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로요"
단편소설 "아로요"
무봉 김용복
박 도출은 IMF 구조조정으로 50대에 잡지사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서 지낸지가 10년이 넘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연속 되었다. 지루한 내일이 두려웠다. 눌려진 용수철처럼 어딘지 퉁겨 버릴 것만 같았다.
오래전에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 분가시키고 아내와 대화 없는 날이 많아졌다.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보니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주 2,3일 골프 연습 후 동호인들과 점심 식사하고 집에 오는 것이 일과다. 요즘 말하는 삼식이로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사는 신세였다. 젊어서 현직에 있을 때 혼자만이라도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예년보다 4-5일 일찍 찾아 온 봄 날씨로 남쪽 진해에는 벚꽃 축제인 군항제가 한창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도출은 어딘가 발길 닫는 대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배낭에 몇 가지 옷을 챙겨 아내에게 며칠 바람 좀 쏘이고 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시무룩한 얼굴로 배웅하며 자주 전화 하라했다.
시외 버스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시원한 동해 바다에서 탁 트인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싶었다. 강릉으로 가는 막차가 오후 3시에 출발했다. 주중이라 승객이 10여명 밖에 없어 버스 뒤쪽에 넓게 앉았다. 간밤에 공연한 잡념으로 잠을 설쳤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산야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혼자라는 생각에 허전하고 쓸쓸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았지만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후 6시경에 강릉에 도착하고 보니 서편 하늘에 붉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까운 경포대 바닷가로 달렸다. 인적이 드믄 경포해수욕장 백사장에 주저앉아 파도가 토하는 포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랜 만에 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갯바람을 맞으며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살아 온 날을 돌아보니 가슴은 울렁이는 파도처럼 설레는 마음을 갈매기 날개 위에 놓았다.
파도 밀려오는 백사장 해변에서 발에 물이 젖지 않도록 폴짝이는 갈매기가 어인 일일까 궁금하여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니 무딘 부리 끝과 윤기 없는 깃털이 도출처럼 나이든 갈매기다.
갈매기 수명이 17년이라는데 도출의 나이로 셈해 보니 14세로 보여 그놈이나 이순이 넘은 도출이나 외롭기는 마찬가지라 생각 되었다.
그래서 내일도 희망도 꿈꾸지 못하고 당장의 문제에만 매달리며 근근이 살고 있다.
젊은 갈매기들은 기류타고 활공하며 먹잇감을 수직으로 자맥질하며 즐거워하는데 늙은 갈매기 파도가 두려운지 오래 동안 물속만 바라보며 폴짝 거리기만 하니 굶어 허기지겠다.
도출은 세파가 두려워 세상에 새롭게 도전을 피하는 자신을 보는듯하여 바다가 두려운 갈매기를 보며 머지않아 삶의 매듭이 풀어지겠다는 허무한 생각에 빠졌다.
이미 어둠이 찾아 들고 저녁 갯바람이 차가웠다. 깔고 앉은 백사장에서 차가운 습기가 올라 왔다. 부담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그리웠다. 어둠속으로 파고드는 고독한 그리움 20대 말없이 떠나버린 첫사랑도 그리웠다. 소문에는 머리 깎고 여승이 되었다는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멀리 춘희네 횟집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첫사랑이 여인의 이름이 춘선 이었다. 시골 같은 마을에서 사랑하게 된 첫사랑을 40여년 지나도록 잊지를 못한다.
20대 총각 시절 성탄전야가 생각났다. 수십 년 전 이야기이니 이제는 골동품 추억이다. 일 년 연상의 초등학교 세여인들 속에서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전기도 없는 산골 마을에서 등잔불 흔들리던 성탄전야에 함박눈이 내렸다. 밤을 새워 내리는 함박눈은 초가지붕이 묻힐 정도로 내렸다. 늦은 밤 무릎 밑에 빠지는 눈 속으로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찬송가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송을 열심히 불렀다. 토담집 골방 시루 속 콩나물이 음악 소리 따라 고개를 들고 자랐다. 화롯불에 묻어둔 고구마 익는 냄새가 온 방안을 채웠다. 천정에 매달린 곰팡이 실은 메주에서 시큼한 냄새가 코를 마비시켰다. 바람에 흔들리는 등잔불에 그림자도 춤을 추었다. 까맣게 타버린 고구마 베어 문 입 언저리에 숯검정이 묻었다. 군밤껍질 터지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가 방안에 진동 했다.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검정색 무명 이불 펴놓고 발을 모아 묻었다. 세여인 중에 서로 눈이 맞은 여인이 군밤을 까서 도출의 입에 넣어 주었다. 둘이서로 좋아 한다고 발가락 신호를 보냈다.
이불속에서 둘만이 아는 발가락 신호로 두 번 쿡쿡 찌르면 답장으로 세 번 쿡쿡 찌르며 눈웃음을 보였다.
그러 할 때 마다 도출의 가슴은 콩닥콩닥 찧어 대고 벌겋게 얼굴을 달궜다. 나머지 두 여인은 도출과 춘선이가 좋아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여인으로부터 난생 처음 받아 보는 애정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도출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그것이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모두들 잠이 들었지만 둘이는 이불속 발가락으로 밤을 새워 사랑 했다. 눈이 그친 새벽 도출과 함께 여명의 불빛 속에 연암 산 눈길을 구르며 넘었다.
자주색 투피스에 붉은 코트를 입은 어깨에는 검은 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코발트색 하늘에는 햇빛이 찬란하고 내려 보는 천수만과 설원이 아름다웠다. 아무도 가지 않은 무릎 덮이는 산길 눈 속을 때론 같이 넘어져 굴렀다. 두 남녀는 손을 꼭 잡고 눈에 묻힌 보이지 않는 삼 십리 산길을 넘었다. 처음으로 여인의 손을 잡고 눈 덮인 산야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수덕사를 거처 정오에 덕산 온천 여인숙에 여장을 푸니 잠이 쏟아 졌다. 도출은 파도가 춤추는 파도를 바라보며 생생한 첫사랑을 떠 올렸다. 지금도 도출의 가슴을 떠나지 않는 춘선이, 어쩌면 그녀의 가슴에는 이미 사라졌을지 모르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여러 횟집 중에 춘희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오랜 만에 소주를 마시고 싶었다. 40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일행이 없느냐고 반반한 얼굴에 끈적끈적한 음성으로 도출에게 물었다.
“네”하고 도출은 짧게 답했다.
시간을 보니 7시가 넘었다. 아마 도출이 첫 손님인가 보다. 식당 안방으로 안내 했다.
아주머니가 벽에 붙은 메뉴를 가리키며 무엇을 잡수실 것인지 물었다. 도출은 우선 소주 한 병과 안주로 생선회를 주문했다. 소주와 딸림 찬을 내려놓는 여인에게서 특유의 체취가 느껴졌다. 서울 말씨에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 적이다. 도출은 연거푸 소주 석 잔을 자작을 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아주머니가 자주 도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문한 생선회 접시를 내려놓았다. 벌써 도출 혼자 소주 반병을 마셨다. 한기를 느끼던 몸에 취기가 돌았다. 다른 손님도 없는 주막에 아주머니가 궁금한 눈으로 도출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 한 잔 하실래요.”하며 도출은 술잔을 내밀었다.
“손님! 저는 영업 중이라 못합니다.”
“제가 술을 따라 드리지요,”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어 술을 따랐다. 용모가 아름답고 단정했다. 9시가 넘었는데도 손님이 없었다. 도출은 지금부터 술맛이 당겼다. 시계를 바라보던 여인이 이제는 손님이 없을 것 같다며 간판 불을 껐다.
때는 이때라 싶어 여인 앞에 잔을 놓고 술을 부었다. 도출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거절 못하고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리고 여인이 도출에게 잔을 주며 술을 부었다. 가슴이 파인 옷 사이로 두 개의 백도 복숭아 가슴에 시선이 자주 갔다. 도출에게는 아직 여인을 품을 힘이 남아 있었다.
"손님! 아이" 교성으로 얼굴을 붉히며 잠시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도출은 가슴으로부터 아래로 약간의 힘이 조여 왔다.
"아주머니! 제가 여러 횟집 중에 이집을 찾았는지 아시오."
여인은 조용히 웃으면서 말이 없다.
"저 춘희라는 간판 때문이요."
"아! 그래요."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춘희가 어때서요."
도출은 술잔을 비웠다. 여인이 회 한 점을 집어 도출의 입에 넣어 주었다.
도출은 잔을 여인에게 주며 술을 따랐다. 여인은 무엇이 궁금한지 술잔을 들고 또 물었다.
"춘희라는 애인이 있었나요."
"아니, 아니오." 도출은 고개를 저었다. 여인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수심의 그림자가 지났다.
도출은 여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몇 잔 마신 술에 얼굴이 붉어 졌는지 수줍어 붉혔는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도출을 바라보았다.
도출은 여인에게 물었다.
"춘희가 누구에요."
"제 본명인데요."
"강춘희 랍니다."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본명을 말했다. 어쩌면 도출에게 이미 마음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신분을 드러내는 여인을 도출은 이미 독심술로 점령했다.
"아! 그래요 이제부터 춘희라 불러도 되겠소."
"네, 선생님!"
여인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는 억울함 때 문지는 모르지만 도출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존함도 알려 주세요."
"제 이름 값이 비싼데."
여인은 술병을 들고 남은 술을 보니 잔에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며 아예 두병을 더 들고 왔다.
"지금부터 술값은 제가 계산합니다."여인이 말했다.
소주 두병에 새로 한 병을 깠으니 세병 째다. 갯바람에 여인을 마주해 좋은 안주로 술을 마시니 기분 좋게 취했다.
"이제 선생님 함자를 알려 주셔야지요."
" 저 박 도출이요."
"도출? 박 도출!" 하며 깔깔 웃었다.
아버지가 왜 도출이라 이름을 지어 주셨는지 모르지만 친구들도 많이 놀렸다. 하지만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도출도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여인은 너무 크게 웃어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박 선생님이라 불러도 될까요." 도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춘희는 처음 보는 도출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평범하게 생긴 외모이지만 지적인 이미지와 낮고 굵은 음성에서 새로운 감성을 느꼈다.
"강춘희 씨"
"네" 여인은 놀란 듯이 대답하며 손으로 가슴을 쓸었다. 여인은 여고 때 담임선생님이 불러주고 시집 온 후로 이름 세자를 불러주는 것이 남자로는 처음이었다. 여자는 시집을 가면 이름 석 자 그대로 장사지냈다.
"봄 春 자에 계집 姬 자 지요."
"어머! 네, 맞아요."
"성은 진주 강이에요." 도출은 진주 여자임을 짐작했다.
"그럼 고향이 진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서울 말씨에 경상도 사투리 쓰고 있음을 알았다.
"봄 춘 자를 가진 여자 팔자가 사나운데."도출은 여인이 입을 열도록 유도했다.
술잔을 도출에게 내밀며 술을 따르라 했다. 단숨에 술을 마셨다. 그리고 작심이나 한 듯 말을 이었다.
"40 초반에 혼자되었어요." 다음 도출은 더 이상 말을 못하게 여인의 입을 막았다.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그동안 여자 문제로 가슴앓이를 평생하고 살았는데 또 부질없는 사랑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도출은 화제를 돌려 분위기를 바꾸었다.
"나의 첫사랑 이름이 누군지 아세요."
춘희는 첫사랑이라는 말에 새로운 감정에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첫사랑이요. 누군데요."
여인은 두 손을 모아 비비며 한모금의 술로 목을 적셨다.
"춘선이, 봄 春 자 착할 善."
"여러 술집 중에 춘희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었지." 도출은 말을 놓았다. 아마 첫사랑의 이름 봄 춘 자가 생각났기 때문 일지 모른다.
춘희는 도출의 첫사랑 이야기가 궁금해 옆에 붙어 앉으며 상 밑으로 두 다리를 나란히 뻗게 했다. 춘희는 도출의 왼손을 덥석 잡으며 여인의 둔부에 올려놓았다. 젊은 여인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말초 신경을 자극했다. 오히려 도출이 흥분을 억제 하느라 몸을 조금 움직였지만 여인이 몸을 밀착했다. 도출의 턱 아래에서 올려 보는 여인의 눈길이 이글거렸다.
"첫사랑 이야기 듣고 싶어요."
도출은 첫사랑 이야기로 아픈 가슴에 상처가 재발할 것 같아 이야기를 망설였다.
"그런데 첫사랑 춘선씨 성은 뭐에요."
도출은 성을 말하기도 전에 웃음이 나와 입을 손으로 가렸다.
"춘희가 한 번 맞추어 봐."
"음- 오춘선" 도출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면 이춘선" 또 고개를 저었다.
"앙! 빨리 말해줘." 춘희도 어린 계집애처럼 응석을 부렸다.
"춘선씨 성이 경이야."
"엇! 경! 경이 뭐야." 도출은 웃기만 했다.
"경춘선" 그제야 춘희는 깔깔대고 웃었다. 도출은 나이를 잊고 젊은 날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서울 춘천을 오가는 철도가 경춘선이라 설명했다.
여인에게 도출은 음흉한 눈을 깔고 말을 이었다.
"난 첫사랑 경춘선을 여러 번 올라탔지."
"그래 여행이 재미있었어요."
"그럼 신이 났었지."
"뭘 했는데 신이 났어요." 아직 여인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풋보리 일렁이는 보리밭에 누워 별을 헤아리며 경춘선을 올라탔지."
그제야 알았는지 여인은 도출에게 기대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여체에 얹어진 손의 감각이 흥분을 일으켜 야성으로 변했다. 아직은 만져지는 곳마다 탱탱하고 탄력 있는 몸으로 모든 것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취기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거칠게 했다. 경춘선을 타고 즐겼던 때를 생각하며 회포를 풀었다. 거친 파도소리가 간기 섞인 갯바람과 함께 실려 왔다. 지갑을 열어 잡히는 대로 지폐를 화장대에 놓고 바지 끝을 잡는 여인을 뿌리쳐 나왔다.
저녁 10시가 넘었다. 한 참을 바닷바람을 쏘이며 술도 깰 겸 백사장을 걸었다. 그리고 11시가 다되어 횟집 여인이 소개한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간단히 샤워하고 준비해 간 시집을 펼쳤다. 몇 편의 시를 읽다 보니 몇 해 전에 헤어졌던 여인이 생각났다.
도출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더듬는다. 친구 골프동호인 닥터 윤이 술 한잔하자고 제의했다. 아마 5월 둘째 주 토요일로 기억된다. 박도출은 집근처 평촌에 있는 횟집에서 닥터 윤을 만났다. 오후 6시이다.
그는 진흥청 버섯 박사로 당시 현직에 있었고 도출은 명퇴한 백수였다. 횟집에 들어섰다. 닥터 윤은 먼저 식당에 도착해 종업원 오양과 농을 걸고 있었다. 닥터 윤의 단골집이다.
오양은 작은 키에 성격이 활달하고 밝았다.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다. 도출은 총각 때 보았던 시골 처녀가 생각났다. 작은 얼굴에 어울리게 이목구비가 잘 생겼다. 작은 입과 코를 한번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까맣고 동그란 눈, 좁은 가슴의 유방은 보는 순간 도출의 성감대를 자극했다. 짐작으로 보아 오 양은 닥터 윤과 친한 것 같았다. 도출은 순간 쓸쓸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박 부장 파트너를 소개하라 했는데 어떻게 되었지.”하고 닥터 윤이 오양에게 물었다.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도출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윤이 농어를 주문했다. 술은 매취 순을 주문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도출은 궁금했다. 오양의 친구로 40대라 했다. 도출은 흥분되기 시작했다. 총각 때 맛선 보던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났다. 오양이 음식을 들고 들어오며 도출의 파트너를 소개했다.
첫눈에 도출은 그에게서 섬광과 같은 강열한 빛과 가슴에 설렘을 느꼈다. 그녀는 도출의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예쁘게 보아주세요.”
“어서 오세요.”하고 도출은 인사를 받았다.
도출이 보기에 키는 160센티 정도이고 청바지에 분홍색 티를 입었다. 40대가 아니라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몸매가 날씬하고 균형 잡인 S라인이 선명했다. 옆에 앉아 조용하게 말하는 음성이 감미로웠다.
오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조용한 여자다. 여자의 체취가 도출을 마취 시켰다. 그녀는 도출의 왼쪽에 앉았다.
그녀는 도출을 향해 고개를 돌려 웃으면서 목례를 했다. 도출은 전기에 감전 된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도출은 첫눈에 반했다.
둘은 첫잔을 들어 첫 만남을 축배 하였다. 그녀는 유난히도 입이 예뻤다. 작은 입으로 말하거나 웃을 때 드러나는 이가 유난히도 진주처럼 빛을 발했다. 드러나는 이 때문에 그의 얼굴이 더더욱 밝게 보였다.
부드러우면서 차분한 음성이 남자의 성감을 자극했다. 어쩌다 그녀의 손끝의 접촉으로 온몸에 가벼운 전기를 일으켰다. 그 전기가 가슴을 뛰게 하고 도출은 상기된 얼굴로 흥분되었다. 도출은 그녀와 눈을 맞추며 러브 샷으로 술을 마셨다. 엉킨 머리칼에서 그녀 특유의 향이 풍겼다. 도출은 매료되었다.
첫 날, 첫 만남에서 둘이는 너무나 많은 감정을 교감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친구사이처럼 서로 좋은 느낌으로 행복했다. 오래 사귀고 있는 윤과 오양은 어린 손녀를 귀여워하듯 볼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좋아했다.
도철은 옆에 앉은 그녀의 손을 상대가 모르게 술상아래에서 살며시 잡았다. 그녀는 눈웃음으로 도출을 바라보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싫지 않은 눈치다.
그녀의 손은 부드러운 실크처럼 매끄럽고 따뜻했다. 도출은 총각시절 첫사랑에게서 느껴 보았던 그 때 그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도출에게 맛있는 생선회를 상추에 쌓아 입에 넣어 주었다.
첫눈에 반해버린 도출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고 속으로 좋아했다.
대충 나이로 따져보아 10여년 연하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훈기에서 기(氣)를 받아 생기가 돋는다. 말씨나 행동 하나하나를 보니 양가집에서 교양을 고루 갖춘 여인이다.
물론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그러나 둘이는 그것을 알 필요도 없고 알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한쪽에는 궁금함이 앙금처럼 남았다.
윤은 나이가 많아 오양을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도출은 그녀를 보는 순간 온 몸에서 애정의 피돌기로 흥분 되었다. 오양은 순진한 시골 아가씨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대적 감각을 지닌 서구적인 느낌을 주었다. 보기 드문 미인이다. 오양 말에 의하면 미스 충북 출신이라고 했다.
두 유방을 받쳐주는 가슴과 모래시계를 연상하는 허리와 힙 업 된 엉덩이에서 여자 특유의 향을 풍겼다. 장성한 두 아들의 어미로써 여유 있는 유한마담으로 이성에 대한 감정이 풍부한 여자 같았다.
이제부터 진정 남자를 제대로 알고 느낄 줄 아는 나이이다. 화장을 하지 않은 생 얼굴로 피부가 탱탱하고 뽀얗다. 손톱도 물을 드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 다듬었다. 건강미가 넘쳤다. 웃음소리에서 남자를 유혹하고 흥분으로 자극했다.
둘이는 서로 첫 만남을 축하하며 낭만이 깃든 5월의 밤을 보냈다. 도출은 편한 자세를 갖도록 그녀의 다리를 술상 밑에 뻗도록 강제로 권했다. 도출도 나란히 다리를 뻗었다. 움직일 때 마다 두 다리가 접촉 되었다. 또 다른 감정으로 도출은 흥분 되었다.
도출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다시 확인하고 체험 했다. 도출 자신도 모르게 국부에 뜨거운 피가 모여 성기를 자극했다. 그녀 역시 자신의 흥분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남자 본능의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도출에게 생기의 엔도르핀이었다.
도출은 속으로 다짐했다.
“바로 이여자다. 이 여자가 나의 이상형이다.” 도출은 성적인 대상이 아니라 음식을 나누면서 대화를 즐기는 말 친구로 사귀고 싶었다.
남녀가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주된 대화는 음담패설이나 섹스이야기이다. 윤이나 도출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부부관계를 자주하느냐, 관계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도출은 아내와 10여 년 전부터 각방을 썼다. 아내나 도출이 필요할 때 합방을 해왔다.
도출은 아내와 살을 대면 꼭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남다른 정력의 사내였다.
그리고 잠들면 유난히 코를 골았다. 신경이 예민하고 몸이 약한 아내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각방을 쓰게 되었다.
지금도 아내는 도출의 성적 요구를 거부한다. 일주에 한 두 번은 모르나, 도출은 그 이상을 요구했다. 그래서 도출은 남자들이 혼자 성적 요구를 해결하는 수음을 자주했다. 그런대로 수음도 성적욕구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렇다고 창녀촌이나 안마소를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음을 자주 하게 되었다.
여자는 생리가 끝나면 남자를 멀리 하게 된다. 그래서 부부간의 성생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숨겨 놓은 애인을 새긴단다. 가정생활을 유지하면서 은밀히 애인과 교제하는 사람들이 늘어 간다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매취 순 몇 병을 마셨다. 벌써 시간이 밤10시가 넘었다. 2차 노래방은 도출이 쏘기로 했다.
오양은 오후4시 출근하여 저녁 10시 퇴근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다. 그들은 횟집 바로 옆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도 술이 취했는지 의도적으로 도출에게 의지하려 했다. 그럴 때마다 도출은 기분이 좋았다.
캔 맥주와 안주가 들어오고 노래가 시작 되었다. 성격 그대로 오양은 신나는 노래를 그녀는 조용한 트롯 풍의 이미자 노래를 주로 불렀다. 음색이 이미자와 똑같다. 녹음으로 들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말 그대로 엘레지의 여왕 같았다.
도출은 또 그녀에게 반했다. 브루스 곡이 흘렀다. 윤과 오양이 포옹을 했다. 그때 도출은 그녀에게 춤을 요구했다. 둘은 취기를 핑계 삼아 서로 끌어안아 춤을 추었다.
도출은 오랜만에 젊은 여인을 안아 보았다. 가슴과 가슴이 스치고 그로인한 흥분이 아래로 이동했다. 도출은 자신도 모르게 발기되어 상대에게 실례가 안 되도록 조심했다. 아마 그녀도 같은 감정에서 황홀감을 만끽 했을 것이다.
시간이 벌써 자정이 가까웠다. 도출과 그녀는 잊지 못할 황홀한 5월의 주말을 보냈다.
다음에는 도출이 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오양과 같은 아파트에 단지에 살고 있었다. 모두들 안녕하면서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서로의 첫인상을 마음 깊숙이 각인 하고 재회를 그리며 헤어졌다.
녹색이 찬연한 싱그러운 5월 어느 해 보다 도출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파트 정자 주변 화단에 영산홍 꽃이 화사하게 만발했다. 떨기나무 식물로 작은 키에 앙증맞은 작은 가지마다 빨강 분홍 연분홍 색깔이 어우러져 시선을 끌었다.
도출의 몸에도 회춘의 봄이 시작되고 즐거운 마음에 혼자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는 아마도 서로 좋은 감정을 가졌던 그녀의 재회를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출은 윤과 6월 첫 주말에 만날 것을 약속했다. 물론 장소는 평촌에 있는 횟집이다. 도출은 윤에게 부탁하여 오양을 통해 그녀도 나오도록 요청했다.
드디어 약속한 재회의 날이 왔다. 도출은 그녀를 만난다는 호기심에 가슴은 뛰었다. 젊은 총각 시절에 가져본 그 감정이 되살아났다.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다고 했는가.
도출은 당일 아침부터 나이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발도 하고 젊은 색의 옷을 골라 입었다. 거울 앞에서 콧노래를 불렀다. 그녀를 만나면 밝게 인사하는 요령을 연습했다. 도출은 혼자 미쳤다. 도철만이 아는 행동으로 그냥 즐거워 흥얼거렸다.
이상한 도출의 행동에 아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당신 뭐가 그리 좋아.” 하며 회심의 미소를 보였다.
“아니야 그냥 그럴 일이 있어요.” 도출은 얼버무려 대꾸했다.
“아 여보! 오늘 저녁 닥터 윤과 약속이 있어 먹고 들어옵니다.”
“네, 그래요.” 아내는 의심을 품은 어조로 대답했다.
도출은 오늘 재회가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는 날이라 생각했다. 도출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꽉 잡을 것을 결심했다.
도출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성간의 불륜적인 교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식사하고 차 마시고 음악 들으며 서로가 좋은 감정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다.
저녁 6시 약속된 식당으로 갔다. 오 양이 반갑게 맞았다. 도철은 오양과 악수를 했다. 언제 보아도 밝고 명랑했다. 도출은 오양에게 물었다.
“나의 파트너 오는 거지?”
“네, 약속이 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6시 5분 전이다. 정각에 윤이 왔다. 도출은 악수로 반갑게 맞았다. 도출과 윤은 거의 매일 골프연습장에서 만나는 동호인이다.
오늘은 도출이 매취순과 농어회를 주문했다. 그런데 도출의 파트너가 오지 않는다. 도출은 신경이 쓰였다. 눈치 빠른 윤이 오양에게 묻는다.
“우리 박 부장님 파트너 안 오셔.”
“올 거예요.”
“조금 기다리세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도출은 안심이 되었다. 음식과 술이 들어 왔다. 도출은 윤과 건배를 했다.
6시 15분 쯤 드디어 그녀가 나타났다. 반가웠다. 오지 않아 불안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그녀가 왔다.
지난번처럼 수수한 옷차림이다. 도출은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 졌다. 오양이 도출을 놀렸다.
“야! 네가 오지 않을까봐 우리 부장님 속이 까맣게 탔어.”
“그녀는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도출의 옆자리에 앉았다.
도출은 손을 그녀에게 내 밀었다. 둘이는 서로 반가운 악수를 교환했다. 실크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도출은 손을 놓을 줄을 몰랐다.
“선생님!”하면서 그녀는 주변을 살피며 손을 비틀어 뺐다. 도출은 너털웃음으로 용서를 빌었다. 도출은 그녀에게 그동안 잘 있었냐는 안부를 물었다.
“네 덕분에요.” 그녀는 짧게 답했다.
“부장님은요.”
“저 두요.” 도출도 짧게 답했다.
둘이는 마주보며 서로 웃었다. 윤이 파트너를 위한 건배를 제의했다. 지난 모임 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상기되었다. 그녀와 도출은 두 다리를 상 밑에 뻗었다. 술 몇 잔을 주고받았다. 그녀도 기분 좋게 마셨다.
도출은 윤과 오 양에게 ‘좋은 파트너를 소개해줘 감사한다.’는 술잔을 주었다. 눈치가 빠른 그녀는 윤에게 술을 따랐다. 도출은 오양에게 따랐다. 둘은 그렇게 술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축하의 박수를 쳤다.
그녀는 생선회를 상추에 싸서 도철의 입에 직접 넣어 주었다.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도출의 가슴에는 뜨거운 애정의 강이 흘렀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으로 흥분되었다. 그녀는 어느새 도출의 가슴 한 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도출이 알고 있는 선배가 말하기를 사랑이 꽃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1초도 안된다고 했다. 도출은 그 말을 동의하고 체험했다. 그러나 도출은 그녀의 깊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오늘도 10시가 넘도록 마셨다. 도출은 계산을 하고 오 양과 그녀에게 교통비 몇 푼을 주었다. 그녀는 사양하다가 도출의 강한 권유에 할 수없이 받았다. 도출은 순간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여자임을 확인했다.
역시 2차 노래방은 윤이 안내했다. 도출은 30분만 제의했다. 도출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유부녀에 40대 후반이라는 것 밖에 몰랐다.
음악이 흘렀다. 둘이는 쉽게 끌어안고 춤을 추웠다. 지난 번 보다 더 밀착되었다. 희미한 불빛을 피해 구석으로 도출은 그녀를 유도했다. 윤과 오도 그들 나름대로 사랑을 속삭였다. 도출은 감정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발기가 되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이다. 남자만이 갖는 자신감이다.
이때 도출은 저돌적으로 그녀의 얼굴 앞으로 혀를 내밀며 그녀의 입술을 범했다. 순간 피하려는 태도를 도출은 강한 팔로 끌어안아 서로의 입술을 더듬었다. 그녀는 순순히 도출의 요구에 따랐다.
둘은 말없이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다시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이 흘렀다. 약속 한 것처럼 둘이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도출에게 맡기듯 부드러웠다. 좀 전만해도 경계와 긴장으로 막대기처럼 굳어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은 마치 수년을 사귀어 온 연인처럼 둘이는 천년의 사랑을 꿈꾸었다.
벌써 11시가 넘었다. 도출은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윤과 오양이 오붓한 시간을 갖도록 자리를 피했다. 도출의 내심은 이를 핑계로 그녀와 산책을 유도했다. 둘은 귀가 방향도 같고 집까지의 거리도 멀지 않았다.
그래서 둘은 걷기로 했다. 둘은 다정히 손을 잡고 걸었다.
가로등 불빛으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자정의 골목길로 빠져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다.
도출은 술도 깨고 이야기도 할 겸 공원 산책을 권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늦은 밤이라 공원의 의자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쌍들이 눈에 띠었다. 그들은 의자에 앉았다. 멀리서 비치는 형광의 가로등 불빛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조명했다.
둘이는 마치 연극무대에 올린 한 쌍의 배우였다. 발 앞에는 맑은 호수가 있다. 백로 한 쌍이 어둠을 지켰다. 6월의 하늘은 수많은 별들을 보석으로 깔았다. 가끔 개구리가 짝을 찾아 울어 댔다. 멀리 아파트 창가의 불이 하나둘 꺼져 갔다. 오직 그들 둘만의 시간이다.
도출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도출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는 한 바구니의 별이 빛을 발했다.
도출은 20대 때 첫사랑의 여인이 떠올랐다. 큰 눈에 별을 가득 담아 놓고 헤어지자는 말에 별이 섞인 눈물을 쏟아 내던 그녀가 생각이 났다.
도출은 그녀에게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다. 대충은 오양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나이 47세, 이름은 서 정희, 대학생 두 아들을 둔 가정주부다. 남편은 전주에서 한과 공장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요일 다녀가는 주말 부부다. 둘이는 서로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가까웠다. 둘이는 자주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제 작별 할 시간이다. 도출은 무엇인가 둘 사이에 확신이 필요했다. 도출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이 따뜻해서 좋아요.”도출에게 말했다. 그녀가 얼굴에 도출의 두 손을 갖다 대었다. 도출은 두 손안에 그녀 얼굴을 감쌌다. 도출의 큰 손이 작은 얼굴을 덮었다. 그녀의 눈과 코와 입만 보였다.
도출은 팔을 굽혀 그녀의 얼굴 끌었다. 도출은 그녀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불었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도출은 그녀의 입술을 더듬었다. 흥분의 극치다. 그녀는 몸을 꼬며 신음을 했다.
도출은 거칠게 그녀의 입안을 혀로 더듬었다. 그녀는 도출의 두 손목을 잡고 도철의 입술을 핥았다. 둘이는 한동안 키스로 사랑을 확인했다. 그녀가 이제 집으로 가자고 제의 했다.
“서 정희 씨 당신을 사랑하오.” 도출은 애정 어린 어투로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걸었다. 머리위에 있던 북두칠성이 서북쪽으로 기울었다.
도출은 집 근처까지 그녀를 배웅했다. 집근처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둘이는 오지도 안는 막차를 기다리는 연인처럼 나란히 앉았다.
“우리 언제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시골 여행을 가자.”고 도출은 그녀에게 말했다.
“시골 여행을 가서 만약 막차가 오지 않으면 우린 어찌하지.”하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 엉큼한 사내야.” 하며 도철의 허벅지를 가볍게 때렸다. 이때 도출은 마지막으로 포옹을 했다. 둘이는 두 손을 잡고 작별의 악수를 했다. 그들은 작별이 아쉬워 두 손이 손끝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흘렀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다. 그녀는 총총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서로 먼저가라고 손사래를 저었다. 그녀가 먼저 등을 돌렸다. 도출도 돌아섰다.
두 발, 세 발 옮김과 동시에 서로 돌아보았다. 둘이는 웃으며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빨려 들듯 골목으로 사라졌다.
삶의 흐름 속에 스치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세레나데는 모차르트 작곡으로 밤에 여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연가이다.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나이에 관계없이 사랑에 설레는 이 마음 행복감에 젖는다. 만나지도, 생각지도 말아야지 하면서도 짧은 추억의 환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꺼지지 않는 모닥불처럼 가슴이 달아오르는 간밤의 짧은 만남이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다.
노을 지는 석양 공원 벤치에 앉아 낙조를 바라 볼 때면 등 뒤에서 조용하고 다정한 음성으로 다가와
“어머 부장님 안녕 하세요“ 하고 화사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약속도 없었는데 우거진 나무 숲 사이에서 얼굴을 내 밀것 같은 환상과 예감이 도출을 흥분 시켰다. 혹시나 전화가 올 것 같은 예감에 휴대폰을 여러 차례 열어 보았다.
이것이 사랑인가? 우린 친구로 사귀자고 정주지 말자고 굳게 약속 했건만 가슴 저 아래로부터 그리움이 사무처 왔다. 식사하고 차 마시고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했건만 순수한 사랑의 씨가 잉태 했나보다.
스치는 바람, 수많은 하늘의 별, 흐르는 물소리는 우리의 사랑을 노래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없는 도출은 혼자 좋아하고 그리워했다. 이미 도출의 마음 한 가운데 자리한 그녀,
지난날 추억속의 애틋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름다운 선율로 가슴을 울렸다. 그러할 때면 흥분 된 가슴을 손으로 쓸어 내며 서성인다. 비탈 진 산등성이에 노송이 외롭게 서있다.
도출은 집에서 가까운 뒷산 노송 아래 앉았다. 멀리 보이는 서녘 하늘이 구름 사이로 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그리워 참을 수 없는 도출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그녀도 근처를 산책 중이라 했다. 서로가 마음이 통했을까 잠시 후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포옹으로 끌어안아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녀와 도출은 말없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사랑의 시를 노래했다.
도출은 발끝에 돋아난 클로버 꽃을 따서 반지를 만들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끼워 주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다. 도출은 그녀가 좋아하는 딜라일라를 열창했다.
가끔 강 쪽에서 산등성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한 꽃향기를 실어다 주었다. 짝 찾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메아리 되어 건너 산을 부딪치며 돌아왔다. 강 하구 먼 바다에 낚시 배가 한가롭다. 석양의 붉은 해 앞으로 갈매기 울며 날았다.
둘이는 두 어깨를 대고 앉아 석양을 바라보았다. 약속이나 한 듯 도출은 여자의 왼손을 잡았다. 여인의 가슴이 가볍게 흥분 되며 떨렸다. 도출은 여인의 귀에 대고 사랑을 소곤거렸다.
"여보!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도철의 입김이 그녀의 얼굴을 달구었다. 석양의 햇빛 탓인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말에 감전 된 듯이 다리를 꼬았다. 도철은 여인의 어깨에 팔을 올려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 역시 거친 숨소리와 눈빛이 열기로 차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 가고 주위는 엷은 어두움이 드리워졌다. 바람에 부딪치는 나뭇가지 소리, 명경 수 위로 가끔 뛰어 오르는 물고기 소리, 모두가 사랑스러웠다.
둘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풀밭에 누웠다. 여인은 온 몸이 열기로 닳아 올랐다. 도철은 두 팔을 벌려 여인을 끌어안았다. 가슴을 밀착했고 그들은 두 다리를 서로 꼬았다. 서로의 입술이 가볍게 스쳤다.
도출은 혀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더듬었다. 둘이는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엉켰다. 둘이는 서로의 혀로 사랑을 속삭였다.
그리고 도출은 그녀의 가슴을 더듬었다. 두 대학생 아들을 둔 어미 같지 않았다. 두 손안에 꽉 차는 유방은 풍선처럼 터질듯이 팽창했다. 도철은 꿈을 꾸듯이 황홀감에 빠졌다.
둘이는 사랑의 열기로 온 몸이 녹아 내렸다. 그녀는 도출의 사랑을 확인하듯이 물기 젖은 눈으로 도출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빛이 불꽃으로 이글거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미동도 없이 정지된 밤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그들은 말없이 하늘을 보았다. 기성 가수 못지않은 그녀의 감미로운 노래 소리가 조용히 흘렀다.
여자의 일생, 아씨, 동백 아가씨 등.
도출은 눈을 감고 감상했다. 그녀는 천부적인 음성으로 박의 심금을 울렸다. 음색이 기성 가수보다 아름다웠다. 엘레지 여왕 가수 이미자 목소리와 똑 같았다. 그녀의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과 마음에 평온을 주었다.
도출은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가끔 만나 소주 한잔 하되 정(情)주지 말자.”고 새끼손을 걸어 약속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금방 소나기 한 바탕 할 듯이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악수한 두 손이 서로가 아쉬운 듯 손바닥에서 손끝으로 이동하는 순간이 느렸다.
그들은 서로 등을 먼저 보이지 않으려고 서로 잘 가라는 손사래를 저었다. 도출은 그녀가 가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골목길을 들어서며 몇 번이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골목길에 빨려가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출은 사라진 그녀의 모습을 등 뒤로 하고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둘이는 재회의 약속도 없이 헤어졌다.
도출은 누군가를 항상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감사했다. 삼복의 더위에도 따가운 햇살이 사랑스럽다. 한 송이 꽃을 보아도 그녀가 꽃잎 속에서 방긋방긋 웃었다. 옹달샘 우물에 머리를 박고 바라보아도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이 물위에 떠있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머릿속을 맴도는 그녀의 환상 때문에 마음은 항상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둘이는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경계하고 억제하면서 몇 번을 망설이다 연락하여 만나면 사랑의 술잔을 나누며 눈으로 사랑을 속삭였다. 서로가 사랑을 확인하는 유치한 입에 붙은 사랑의 몸짓은 필요가 없었다. 단 둘이 만나면 둘만의 공간의 공기가 마음에 있는 밀어를 소리 없는 진동으로 가슴을 울렸다. 서로의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사랑의 불꽃이 그들의 눈을 통해 전달되었다. 서로 잡은 손끝의 온기에서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사랑의 피가 전도되었다.
둘이는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찻잔을 앞에 놓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항상 약속 없이 만나고 약속 없이 헤어져야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만나면 새롭고 또 재회의 날을 손 곱아 기다렸다.
둘이는 두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의 턱을 감싸 고정 시킨 다음 마술사의 염력을 모으듯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능한 서로의 얼굴 모습을 재회의 날 까지 마음과 머릿속에 각인했다. 그들은 하루를 못 보아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실체는 보이지 않고 그녀의 허상이 유령처럼 따라 다녔다.
이것이 사랑인가 정(情)이던가?
사랑과 정은 어떻게 다를까?
사랑보다 정이 더 무서웠다.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지만 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사랑은 좋은걸 함께 할 때 더 쌓이지만 정은 어려움을 함께 할 때 더 쌓였다.
사랑 때문에 서로를 미워 할 수 있겠지만 정은 미웠던 마음도 되돌릴 수 있었다.
사랑은 꽂히면 뚫고 지나간 상처라 곧 아물지만 정이 꽂히면 빼낼 수 없어 계속 아팠다.
사랑에는 유통 기한이 있지만 정은 한 없이 성숙해 갔다.
사랑은 상큼하고 달콤하지만 정은 구수하고 은은했다.
사랑은 돌아서면 남이지만 정은 돌아서도 다시 우리였다.
사랑이 깊어지면 언제 끝이 보일지 불안하지만 정이 깊어지면 마음대로 뗄 수 없는 것이어서 끝이 없었다. 도출은 사랑보다 정이 더 무섭고 괴로움을 실감했다.
도출은 20대 총각 때 격은 첫사랑의 실연의 가슴앓이가 재발했다. 그리움으로 사무친 가슴은 숯덩이가 되고 그 숯덩이는 애타는 열기로 녹아 내려 가슴에 구멍을 냈다. 그래서 바람만 불어도 도철의 가슴에서는 피리소리가 났다.
칠흑 같은 밤 그칠 줄 모르는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그녀와 도출은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 버스가 다니는 시골로 여행을 갔다. 하늘아래 첫 동네 하늘만 보이는 강원도 산골 마을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막차는 오지 않았다. 장맛비는 계속 내렸다. 둘이는 시골 비포장도로를 걸었다.
언젠가 도출이 늦은 밤 그녀 집 근처 정거장에서 말했던 오지 않는 막차 이야기가 실현된 것이다. 미루나무 가로수 사이로 무명천을 깐 것 같은 희미한 도로가 남북으로 이어졌다.
액자에 걸린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북에서 남으로 바라보면 가로수와 하늘이 한 점으로 모였다. 원근과 구성이 잘 된 명작의 그림이다.
저물면서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바람 한 점 없이 내리는 빗줄기는 하늘에서 수직으로 늘어트린 실오라기 같았다. 도철은 정류장에 버려진 헌 우산을 집어 들었다. 그녀와 함께 바쳐 든 우산 지붕에 내리는 낙수는 따다닥 요란했다.
굵은 모래와 자갈길에 흐르는 물소리, 물 논의 개구리 짝 찾아 우는 소리가 원근에서 요란했다. 한 우산속의 둘이는 말없이 걷고 걸었다. 떨어진 낙수가 역으로 퉁겨 바지 끝을 적셨다. 그녀의 가슴은 사랑의 열기로 타 올랐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우산을 바쳐 든 도출의 겨드랑 밑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왼손이 도출의 등을 더듬을 때 도출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왼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둘이는 말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오가는 이 없는 자정이 넘어가는 7월의 새벽 소나기는 하염없이 내렸다. 가끔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사랑의 열기로 타올랐다. 고동치는 도출의 가슴은 심장 박동이 거칠게 뛰었다. 비에 젖어 찢어진 우산 사이로 빗물이 흘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비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둘이는 신작로를 걸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둘이는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느끼며 걸었다. 그녀의 머리가 비에 젖어 얼굴을 가렸다. 두 몸이 밀착 된 채 그들은 사랑의 미로를 헤맸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 없는 빈농가 추녀 밑에 비를 피해 섰다. 도출은 찢어진 우산을 던져 버렸다. 임자 없는 외딴 빈농가 추녀 밑에 그녀는 벽에 등을 대고 섰다.
도출은 마주서서 그녀의 얼굴을 내려 보았다. 올려보는 그녀의 눈에서 갈망하는 사랑을 보았다. 도출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 쌓았다. 그녀의 얼굴은 열기로 뜨거웠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체취에 도철은 몽롱해졌다. 그녀는 파르르 떨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도출의 혀끝이 그녀의 입술을 스쳤다. 그녀는 까치발을 세워 부푼 가슴을 도출에게 밀착시켰다. 도출은 활처럼 흰 그녀의 가는 허리를 부서져라 안았다. 둘이는 서로의 입술과 혀로 사랑을 확인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밤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비에 옷은 젖었지만 흥분된 몸은 열기로 뜨거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젖은 옷 때문에 그들은 한기를 느꼈다. 그래서 비를 피해 옷을 말려야 했다.
농가의 대문을 열어 보니 열렸다. 이사를 떠난 지 오래된 집이라 방문은 부서지고 귀신이 나올 것처럼 어지러웠다. 다행이 외양간에 묵은 볏짚이 몇 단 있었다. 둘이는 부엌 아궁이에 짚으로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말리도록 자리를 피했다.
도출은 총각 시절 첫사랑의 여인과 시골 고향 물레방앗간에서 순정을 바쳤던 추억이 생각났다. 밤비는 그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내렸다. 그녀는 웃옷을 벗어 아궁이 앞에 앉아 말렸다. 그녀의 가냘픈 어깨에 걸친 브래지어 끈이 부엌 문틈으로 보였다.
도출은 40여 년 전 고향의 물레방앗간에서 첫사랑이 비에 젖은 옷을 말리던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이루지 못할 사랑이 서러워 헤어져야 했던 첫사랑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도출은 조용히 다가가 그녀를 등 뒤에서 끓어 안았다. 도출은 젖은 상의 티셔츠를 벗었다. 아궁이에서 붉게 타는 볏짚 불꽃이 그들을 따뜻하게 했다. 도출은 그녀의 온몸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녀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철은 그녀 왼쪽 어깨에 턱을 걸치고 얼굴을 비비며 뜨거운 입김으로 속삭였다.
“서 정희 씨 당신을 사랑하오.”
그녀는 이글거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녀의 오른 손으로 도출의 입을 가렸다. 그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남편이 작은 부인을 얻어 아이가 생겨 오래전에 이혼을 했단다. 30대 후반에 두 아들을 데리고 안 해본 일이 없이 고생했단다. IMF 전에 부동산에 손을 대 살만큼 돈을 벌었다고 했다.
남자의 체온을 느껴 본지가 남편과 결별 후 처음이라 했다. 따뜻하게 대하는 부장님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여명을 알리는 산사의 종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둘이는 비 그친 새벽길을 걷고 걸어 소재지 정류장에서 첫차에 올랐다. 지친 그들은 말이 없었다.
평촌에 도착했다. 둘이는 재회의 약속도 없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다시는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새 가정을 꾸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지금도 박 도출의 가슴에 첫사랑 다음 설렘을 주는 여인으로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도출만이 부르는 호칭을 지어 주었다.
아름다운의 “아” 로맨스의 “로” 요정의 “요”의 앞 글자를 따서. 「아로요」라고.
많은 사람들이 박 부장에게 도덕적인 잣대로 재어 볼 때 불륜자라 돌을 던진다 해도 다시 사랑하고 싶은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처자가 있는 가장으로 한때 잘못된 길로 빠졌던 것을
반성해 본다.
하지만 지금은 일상의 생활에서 가끔 떠 올리는 아로요를 생각하며 행복한 여생을 즐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風)이 일어 박 도출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