

아내에 대한 아픈 생각을 호수에 씻는다

 

어느 날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송진이 피딱지처럼 앉은 가지 하나

툭하고 내주었다

 

푸르고 싱싱했던 젊은 날

뿌리째 흔드는 바람에게

끓어 안은 열매 지키려 잎사귀 떼어 주고

 

그날 가지에 입은 상처에

송진을 발라 고통을 이기며

늙은 나무로 살고 있는데

 

삶이란 그런 것인가

바람 같은 모진 세월에 젊음을 주고 보니

바람과 나무가 흥정하는 것 같다.

 

2016.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