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8. 사진 일기(어버이 날 큰 딸 상해에서 귀국해 오다. 아내 1박후 귀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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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http://tvpot.daum.net/v/v57e9xRbwbUYsww44RbUpRY
2014. 11. 3. 김용복, 김영민 / 한동수, 정대원 친선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4b25EKgYJ5gKKG0B7GgBYf
2014. 10. 4. 김용복, 김영민/ 장연식, 성영근 친선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c91b8X8PipP5oE7rPoE778
내가 지금까지 40여년 넘게 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테니스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여생이 얼마일지 모르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게 테니스는 유일한 유산 일것이다.
아내가 내게 말하기를 당신 아침 먹고 테니스하러 나가라 했다.
아내도 그나마 내가 건강하게 노년을 살고 있는 것이 유일한 테니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침에 계란 후라이 두개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아침 상을 차려 6시 30분 아내와 마주해 오랜만에 겸상을 하여 식사를 했다.
아내는 김치볶음과 미나리무침 파김치 게란 후라이로 아침 식사를 했다.
7시경 아내를 집에 두고 테니스 코트에 나갔다.
회원들이 테니스장 배수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코트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나는 특별히 도울 일이 없었다.
젊은 회원에게 부탁하여 지동시장에 가서 두부 한판 상자와 배추겉절이 김치를 사오라며 5만원을 주었다.
아침 공복에 맨홀 청소에 힘을 쓰다보니 출출한 판에 막걸리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두 경기 운동을 마치고 9시경 집으로 왔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에 낮잠으로 잠시 휴식을 했다.
아내가 병원에서 남들 먹는 라면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며 점심으로 라면을 먹겠다고 해 끓여 주었다.
라면이 맛이 있다며 아내는 라면으로 점심을 다이어트 중인 나는 고구마 두 개로 식사를 대신했다.
오후 4시경 송원 교회 전도사님과 신도 집사 한 분이 찾아 오셨다.
오늘이 어버이날로 송원교회에서는 롤케익하나씩 해마다 선물하기에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찾아 온것이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수박을 잘라 대접했다.
5시경 중국 상해에 살고 있는 큰 딸이 어버이날을 즈음하여 한국에 출장 오는 길에 집에 들렸다.
저녁식사후 큰 딸은 바로 서울 숙소인 호텔로 가야 한다고 했다.
송품가든에서 딸이 사주는 갈비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준비해온 선물을 받았다.
두째와 막내딸이는 용돈으로 봉투를 주고 갔다.
식사후 병원에 들려 큰 딸이 아내 침상과 사물함을 정리 정돈해 주었다.
그리고 가지고 간 롤케익을 병실 환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내는 큰 딸을 자랑하고 싶었다며 병실에 들려 가라고 했었다.
아내를 병원에 귀원 시키고 큰 딸은 병원앞 정류장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저녁 9시경 아파트 산책과 근육강화 운동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아침 6시경 아파트 후문 거리 풍경
장안구청 주차장
아파트 주차장
맨홀 흙제거 작업에 필요하게 삽날을 그라인더로 다듬는 이강면 회장
앞으로 다가 올 장마를 대비하여 맨홀 흙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테니스 코트 맨홀 정리 작업
큰 딸이 어버이 날이라고 상해에서 귀국하여 송풍가든 식당에서 갈비 저녁을 사고 선물도 놓고 갔다.
◆2016/05/08(일) -어버이날에- (2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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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동서를 막론하고 한결같습니다. 미국에도 어비이를 기리는 날들이 있고 행사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Mother's Day’ ‘Father's Day’가 제정된 것을 보면 ‘효(孝)’가 동양인만이 숭상하는 가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근년에는 우유가 보급되어 엄마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인간이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각자 자기의 엄마의 품에서 그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한 반세기 전의 일로 기억이 됩니다. 미국 Pennsylvania의 Reading이라는 곳에서 나의 친구 조정현이 마취의사로 일하던 Frackerlle까지 그 친구 차를 타고 고개를 하나 넘던 때 길가에 동상이 하나 있기에 차를 세우고 그 동상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동상은 그 지역의 Boy Scouts이 세운 <어머니상>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화가 Kestler가 그린 ‘어머니상’을 조각가가 다시 그 어머니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거기 세운 것입니다. 나는 50년 전에 거기서 읽은 한 줄의 글이, 그 동상 밑에 새겨진 한 줄의 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Mother is the holiest thing living. (어머님은 살아계신 가장 거룩한 존재) 서양 사람들도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어머님의 그 품에 우리들의 생명줄이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어머님이 천국에 계시지 않다면 나는 그 천국에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웃나라 일본 이와데현에 1885년 한 시인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는 병든 몸을 이끌고 가난한 삶을 살다가 1920년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죽 가난했으면 이렇게 읊었겠습니까? 일을 아무리 하고 또 해도 내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물그럼이 내 손을 바라봅니다. 이 시인의 이름은 이시가와 다꾸보꾸 (石川啄木). 그가 읊은 이 짧은 시를 되새기면 ‘어버이날’이 아니라도 저절로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장난삼아 엄마를 내 등에 업고 하도 가벼우심에 눈물 쏟아져 세 발짝도 다 가지 못했습니다. 진정,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답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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