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4. 사진 일기(수원문학 창립50주년 기념식/화성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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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바브리카 우승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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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3. 김용복, 김영민 / 한동수, 정대원 친선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4b25EKgYJ5gKKG0B7GgBYf
2014. 10. 4. 김용복, 김영민/ 장연식, 성영근 친선 테니스 경기 동영상
http://tvpot.daum.net/v/vc91b8X8PipP5oE7rPoE778
새벽 5시 일나 보니 아내가 거실에 불과 TV를 켜놓고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병원에서 보지 못하던 TV를 싫커 보겠다고 했다.
보지도 않는 TV를 켜 놓고 잠을 자는지 알수가 없었다.
오늘 7시병원에 귀원하기로 하고 나는 오후 2시 수원문학 50년사 발간 기념회에 참석해야 한다.
그래서 오후 2시경 막내 딸이 집에 와 아내 데리고 있다가 저녁식사후 병원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했다.
아침 식사를 아내와 함께 한 후에 아내에게 잠시 테니스 코트에 다녀 올테니 TV 보고 있으라 했다.
이제 앞으로 집에 와서 생활하기 위한 준비 과정일지도 모르단.
TV 건강프로 그램을 보면서 앞으로 퇴원해 집에 오면 건강식을 해 먹어야 겠다고 했다.
잠시 테니스 코트에서 한 경기 후 집으로 왔다.
오늘은 KT 클럽과 화홍클럽의 춘계 친선 경기가 있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집안 사정상 참석을 못하고 회비만 조금 전달하고 집으로 왔다.
잠시 휴식후 아내가 점심으로 오랜만에 라면이 먹고 싶다고해 끓여 주었다.
테니스 코트에서 싸준 인절미 몇개를 먹더니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오후 3시경 막내 딸이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저녁 외식을 한 후 병원에 귀원한다고 했기에
나는 기년행사징인 수원화성 박물곤에 도착했다.
수원문학 50주년 기념행사로 서울과 인근 각지에서 귀빈들이 많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기념식후 화성별관에서 저녁 식사후 집으로 왔다.
창룡문
자가용 안에서 촬영한 창룡문
푸른 잔디와 영산홍 배경이 아름답다.
아침 테니스를 즐기는 회원들
화홍테니스 회원들
수원화성 동북포루
행사 참석 귀빈과 함께
축하 떡 자르기
기념식 단체사진
◆2016/04/24(일) -여러 번 죽을 뻔한 사람- (2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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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의 동남부에 위치한 길리기아(Cilicia) 지방 다소에서 태어난 바울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가 살던 집도 아직 거기 있고 그 집 마당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지금도 동네 사람들이 그 물을 길어다 먹습니다. 그는 전통적 유태인으로 좋은 스승 밑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외모는 출중하지 못했으나 매우 유망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유태교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예수에 관하여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반대하였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이 예루살렘의 공회(산헤드린 - 70인회)에서 재판 받는 과정도 지켜보았다고 하고 사형이 언도되고 사형이 집행되는 과정도 목격하였고 그가 돌에 맞아 죽는 그 현장에도 바울은 있었을 것이고 그는 스데반의 죽음이 당연하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일을 사명으로 알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큰 빛을 보고 길거리에 쓰러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이 들리기에 “뉘시옵니까?”라고 물었더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답을 그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 대화를 알아들은 사람은 바울 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울은 아주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박해자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 사울은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마흔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니 합하면 백 아흔 다섯 번이나 매를 맞았고 태장으로도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돌에 맞은 것은 한 번 뿐이지만 뒤통수를 맞았으면 즉사했을 것입니다. 그가 탔던 배가 세 번이나 파선을 당했고 물에 빠져서 한 낮과 밤을 물속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전도하기 위하여 여러 번 여행을 다니는 가운데 강에 빠져서 죽을 뻔한 적도 있고 강도들이나 또는 그를 미워하는 유태인들이나 낯선 이방인들을 만나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습니다. 시냇물도 때로는 광야도 모두 위험했고 잘못된 형제들 때문에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고생과 수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겪은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잠을 자지 못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배고프고 목이 말라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춥고 헐벗은 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갔던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은 사도 바울의 사명은 오직 하나 뿐, 그에게는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그 한 가지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고 고상하게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원 67년경 ‘영원한 도시 로마’에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나의 스승 함석헌이 몇 사람 모인 자리에서, “나의 오늘이 있는 것이 사도 바울의 기도와 무관하지 않겠지”라고 하셨습니다. 나도 그 말씀 한 마디를 가끔 되새겨 봅니다. ‘여러 번 죽을 뻔한 그 사람’의 뜨거운 기도가 있어서 오늘의 내가 있다고 나도 믿게 되었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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