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진 일기

2016. 5. 17. 사진 일기

무봉 김도성 2016. 5. 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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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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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어제 사다 놓은 닭볶음탕으로 100그램 정도 밥을 먹었다.

그런대로 닭고기가 먹을만했다.

아침 7시경 테니스 코트에 도착해 연속 두 경기후 집으로 왔다.

오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래전 수학여행 사건을 글로 정리했다.

 

점심은 간단히 어제 저녁에 삶아 놓은 호박으로 해결했다.

4시경 아내에게 가져갈 묵은김치 갓김치 도마토 수박을 포장했다.

병원에 들려 아내 머리를 감겨 주고 내일은 병원에 못 온다고 전하고 집으로 왔다.

아내가 고맙다며 승강기 앞까지 따라와 악수하자며 배웅했다.

 

 

 

 

 

 

 

         야! 꼼짝 마.



                            무봉



 2014. 4. 16.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침몰해 사망 295명 실종9명으로 304명의 사상자를 냈다.
대부분 안산 단원고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참변을 당했다.
사고를 당한 유가족은 물론 이 소식을 접한 모든 국민들이 슬픔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평생을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을 한 나에게는 더더욱 안타까움을 금 할 수가 없었다.
3,40대전만해도 교직에 대한 갈등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호구지책에 전전긍긍했었다.
40을 넘겨 내게는 교직이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잡념을 버리고 소신 것 교육에 전념했다.


 아카시아 꽃비가 내리고 찔레꽃 향기 퍼지는 햇살 좋은 오월 하늘을 바라보며 과거 아찔했던 대형 사고를 모면했던 위기가 생각이 났다.
내 평생에 보람 있고 잘했다고 자찬하고 싶은 사건이었다.
1972년 30대 젊은 교사시절 서울 모 여중 2학년 학생들을 350여명을 인솔해 속리산에 2박 3일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나는 2학년 1반 담임과 학년주임을 맡고 있어 수학여행 단 일솔 총괄책임에 교감이 단장으로 함께 했다. 


 10월1일 차량 8대에 1호차부터 7호차까지는 일곱 반 학생을 배정하고 8호차에는 각반에서 남는 학생 5-6명을 차출해 혼합 반을 구성해 태웠다.
8호차에는 각반에서 속을 태우거나 놀기를 좋아하는 주위가 산만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각반 책임 인솔교사는 담임이 배정 되었으나 1호차에 교감이, 정작 담임인 나는 학년주임으로 8호차 인솔 교사로 배정 되었다.
그런데 관광버스 8대중에 노후 된 한 대가 8호차로 운전기사도 70대 노인이었다.
당시는 관광회사나 차량대수가 적어 여러 대 전세를 내면 한 두 대가 노후로 속을 태웠다.
서울 시흥동 모 여중 재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환송을 받으며 2박3일 일정으로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를 벗어나 국도를 주로 달리던 차량들이 1호에서 8호까지 일렬로 달리기에 사고위험도 따랐다.
항상 노후 된 차량에다 운전기사도 노인으로 8호차가 미처 후미를 따르지 못했다.
당시 속리산 법주사를 가려면 430미터 높이 12구비 고갯길 말티재를 넘어야 했다.
위 사진에서 보듯 뱀처럼 구부러진 당시 비포장도로를 빗겨 오르고 돌며 차량도 시커먼 매연을 품으며 힘들게 오를 때 차내 학생들은 긴장된 가슴으로 초조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여생 평균 15세 로 내가 담임 했던 학생 중에 중견 탤런트 송*숙으로
지금 59세 나이가 되는 학생들로 손자를 둔 할머니들이 되었을 것이다.
고개를 힘들게 넘어 법주사 경내 평지 길에 들어서니 참새들처럼 요란하게 떠들어 댔다.

 

 첫날은 법주사 경내를 관광하고 2박을 할 숙소에 도착해 방 배정을 했다.
총괄 책임자인 나는 물론 교감과 인솔 교사들을 시간대로 불침번을 정하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식사와 잠을 자도록 순시 활동을 했다.


 둘째 날은 산행하는 날로 문장대를 거처 비로봉으로 돌아오는 하루 종일 산행을 했다.
활엽수는 낙엽지고 키를 넘는 억새풀 춤추는 우거진 숲길을 걷고 기암절벽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야호로 함성도 지르고 가다가 힘이 들면 잠시 쉬어 이마에 송그리는 담을 닦았다.

 

 셋째 날 오전에 법주사 경내를 관광 후 학급별 단체 사진도 촬영했다.
이제 2박 일정을 마치고 학교로 가기위해 출발 때처럼 인원을 파악해 승차를 했다.
법주사를 출발해 30분가량 갔을 때 첫날 올라 왔던 말티재를 넘어야 했다.
1호차부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 하산 12구비 길을 내려갔다.
8호차 운전수 옆 앞좌석에서 내려다보니 7대 차량이 뱀 같은 길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다.
여기서 잘못되어 위에 있는 차량하나만 구르면 도미노현상으로 아래 차량들을 치고 넘어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 때 내가 타고 고개 정상에 있던 8호차 운전사사가 어-하면선 미처 핸들을 꺾지 못해 운전석 앞바퀴는 가드레일에 걸리고 우측 바퀴는 허공에서 공회전을 하며 차가 섰다.
숨을 죽이고 앉아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앞 출입구 쪽으로 몰려나오려는 순간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야! 꼼짝 마. 하고 소리쳤다.  
차내는 어둠처럼 고요가 잠시 흘렀고 기사는 핸들을 잡고 부레이크를 밟고 진땀을 흘렸다.
나는 앞좌석 학생 하나하나 일어서 뒤쪽으로 옮겨 가도록해 무게 중심을 뒤로 옮겼다.
그리고 내가 뒤로 가서 맨 뒤 우측 창유리 하나를 깨고 한명씩 내리게 했다.
차량을 후진하여 학생들 태워 무사했다.

 

 만약에 우리 차가 굴렀다면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겼을 것이고 나도 그때 마지막 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 어느 누구하나가 앞장서서 판단을 했더라면 한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 터인데 세월호 사건 후 며칠 잠을 설쳤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8호차 학생들이 있다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나는 수학여행 다녀와 10일후 구토증상과 온몸에 반점이 생기는 병으로 한강성심병원에서
15일 동안 생과 사를 잇는 투병을 했다.
병명은 유행성 출혈 열 들쥐 진드기가 옮기는 병으로 속리산 문장대 산행에서 발병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내가 틈만 있으면 내게 하는 말
당신 한강 서심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담당 의사가 혹시 죽을 수도 있다며 치료에 이의 없다는 사망각서도 쓰라했다.
돌 지난 막내딸과 다섯 살 큰 딸, 세 살 둘째 딸, 데리고 면회하기 위해 가면 경비원이 못 들어가게 해 승강기 앞에 세 딸을 두고 급히 내 얼굴만 보고 내려 와 보니 부모 없는 자식들처럼 엉엉 울었단다. 그 때 아내가 32살이었다.

 

 지금 같으면 공무로 학생 수학여행을 다녀와 병이 났으니 피해 보상을 받았겠으나 당시 사립학교에 근무했던 평교사 보상은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병원에서 재활 치료중인 아내의 짐을 내가져야 한다. 

                                        2016. 5. 17.    

 

 

 

 

 

아침 6시 경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아침 테니스를 즐기는 회원들

 

 

이제 아침 햇살이 덥게 느껴 졌다.

 

 

수원화성의 동북포루

 

 

삼일공고 건물뒤 담장안 교정 쉼터

 

 

1976년 내가 처음 익교에 부임해 식목한 메타세콰이어 나무

 

 

지나는 관광객 쉼터로 시 지원을 만들었다는데 학교 울타리 안에 있어 이용가치가 없다.

 

 

40년 수령의 나무로 숲이 울창하고 시원하다.

 

 

한가한 시간에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해도 좋겠다.

 

 

여럿이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어도 좋겠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 놓았으니 이용자가 많으면 좋겠다.

 

2016/05/17(화) -“내 주여 뜻대로”- (2939)

 

젊어서는 누구나 “하면 된다”라는 낙관적 철학을 가지고 살지만 차차 나이를 먹으면 “해도 안 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이가 90쯤 되고 보면, “해도 안 되는 일 뿐이다”라고 체념하고 살게 마련입니다. 안 될 것이 뻔 한 일을 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노인의 마음은 늘 편안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 수표교회에서 시무하시던 조경우 목사가 어느 교회에서 하신 설교의 줄거리가 생각납니다. 그는 신학교를 마치고 자기의 인생을 나름대로 설계해 두었습니다.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벽돌 양옥을 한 채 짓고 날씬하고 예쁜 부인을 맞이하여 아들은 셋, 딸은 둘을 낳고 아들 하나는 목사가 되게 하고 또 하나는 대학교수, 또 하나는 정치인을 만들어 보리라. 딸 하나는 실업가에게 시집보내고 딸 하나는 외교관의 아내가 되게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목사님 뜻대로 계획대로 된 것은 한 가지 뿐이랍니다. 아들 셋, 딸 둘은 소원했던 그대로 되었지만 그 아들‧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아들 하나가 배재학교에 다녔는데 하루는 담임선생이 목사님을 학교로 오시라고 해서 학교에 찾아갔더니 담임이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성X이가 사람도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데 눈이 사팔뜨기라 친구 놈들이 “사팔뜨기, 사팔뜨기하며 놀리니 아드님이 괴롭겠어요”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아니 사팔뜨기를 사팔뜨기라고 놀리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라고 한 마디하고 학교 교무실에서 나오긴 했지만, 그 아들놈이 친구들에게 그렇게 놀림 받는 사실이 하도 가슴이 아파 그날 밤 목사 사택 가까이 있는 언덕에 올라가 밤새 울며 기도하셨답니다.

“하나님, 제 눈과 그 아들놈의 눈을 바꿔 주세요!” 목사님의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도 눈물을 흘렸던 일이 이 새벽에 생각납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느끼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내 눈시울이 젖어 듭니다.

목사님은 일제하에 사상범으로 몰려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자주 드나드셨고 셋집 얻기도 어려웠으니 탱자나무로 울타리 두른 양옥집을 꿈이나 꿀 수 있었겠습니까? 인생이란 그런 겁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도는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 이 한 마디가 있을 뿐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자부심의 시작

 

남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이것이 자부심의

근원일 수는 없다. 답은 오직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자부심의 근원이 실제로

자신 안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찾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임무여야 한다.

 

- 리처드 테일러의《무엇이 탁월한 삶인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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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로 가는 길 1 손바닥만한 아이 옷들이 하룻볕에 다 자란 듯 담 너머로 펄럭거린다. 석양은 마당가를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서쪽 빨랫줄부터 매달려오는 붉은 사과들 초록 스웨터 여자가 아기를 업고 사과를 따고 있다. 사과를 딸 때마다 옆구리에 달린 조그만 두 발이 종처럼 흔들린다. 나무 그늘에 떠가는 동그란 빛들 그것은 온전한 한 컷 이미지 완벽하게 진공 포장된 순간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람의 날개를 달고 일생을 아로새기는 단 몇 컷의 찰나, 바짝 마른 옷가지는 잘 개켜져 서랍 속으로 돌아간다. 어둠 속 빨랫줄에는 허공만 나부끼고 2 어느 화가의 정물대에서 싹이 나기 시작한 양파는 어제보다 먼 길을 갔다. 양파는 그림을 버리고 내달리다 결국, 다시 양파가 되었다. 화가는 양파가 없는 양파 그림으로 불멸이 되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르네상스에 도달한 사람, 위대한 창조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삽으로 퍼다 버려도 이 땅의 양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손으로 문지르면 지워질 것만 같은 나의 붉은 얼룩들도 결코 돌아오는 길을 잊지 않는다. 양파는 그림보다 걸음이 빠르다. 3 허공에 발을 뻗쳐본다. 양파를 먹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물렁하게 썩는 냄새 너머 르네상스로 가는 길이 있다. 詩/유희선

          http://cafe.daum.net/sogood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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